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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불도저 교장 선생님
조현주 | 승인 2019.11.22 21:57

얼마 전, 어느 대안학교의 교장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근황을 듣다가 묻어둔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우리 학교에 공부라면 담 쌓고 사는 ‘유명한’ 남학생이 있어요. 고 2인데 알파벳도 몰라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알파벳도 모르고 수업 시간에 앉아만 있었던 거예요. 알파벳이 많기나 해요? 스물여섯 자를 한 달에 한 자씩만 외워도 이렇진 않았을 텐데….

영어 못 배운 것이 반은 학생, 반은 학교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학생은 공부하기 싫어서 안 했을 것이고, 학교는 그냥 방관했기 때문이죠. 선생님이 닦달하고 가르쳤다면 왜 알파벳을 깨우치지 못했겠어요? 그 학생이 한국어는 잘 해요. 한국어를 하면 영어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영어교사에게 이 학생을 가르치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2주 가량 지났을까? 그 학생이 찾아왔어요. 이제 알파벳을 안다며 A B C D까지 종이에 쓰는 겁니다. 제가 놀라니까 씨익 웃으며 소문자도 쓸 수 있대요. 8년 간 버틴 학생이 2주 만에 D까지 썼으니 놀랍지 않은가요? 한술 더 떠서 선생님, 저 단어도 알아요 하더니, 입으로 ‘앤트’ 하면서 손으로 ANT를 써요. 개미? 네! 버스도 쓸 수 있어요. BUS! 아, 그래? 선생님, 저 도그도 알아요. 하더니 ‘DOOG’를 씁니다. 개 말이냐? 네, 도그요! 내가 배울 때는 DOG였는데 요즘엔 철자가 바뀌었나? 하니까. 학생이 제가 다시 찾아볼게요. 하더니 DOOG 가 아니라 DOG네요! 하는 겁니다.”

바로 그 남학생이 최근 교내 영어말하기 대회에 참가했답니다. 유창하진 않았지만 3분 분량의 영어 원고를 다 외워서 발표하고 내려오는 순간, 객석에서 ‘앙코르’가 터져 나왔습니다. 뒤를 이어 쏟아진 박수와 환호성….

“내가 이 행사를 매년 해왔지만 앙코르 받기는 처음이었어요. 대회가 끝나고 학생이 다가와 ‘감사합니다’ 하는데….”

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듣는 저에게도 그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만약 그 교장선생님이 학생의 까막눈을 그냥 눈감아줬다면, 공부하기 싫다는 학생의 생각에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다면, 학생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영어를 포기한 채 겨우 졸업만 하려던 학생은 불도저 같은 교장선생님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자기 능력 밖의 세계로 나아가 새로운 경험을 해본 겁니다. 스스로도 영어에 관심이 없었고, 그런 자신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뒤늦게 만난 교장선생님은 달랐습니다.

‘네가 한국어를 하면 영어도 할 수 있다는 소리야. 절대 포기하지 마. 도전하지 않는 게 실패지, 도전한다는 것은 성공했다는 뜻이야’ 하면서 그를 독려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대가 없는 관심과 신뢰가 학생의 굳은 마음을 두드렸고 그때부터 학생은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넘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내 능력이 10인데 7정도의 일을 하면 감사를 느낄 수 없을 겁니다. 내 능력 안에서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내 능력이 10이지만 어쩌다 20, 30… 심지어 100의 일을 감당해야 할 상황이 되면 과정은 고되어도 마지막엔 감사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원하는 수위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했으니까요. 자기 능력 안에서만 살던 남학생은 이 일로 또 다른 세계를 보고 감사를 배울 것입니다. 학생들이 한계를 벗어나도록 가르치는 이런 교장선생님이 곳곳에 있는 한, 세상은 어둡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P.S. 이 학교에서는 연말에 시상식을 하는데, ‘돈 기브 업’ 상이 최고의 상이랍니다.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 DON’T GIVE UP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글=조현주|발행인·편집인

조현주  realantiqu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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