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키르기스스탄의 츄안츄안 부족은 잔인한 방법으로 전쟁 포로들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먼저 포로들의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고 그 위에 갓 죽인 낙타의 유방가죽을 씌웁니다. 그리고 포로들을 기둥에 묶어 뜨거운 햇볕 아래 둡니다. 가죽은 말라가면서 포로들의 머리를 조입니다. 며칠이 지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지만, 머리카락은 가죽을 뚫을 수 없어 포로들의 두피를 파고듭니다. 그런 엄청난 고통을 겪는 동안 포로 중 열에 일곱은 죽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포로들은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쿠르트’라는 노예가 됩니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은 사라지고 철저히 츄안츄안족의 말만 듣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졸라만’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도 츄안츄안족에게 잡혀 만쿠르트가 되었습니다. 츄안츄안족은 졸라만에게 끝없는 사막에서 종일 양을 치게 했습니다. 졸라만의 어머니가 졸라만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러 날 헤맨 끝에 사막에서 양을 치는 졸라만을 찾았습니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아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졸라만! 내가 누군지 알겠어?”

“누구세요? 저는 만쿠르트예요.”

“아니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졸라만이야. 넌 틀림없이 활을 잘 쏠 거야. 네 아버지가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네게 활 쏘는 법을 가르쳤어.”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때 멀리서 츄안츄안족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졸라만의 어머니는 황급히 몸을 피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츄안츄안족이 졸라만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야? 네게 뭐라고 했어?”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요. 나더러 자기 아들 졸라만이래요.”

츄안츄안족이 말했습니다.

“만쿠르트, 내 말 잘 들어. 그 사람은 널 속이려는 거야. 그리고 네 머리에 다시 낙타가죽 모자를 씌우려는 거야. 다음에 또 오거든 활로 쏴 버려.”

그리고는 활과 화살을 쥐어 주었습니다. 며칠 뒤, 츄안츄안족이 없는 틈을 타 어머니가 졸라만을 찾아왔습니다.

“졸라만, 넌 만쿠르트가 아니야. 제발 이 엄마 말 좀 들어다오.”

그러나 졸라만은 어머니에게 활을 겨누었습니다.

“졸라만, 안 돼. 너는 내 아들이야. 너는 내 말을 듣고 믿어야 해.”

슬프게도 어머니의 말은 한마디도 졸라만의 마음에 닿지 않았습니다. 졸라만은 활을 쏘았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영국은 경제적으로 크게 발달했고, 정치적으로도 의회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태동한 선진국입니다. 그런 만큼 물질문명과 개인주의의 부작용도 쉽게 발견됩니다. 물질과 쾌락에 끌려 무절제하게 살거나, 사람 사이에 교류가 뜸해지고 마음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고립된 삶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국인들에게 강연을 할 때면 저는 졸라만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습니다.

“졸라만의 어머니처럼, 여러분에게도 여러분이 사지死地에 처했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올 분이 있을 겁니다. 졸라만처럼 여러분도 그분과 마음이 단절된 채 살고 있진 않습니까? 그분께 마음을 여세요. 제 강연이 끝나면 그분을 만나세요. 거리가 멀면 전화를 걸어 오랫동안 마음에 묻어두고 있던 이야기를 해 보세요.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고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출발점입니다.”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제 말에 귀 기울이고, 잊고 지내던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졸라만 이야기는 제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졸라만의 어머니처럼, 저를 조건없이 가르치고 돕고 이끌어주신 분들이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산다면,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을 이기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글=오영도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 다년간 거주하며 폭넓게 경험한 영미 문화를 바탕으로 마인드강연을 진행해 왔다. 지난 9월, 영국 크로이든시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개최하며 영국인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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