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FC 이창용 선수

국내 축구협회에 정식 등록된 선수는 2만5천여 명이며, K리그(1,2부 포함)에 등록된 선수는 8백 여 명이다. 그만큼 프로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낮고 입단하더라도 치열한 경쟁을 맛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남다른 생각으로 즐겁게 축구하는 성남FC 이창용 선수를 만났다.

성남FC는 지난해 K리그 1부로 승격해 2019시즌을 숨 가쁘게 보내고 있다. 주요 공격수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승점을 올리기 위해 남기일 감독이 치밀하게 짠 전술이 효과를 보면서 하위 강등 순위에서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상위 순위로 올라가기 위해 승점 3점은 매우 중요했고, 9월 25일 강원FC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중앙수비수로 출전했던 이창용 선수는 감독으로부터 공격적으로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전반 35분, 코너킥 상황에서 불발된 헤더킥을 놓치지 않고 찔러 넣었고 골대의 그물을 흔들었다. 경기의 결과는 1대0, 성남FC의 승리였다.

성남FC 이적 후 첫 골입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성남에 와서 빨리 첫 골을 넣어서 아내에게 골 세레모니를 해주고 싶었는데 이제라도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감사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척 힘들어서 축구를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징크스 하나에 절절매고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 크게 실망했죠. 그런데 지금은 팀에서 별명이 ‘긍정 창용’이라고 할 정도로 항상 웃고 다닙니다. 경기에 나가지 못해도 웃고, 감독님에게 혼나도 웃고요. 물론 진지하게 반성도 하지만 제 마음이 더 이상 좌절에 빠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는 어떤 선수였는지 궁금하네요.

지금 제 인상과 전혀 다르게, 축구로 성공하고 싶어서 눈에 독기가 가득했습니다. 비교적 늦은 중학생 때 시작한 편이라 실력이 좋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월 30만 원 축구부 회비를 못 낸 적도 많았고 아버지가 3만5천 원짜리 축구화 하나를 사주기 위해 가게 직원과 싸우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죠. 돈도 배경도 없는 제가 프로선수가 되려면 실력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이를 악물고 운동했습니다.

운동장에 혼자 남아서 12시 넘어서까지 볼 트래핑과 패스 등을 연습하고 줄넘기로 체력을 길렀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다시 와서 할 정도로 간절했고 절박했죠. 그때 전주공고 감독님의 눈에 들어 전액 장학금을 받고 전주공고에 진학했습니다. 후에는 서울 언남고의 테스트를 받고 그 학교로 옮기게 됐죠. 그런데 서울 명문대 진학이 좌절되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이후 용인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다른 친구들 다 놀러갈 때 혼자 남아서 연습만 하며 지냈죠.

이창용의 투철한 노력은 스무 살의 그라운드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팀의 수비를 솔선수범하는 활약이 돋보였고, U-20 국가대표 선수단을 꾸리고 있던 홍명보 감독이 그를 눈 여겨 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U-20 국가대표 선수단 명단에서 ‘이창용’이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빨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합숙하며 전국의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뛰는 동안 그의 기량은 한층 더 향상되었다. 그리고 경기 시작 전에 항상 선수들에게 승리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홍명보 감독의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목표를 더욱 단단하게 마음에 새겼다.

3년 간 대표팀 생활 이후 그는 용인대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됐다. 당시 용인대 이장관 감독도 그에 대해 ‘정신적으로 무장이 잘 되어 있고 피지컬도 좋다.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많은 장점을 가진 선수’라고 평했다. 많은 프로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마침 선수가 지원하는 것이 아닌 구단이 먼저 선수를 선택하는 제도가 생기면서 강원FC가 그를 영입해갔다.

그렇게 원하던 프로 선수가 됐네요.

너무 기뻐서 광화문 앞을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이제까지 돈 내고 어렵게 축구하다가 돈을 받고 축구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동안 혼자서 노력하며 고생했던 순간들을 그날 다 보상 받는 것 같았죠. 그리고 강원FC에 갓 입단했을 때 들었던 감독님의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프로는 정글입니다. 정글에서 호랑이는 행복합니다. 원하는 차를 살 수 있고 원하는 아내를 얻을 수 있고 운동장 나가는 게 즐겁습니다. 그런데 토끼는 불행합니다. 아무것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호랑이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호랑이가 됐나요?

6개월 만에 제가 토끼라는 걸 알았습니다. 프로라는 치열한 경쟁에서 오늘 경기를 뛰지 못하면 불안해졌죠. 주전으로 뛰지 못하고 교체선수로 나가거나 뛰지 못할 날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은 술 마시고 놀 것 다 놀면서도 잘하는데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습니다. 몸으로 노력하는 것에 한계를 만나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면 훈련 받을 것이 괴로워서 포기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축구화를 신을 때 왼발 먼저 신거나, 다리 사이로 공이 지나가지 않게 하는 등등 사소한 2것에 징크스가 생기고 굉장히 예민해졌습니다.

이대로는 프로 생활을 더 못할 것 같아서 무엇을 하고 돈을 벌지 궁리했습니다. 재테크 책을 사서 공부했고, 울산현대 팀으로 이적했을 때는 서울까지 세미나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팬들이 저를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하러 오면 굉장히 창피했습니다. 저는 도망가려고 하는데 저를 응원한다고 하니까 미안하더라고요.

토끼라는 것이 드러날까 봐 경기에서 감독과 코치의 말을 굉장히 잘 따랐다. 수비하라고 하면 수비하고 미드필드에서 뛰라고 하면 미드필더로 뛰었다. 두 시즌 동안 37경기 1골1 도움을 기록하고 2015년에는 K리그 강호팀 울산현대로 이적했다. 울산현대에서도 부지런한 활약으로 2경기 연속 골을 넣으면서 많은 울산 팬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커다란 벽에 갇혀 좌절하던 중이었다.

2017년, 28세에 도망치듯이 군에 입대했다. 축구와 미래, 가족, 친구 등 뭐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한 훈련소 생활은 외롭고 힘들었다.

그때의 슬럼프를 어떻게 이겨냈나요?

아버지가 보내주신 책 한 권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렸죠. 재테크 책만 외울 정도로 읽다가 한 쪽에 쌓아두기만 했던 아버지가 보내주신 책들을 봤어요. 그중 한 권이 <마음을 파는 백화점>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인생이 불행하거나 행복해진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이었죠. 운동만 하면서 살아왔기에 몸으로 무조건 열심히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프로에서 겪는 정신적 어려움들은 이겨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책에서는 제가 불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과 반대된 행복한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토끼로 보였던 제 자신이 호랑이로 보였습니다.

이창용의 축구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준 군대 시절.
이창용의 축구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준 군대 시절.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의무경찰에 속한 아산무궁화 프로축구단에서 뛰었는데, 축구가 달라졌습니다. 실수가 많았던 논스톱패스를 망설임 없이 시도했고 점프와 드리블 등 여러 가지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코치님들이 요즘 왜 이렇게 실력이 늘고 있냐며 놀라워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항상 비주전이고 교체 출전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호랑이로 살고 나니 주전으로 뛰고 2018시즌까지 2년 연속 주장 완장을 찼습니다.

이창용은 최후방에서부터 부지런히 뛰면서 동료들의 안정적인 플레이를 뒷받침했고 때론 과감한 슛을 날려 골도 노렸다. 그의 의무경찰 1079기 동기들인 이으뜸(광주FC 수비수), 한의권(수원삼성 블루윙즈 공격수), 이재안(수원FC 공격수), 박형순(수원FC 골키퍼)과 함께 베스트 팀워크를 이루어 팀의 K리그 2부리그의 1위 자리를 지켜냈다. 그렇게 2시즌을 뛰는 동안 이창용은 43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전역할 때, 선수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군 시절 1년 6개월을 기념하고자 동기들과 프로에 나가면 같은 등번호를 달자고 약속했다. 때문에 그가 전역한 K리그 2018년 후반기 시즌에는 등번호 79번을 달고 뛰는 선수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전역 후 프로에서 다시 뛰는 기분은 어땠나요?

감독님이 이상하게도 한 경기 후에는 저를 출전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서 위축되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제는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바꾸니까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되는 거예요. 지금 밤이어도 내일 해가 뜰 것을 알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잠을 자는 것처럼, 저도 내일 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늘 꾸준히 연습하고 지냈어요.

기회는 2018시즌 마지막 경기에 찾아왔습니다. 포항과의 라이벌 매치에 출전해서 1대1로 팽팽하게 맞서던 때였습니다. 그때 제가 코너킥을 받아 헤딩골을 만들어냈고 우리 팀은 그 기세를 몰아 3대1로 크게 이겼습니다. 이후 2018 FA컵 결승전에도 출전하면서 많은 팬들이 저를 기억해주고 응원해줬습니다. 시즌을 마치고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도 하면서 제 인생 최고의 행복한 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올해는 성남FC에서 뛰고 있습니다.

아산무궁화 프로축구단에서 주전과 주장으로 뛰며 마음껏 축구를 즐겼다.
아산무궁화 프로축구단에서 주전과 주장으로 뛰며 마음껏 축구를 즐겼다.

울산현대에서 성남FC의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윤영현 선수를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남FC 남기일 감독님이 저와 맞트레이드를 하자고 제의를 하신 거예요. 울산에서도 저를 원했기 때문에 다른 조건을 걸었지만 결국 작년 12월에 제가 성남FC로 이적했습니다.

성남FC에 와서 감독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올해는 유독 부상이 많았습니다. 발목 인대가 파열돼서 4개월 쉬었고 얼마 전엔 허벅지 부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제 마음을 잘 추슬러서 빠른 회복을 바랐지만 회복 기간이 길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을 또 다시 반대로 바꾸고 있습니다. ‘부상도 좋다는 것’입니다. 선수들은 부상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부상으로 더욱 겸손하고 강인한 마음자세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축구를 잘하려고,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노력 빼면 시체였던 제가 수시로 생각 전환을 하며 축구 자체를 즐기면서 뛰고 있습니다. 이젠 징크스도 반대로 하면서 징크스에 좌지우지되는 경기도 하지 않으려고 하죠.

그래서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최고의 내가 돼라’고 말해요. 점프가 부족해서 연습을 하는 것과 나는 점프를 제일 잘하는 사람인데 아직 배우지 못해서 연습하는 것은 매우 다르거든요. 무슨 일이든 마음에서 먼저 이기고 시작하면 중간에 어려운 일을 만나도 치고 나갈 수 있는 거죠.

자신과 같은 성장통을 겪는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난 9월 25일 강원FC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넣고 즐거워하는 모습.
지난 9월 25일 강원FC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넣고 즐거워하는 모습.

예전의 저처럼 토끼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간혹 실력 있는 선수들이 감독의 전술을 따르지 않고 경기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경기에서 골을 넣어도 감독은 다음 경기에 그 선수를 쓸 수가 없는 거죠. 반면에 저는 실력 없는 약자였기 때문에 감독님 말을 아주 잘 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저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들이었어요. 수비수였던 제가 미드필더로도 뛰면서 넓은 수비반경을 가지게 됐고 일대일 대인마크에도 노련해졌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 스타일이 있지만 팀에서 감독님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면 이번처럼 골도 넣을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저처럼 각자의 삶과 일터에서 목표에 부응하지 못하는 부족한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럴 때 마냥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경험이 많은 멘토들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비록 가장 힘든 시간이지만 가장 많은 성장도 이룰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우리는 항상 원하는 꿈과 목표에 도달해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창용 선수가 방황할 때 알게된 사실은 마음을 하나 바꿨을 때 모든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꿀벌은 무엇을 먹어도 꿀을, 독사는 무엇을 먹어도 독을을 만들어내듯 이창용 자신은 슬럼프, 부상, 패배 무슨 일을 만나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오늘도 웃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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