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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태권도 9단의 생각하는 리더십경기도태권도협회 김경덕 회장
김성훈 기자 | 승인 2019.11.06 14:28

김경덕 회장의 첫인상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수십 년간 태권도로 단련해 온 굳건한 풍채 때문만은 아니다. 찾는 사람에게 그늘을 주는 나무처럼, 리더로서 후배들을 위해 30년 뒤를 내다본 정책을 추진하는 사려깊음 때문이다.

김경덕 회장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경북 군위군 산성면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간이역이 있어 군에 가는 인근 청년들은 모두 여기서 입영열차를 탔는데, 청년들 사이에는 곧잘 다툼이 벌어졌다. 입대를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진 탓에 사소한 시비가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잦았다.

여느 때처럼 장정들끼리 싸움이 벌어진 어느 날, 치고받느라 정신없는 사람들 사이를 이리 저리 날쌔게 뛰어다니는 청년이 소년 김경덕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쟤가 당수(태권도의 사투리)를 배웠다지, 아마?” 누군가의 한마디는 소년의 가슴에 그대로 꽂혔다. ‘나도 당수를 배우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소년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낮에 본 청년을 떠올리며 밤늦도록 손발을 휘둘러댔다. 김 회장의 ‘태권도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태권도에 입문하신 계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태권도를 알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으로 이사를 왔는데, 마침 어느 경찰관께서 학교 교실을 빌려 동네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제 첫 사범이셨죠.

용문면은 회장님이 처음 도장을 여신 곳이기도 합니다.

1977년 7월에 ‘용문태권도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지요. 시골이라 사람도 많지 않고 다른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라 도장을 하기에 다소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나름대로 지혜를 쏟고 온 마음을 기울여 수련생들을 모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태권도를 할 때는 열심히 합니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태권도 배우는 것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겨요. 학교 갈 때도 도복을 입고 가고, 잘 때도 도복을 입고 자요. 그런데 6개월쯤 지나면 싫증을 느낍니다. 태권도 동작 하나를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끊임없는 반복만이 최선입니다. 뭔가 새로운 걸 배우고 싶은데 사범님은 똑같은 걸 반복하라고 하니, 금방 싫증을 느낄 수밖에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김경덕
태권도는 신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는 전인적 인성교육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대한태권도협회 부회장과 국기원 태권도9단 연맹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태권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인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킬 방안을 고민하는 ‘스포츠 외교관’이다.

난관이라면 난관인데, 어떻게 돌파하셨습니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한 거죠. 수련과목을 세분화함으로써 같은 동작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일이 없게 했습니다. 매달 하는 급띠 심사도 세분화함으로써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요. ‘이달의 학습’이라는 학습지도 매달 A4용지에 직접 써서 만들었어요. 고사성어나 <명심보감> 구절, 짧은 영어회화 등을 적어 나눠주면서 ‘화장실에 붙여놓고 갈 때마다 외워라’고 했어요. 학부모님들도 그걸 보시고 ‘용문태권도장은 이런 것도 가르치네. 뭔가 다르구나!’ 하고 신뢰해 주시더군요.

수련생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셨던 모양입니다.

지도자로서 열정과 의욕을 갖고 가르쳤지요. 정성을 쏟으면 아이들도 그걸 느끼고 따라와요. 일지를 만들어서 ‘1부 수업에는 수련생 몇 명 중에 몇 명이 왔고, 결석자는 누구였는지’를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자주 결석하는 수련생은 부모님을 만나 상담을 하기도 하고, 가까이 사는 친구끼리는 같이 도장에 오게 하는 식으로 수업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했지요.

수련생들을 가르칠 때도 흔히 말하는 ‘단기속성’이나 ‘대충, 적당히’는 절대 없었습니다. 동작이나 품새는, 시간이 걸려도 완벽하게 가르치니까 승단심사를 봐도 탈락자가 거의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면 공부와 입시 준비 등을 이유로 태권도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희 도장 수련생들은 초등학교 때 태권도에 입문해 중고등학교 때까지 다녔어요. 그렇게 도장을 운영하다가 2003년 제자한테 물려줄 때 수련생이 137명이었어요. 시골 치고는 정말 많은 숫자였지요. 그때 가르친 수련생들과는 지금도 SNS로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태권도 지도자들은 특히 스스로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이 남다르다’고 김경덕 회장은 말한다. 태권도는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 꾸준한 신체단련으로 자신을 절제하고, 목표에 집중하는 강인한 마음을 터득하여 참다운 사람의 길을 추구하는 인성교육이라는 것. 태권도에 ‘길 도道’ 자를 쓰는 것도 그래서라고 한다.

‘태권도’ 세 글자에 담긴 뜻이 꽤 심오하군요.

경기도태권도협회는 2016년부터 3년 연속으로 전국체육대회 태권도 종합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탄탄한 실력과 폭넓은 선수층을 자랑한다.

태권도는 4단 이상을 취득해야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사범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도장을 운영하는 사범은 대개 5~6단 정도 되지요. 수련생을 지도한다는 것은, 본인은 물론 타인의 건강과 인격도야를 책임진다는 의미입니다. 남을 지도할 사람이 스스로 수련을 게을리할 수는 없지요. 태권도 지도자가 되는 것은 곧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무예의 목적은 심신心身 단련입니다. 태권도를 배우면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태권도는 크게 다섯 종목으로 나뉩니다. 첫째로 겨루기입니다. 올림픽 종목이기도 한 겨루기는, 태권도의 공격과 방어 기술을 사용해 실제 상대와 맞붙어 실력을 겨루는 것을 말하는데요. 신체를 강인하게 단련하고 투철한 정신력을 키워줍니다.

둘째, 품새입니다. 겨루기가 둘이서 하는 것이라면, 품새는 태권도의 공격과 방어 기술을 일정한 범위 내에서 연결한 것으로 호흡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겨루기가 외적 근육을 단련시켜 주는 운동이라면, 품새는 내적 장기를 단련시켜 주는 유연한 운동입니다. 셋째는 격파입니다. 손발 등 특정 신체부위를 오랫동안 단련시켜 단단한 물체를 격파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운동입니다.

지난 4월 2일 중국 심양을 찾아 중국 태권도 9단 연맹회원들을 대상으로 정통 태권도 지도법을 강의한 김경덕 회장. 그야말로 ‘9단을 가르치는 9단’이다.

넷째, 태권체조입니다. 90년대 초반에 에어로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태권체조는 근육뿐만 아니라 심폐능력과 순발력을 키워줍니다. 경쾌한 배경음악을 곁들여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시켜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에게 매력적인 종목입니다. 다섯째로, 모든 태권도 기술을 집약시킨 시범이 있는데, 최근 청소년들에게 각광받고 있습니다.

태권도의 정신으로는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서로를 공경하는 예의,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는 염치, 어려움을 견디는 인내, 자신을 극복하는 극기,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백절불굴百折不屈 등입니다. 물질문명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사람의 중요성에 소홀해지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치관이라고 하겠습니다.

태권도의 기원은 2,500여 년 전, 고대 부족국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외적이나 짐승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했는데, 이것이 삼국시대를 거치며 태껸, 각저 등으로 불리며 오늘날의 태권도로까지 이어진다.

한민족의 고유무술인 태권도를, 오늘날 글로벌 스포츠로 키워낸 인물이 바로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다. 대한태권도협회장과 세계태권도연맹 회장을 역임한 김운용 부위원장은 탁월한 능력과 사교술을 발휘하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적으로 태권도의 인기와 영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널리 보급된 스포츠는 축구일 겁니다. 국제축구연맹 회원국이 197개국인데, 세계태권도연맹 회원국이 무려 207개국입니다. 수련인구는 약 1억 명으로 추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1억 5천만이 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024 파리올림픽에도 당당히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잖아요?

특히 최근에 중국에 태권도 열풍이 불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중국에 가서 보니 혼자서 체육관 20곳을 운영하며 수련생 5천여 명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있더군요.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요. 이런 추세라면 2,3년 내에 중국 내 태권도 수련인구는 1억을 훌쩍 넘을 겁니다.

경기도태권도협회를 찾은 스페인 태권도 수련생들과 함께. 태권도는 세계적으로 수련인구가 1억이 넘는 글로벌 스포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턱이 너무 낮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4단 이상 유단자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험을 통과해야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중국은 1단만 되어도 도장을 차릴 수 있습니다. 태권도가 중국 무술과 결합해 보급된다면 자칫 우리 태권도의 정체성이 훼손될 우려도 있지요. 그래서 중국 내 태권도 수련단체들과 MOU를 체결하고, 현지 학교에 사범을 파견하는 등 태권도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태권도가 이렇게 인기가 높았다니, 어깨가 으쓱해지는데요.

김운용 부위원장 같은 행정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하지만 단기간에 태권도를 글로벌 스포츠로 정착시키는 데 힘을 쏟다 보니, 심신 단련을 통해 인간으로서 참다운 길을 추구하는 태권도의 ‘무도武道의 가치’가 도외시되어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되면 태권도는 정체성을 잃고 승부와 경쟁 위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무도로서의 태권도가 시급히 복원되어야 합니다.

현재 국기원 태권도 9단 연맹 회장이신데, 9단은 한 분야에서 최고에 도달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태권도의 9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9단은 중단 없이 38년 동안 수련해야 오를 수 있는 경지입니다. 이처럼 오래 태권도를 수련하려면 몸도 잘 관리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강한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투철한 정신력이 없으면 도중에 그만두게 되지요. 그 정신력 때문에 태권도인들이 9단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겁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9단은 1,051명 정도입니다. 대부분 젋어서부터 태권도를 배우며 자신과의 싸움을 거듭해 온 만큼 흐트러짐 없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고, 자긍심도 뛰어나지요.

김경덕 회장이 이끄는 경기도태권도협회는 지역 태권도협회 중 최대 규모로 2,700여 개의 도장이 소속되어 있다. 2016~2018년 전국체육대회에서 3년 연속 태권도 종합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실력도 탄탄하고 선수층도 두텁다. 서울서 열린 올해 전국체육대회에서도 금 8·은 8·동 6으로 서울보다 성적이 앞섰지만, 개최지에 가산점을 주는 채점방식 때문에 아쉽게 준우승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김경덕 회장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국내외를 무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태권도 선진화 및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경기도태권도협회의 수장으로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실 듯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웃음). 하루에 검토하고 결재해야 할 서류만 30건 정도 되고, 평균 2건 이상의 외부인사 면담이 있습니다. 태권도 보급과 확산을 위해 2달에 1번 꼴로 해외출장도 다닙니다. 올해 70이 넘었는데도 이런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는 건 꾸준한 운동과 일에 대한 의욕 때문일 겁니다.

바쁘게 보내시는 만큼 보람도 크겠지요?

세계인들이 태권도를 수련해서 더 건강해지고, 또 태권도를 매개로 서로 친구가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근에는 저개발국 청소년들의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고 있지만, 배울 여건이 안 되어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주 태권도원을 국립태권도대학으로 전환해서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나라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130여 개국, 영사급 외교국은 30여 개국에 이릅니다. 이 나라에서 우수한 청년 1명씩만 선발해 국립태권도대학에서 공부시키면 10년 뒤에 1,600여 명의 청년들이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홍보대사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태권도를 통해 다른 나라들과 체육, 문화, 경제, 군사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도모할 방안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경기도태권도협회도 해외 태권도 단체들과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태국에서는 한인 태권도사범회와 함께 ‘왕실 공주컵 국제태권도대회’를 4년째 지원하고 있고요. 파타야시와도 MOU를 맺고 파타야 내 13개 초·중학교에 태권도를 정규과목으로 채택하도록 했습니다.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남태평양 등 저개발국 청소년들에게 태권용품을 기증하는 사업도 계속 추진 중입니다.

또 중국에는 10개 도시에 해외지부를 개설했으며, 11월 중에 5~6곳을 더 개설할 예정입니다. 길림성 백산시의 조선족학교에 사범을 파견해 매주 이틀씩 전교생에게 전일 태권도 수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4단 이상 실력을 갖춘 사범들이 매년 30명씩 배출될 겁니다. 30년이 지나면 사범이 600~700명은 될 텐데 이들이 중국 전역을 누비며 정통 태권도를 보급할 그날이 기대됩니다.

경기도태권도협회장의 임기는 4년으로, 1회에 한해 재선이 가능하다. 김경덕 회장이 재선되면 2024년까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김 회장에게 이렇게 묻는다. “현재 추진하시는 해외사업들은 회장님 임기 중에는 성과를 보시기 어려울 텐데요?” 그럴 때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맞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은 나무를 심는 일입니다. 지금 심으면 후대에서 그 열매를 즐길 수 있겠지요.” 그는 24시간 내내 태권도만 생각하는 듯했다. 20~30년 뒤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그 지혜는, 60년 가까이 태권도 외길을 걸어온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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