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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의 남태평양 생활 도전기
김유진 | 승인 2019.11.22 21:58

에메랄드빛 바다의 섬나라 키리바시! 해외봉사단원들이 그곳 아이들과 공부하고 고민도 나누는 동안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밝아졌다. 지난해 키리바시로 봉사를 다녀온 김유진 씨의 경험담을 전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한국과 다른 키리바시

대안학교 1기 졸업식에서 현지교사이자 친구였던 크리스틴과 함께(오른쪽이 김유진).

키리바시의 에메랄드빛 바다는 너무도 맑고 투명해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이 많지만, 습도는 높지 않아 나무 그늘에 가면 시원하게 더위를 식힐 수 있습니다. 운 좋은 날에는 푸른 하늘에 뜬 동그란 무지개를 볼 수도 있습니다. 33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뤄진 키리바시의 총면적은 800평방 킬로미터로, 대구시보다도 작은 크기입니다.

늘상 바쁘게 다니며 ‘빨리 빨리’를 외치는 한국 사람들과 달리, 키리바시 사람들은 여유롭습니다. 신기한 건 키리바시의 모기입니다. 사람들처럼 느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 모기보다 10배는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또 이곳에는 물건이나 음식을 사고파는 시장이 없습니다. 주민들은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이나 집에서 재배한 채소들을 집 앞이나 길거리에 내놓고 팝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을 주고 사거나, 자신이 가진 음식과 바꿉니다. 물물교환이 익숙한 이곳에서 살다보면 마치 원시시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업이 주업인 이곳에서는 참치를 비롯해 다양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생선은 구이나 찜, 탕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한국에서 귀한 랍스터나 코코넛크랩도 자주 식탁에 올라왔습니다. 가장 이색적인 음식은 브레드프루트breadfruit라는 열매로 만든 요리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빵처럼 생긴 이 열매는, 찌거나 튀겨서 밥 대신 많이 먹습니다. 우리의 고구마와 맛과 식감이 비슷한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이국적인 자연환경, 날씨, 음식 때문에 키리바시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매력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음속 어둠을 빛으로 바꾸고 싶다면?

키리바시 아이들은 대부분 집이 가난해 학교를 가지 못합니다. 학교 대신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방황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술과 마약에 손을 대거나 미혼모가 되기도 합니다.

아베마마섬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공항에서 현지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봉사했던 지역에서 친해진 아이들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키리바시 청소년부에서는 굿뉴스코 키리바시 지부에 대안학교를 세워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지부장님과 한국에서 온 봉사단원들 모두가 교사가 되었고, 마인드교육을 비롯해 음악, 태권도, 댄스, 영어와 멘토링 아카데미를 수업과목으로 개설했습니다. 여느 키리바시 학교에는 없는 과목들이라 아이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탈선을 일삼던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와 마음에 안정을 찾고 공부에 열중하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보람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지면서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마음속 고민을 해결하도록 도와주고 싶어졌습니다. 대화도 많이 나누고 사랑과 관심도 자주 표현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그중 제 수업에늘 참석하고 열정적으로 배우려 애쓰는 ‘떼끼에부쓰’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떼끼에부쓰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수업 후 발표시간이면 항상 손을 들고 발표하며 밝게 대답하던 학생이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쉬는시간에 그 친구를 따로 불렀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들의 따돌림이나 가정문제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터놓고 말할 상대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고민을 내게 털어놓았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마음속 어두움도 털어놓으면 빛으로 바뀌거든.” 이렇게 이야기를 해 준 저는, 그 후로도 떼끼에부쓰가 수업에 올 때마다 “오늘은 어때?”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느 날 떼끼에부쓰가 말했습니다. “유진, 나한테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어봐줘서 너무 고마워. 네 말처럼 고민을 네게 털어놓으니 빛으로 바뀌었어.” 한 학기를 마치면서 발표회 준비를 할 때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이번에 졸업해. 키리바시 학교에는 음악과목이 없는데, 너한테 처음으로 음악을 배웠어. 한국에 꼭 돌아가야 해? 가면 언제 돌아와?” 그리고 저와 함께 키리바시에 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선생님인 나를 부끄럽게 한 아이들

지난해 12월, 저희는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음악회인 칸타타 순회공연을 준비했습니다. 현지 학생들도 배우로 참여했는데, 키리바시 사람들은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유난히 부끄러워합니다. 친구들 앞에서 연기를 했다가 놀림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호기심으로 한두 번 연기를 해 보고는 이내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에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너희가 이 섬에서만 살면 우물 안 개구리나 마찬가지야. 이 섬 밖에는 더 큰 세계가 있어. 이런 작은 부담을 뛰어넘는 연습을 하면, 앞으로 더 큰 어려움도 넘을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 줬습니다. 학생들도 차츰 도전에 익숙해지면서 2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TV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을 일주일 앞두고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현지 친구들이 이 사진으로 액자를 만들어 선물해줬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저는 제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키리바시라는 낯선 환경에서, 겪어보지 않은 큰 도전을 하며 부족한 점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고, 가정불화를 겪는 학생들을 보며 제 옛날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간섭하시던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부모님의 관심 앞에서 반항하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아껴주고 사랑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와 달리 작은 관심에도 감사해하는 키리바시 학생들에게 제가 되려 많은 걸 배웠습니다. 키리바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떼끼에부쓰에게 “언젠가 꼭 키리바시에 돌아올 거야”라고 한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김유진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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