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People 피플
[인터뷰] 주한 도미니카공화국 대사 움베르토 살라사르복잡한 문제일수록 풀어가는 재미는 더 큽니다
김성훈 기자 | 승인 2019.11.04 13:47

움베르토 살라사르 대사를 만나기로 한 날은 폭우가 전국을 강타한 주말 바로 다음 날이었다. 촬영장비를 챙겨 사무실을 나서려던 순간 대사 비서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혹시 인터뷰를 일주일만 미룰 수 있을까요?”

전날 남산에서 한 시간 넘게 비바람을 맞으며 조깅을 하다가 감기몸살에 걸렸다는 게 이유였다. 갑작스레 취소된 스케줄에 당혹스럽기보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얼마나 운동을 좋아하기에 거친 날씨를 무릅쓰고 조깅을 한 걸까?’ 여러 외교행사에서 살라사르 대사를 몇 번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면모였다. ‘굉장한 운동 마니아일까, 아니면 자기관리에 철저한 걸까?’ 결국 그를 만나 직접 답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뒤, 서울시청 인근의 도미니카공화국 대사관 집무실에서 살라사르 대사와 마주 앉았다. 당연히 그의 감기몸살이 첫 질문이었다.

엔리케 움베르토 살라사르 Enrique Humberto Salazar
1955년생으로 산토도밍고 국립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는 틈틈이 야간대학에서 국제관계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자국의 유력 언론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 중이며, 라디오 및 TV 프로그램에도 다수 출연한, 매사에 의욕 넘치는 외교관이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폭우에도 한 시간 넘게 달리실 정도면, 운동을 좋아하시는 듯합니다.

하하, 지금은 말끔히 나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겨 미안합니다. 원래 달리는 게 취미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온 뒤로는 하이킹으로 종목을 바꿨어요. 처음 한국에 온 게 작년 11월인데, 한국의 사정을 잘 알고 싶어서 지하철을 타러 갔어요. 계단을 타고 계속 내려가는데, 어찌나 깊던지… 그만 발목을 다치고 말았어요.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씩 발목이 시끈거려요, 하하하. 그때부터 달리기보다는 하이킹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간만에 큰 비가 내리니까 공기가 하도 상쾌해서 맘껏 달렸는데, 그만 감기에 걸렸네요.

도미니카공화국 하면 야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야구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국민들이 야구를 좋아하고, 도미니카 출신 메이저리거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인데요.

운동장은 물론, 뒷골목이나 건물 옥상에서 야구를 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운동실력은 이야기도 못 꺼낼 정도지요. 한국인들도 야구를 몹시 좋아하더군요. 한국에서 뛰는 도미니카 선수들도 다섯 명이나 되고요. 그래서인지 한국이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지난 10월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국어 방송, 특히 야구중계를 늘 틀어놓고 한국어가 귀에 익숙해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11월 15일이면 살라사르 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지 꼭 1년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보내셨으니 이제는 한국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셨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수천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이동하는 한국의 명절문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인구는 약 1,073만 명, 그중 20%가 해외에 거주한다. 우리가 명절에 고향을 찾듯, 이들도 11월 추수감사절이나 12월 크리스마스 때면 조국을 찾는다. 전 세계의 모든 문화는 서로 연관이 있다고 믿는 살라사르 대사는 ‘이같은 도미니카와의 문화적 유사성 때문에 한국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한국 근무를 자청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전부터 아시아에 관심이 많았어요. 물질문명 중심의 서구와는 달리, 인간 중심의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미래를 건설하는 곳이 아시아잖아요? 점점 더 개방적으로 변모하는 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지리라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한국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존경스러운 나라입니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배울 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네 나라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중 한국이 단연 으뜸이라고요. 부임하기 전 ‘한강의 기적’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기에 기적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기적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현재 도미니카공화국은 중남미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습니다. 성장을 지속하려면 한국을 롤모델로 삼고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주한 대사로 임명되셨을 때, 주위 분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예순이 넘은 나이에 해외를, 그것도 문화·언어·생활환경이 완전히 다른 한국으로 가다니 어쩔 생각이냐?’라고들 하더군요, 하하. 지금은 어떻냐고요? 대사관 직원들이 저를 잘 보좌해주는 덕에 아주 만족스럽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를 걱정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오히려 저를 부러워할 정도입니다.

대사로서 제 가장 큰 임무는 도미니카를 한국에 널리 알리는 일입니다. 한국 국민들 중에는 도미니카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 분이 많아 아쉽더군요. 도미니카는 카리브해 인근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나라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많이 진출해 있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어 있습니다. 관광지로도, 투자처로도 제격이지요. 한국 입장에서는 도미니카가 지구 정반대편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알고 보면 두 나라 사이는 아주 긴밀합니다.

도미니카 출신 강타자 로하스가 뛰는 kt 위즈 팀을 찾은 살라사르 대사. 경기 관람을 마친 뒤에는 도미니카 유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도미니카 전력청에서는 한국전력이 개발한 에너지 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미니카 공군의 운영을 총괄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도 한국 업체에서 제작한 것이고요. 코이카KOICA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서 유학 중인 도미니카 학생만 해도 26명이나 됩니다.

윌비스라는 한국 기업은 도미니카 바라오나Barahona 주州 전체 고용의 절반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과 도미니카 사이에는 지식과 산업, 학술 교류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활발합니다. 이런 두 나라를 과연 먼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미니카공화국이 세계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492년, 이탈리아인 탐험가 콜럼버스가 스페인 여왕의 후원을 받아 신대륙을 찾으러 서쪽으로 항해를 떠나면서였다. 콜럼버스의 동생 바르톨로메오는 도미니카에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도시를 건설했는데, 지금의 산토도밍고이다. 유럽인들이 세운 첫 도시답게 당시 ‘신대륙 러시’를 이루던 탐험가들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던 산토도밍고에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거리, 병원, 다리, 궁전 등 유서 깊은 유적들이 가득하다. 1538년 설립된, 아메리카 대륙의 첫 대학인 산토도밍고 국립대학도 이곳에 있다. 살라사르 대사도 이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의 전공은 뜻밖에도 의학이었다. 의사가 대사가 된 사연이 궁금해졌다.

원래 직업이 의사였다니, 흥미롭습니다.

제가 올해 64살입니다. 17살 때 의대생이 되었으니, 의학도로 산 지도 벌써 50년 가까이 되었네요. 산토도밍고 국립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에서 마취학을 배워 전공의가 되었습니다. 귀국한 뒤에는 뜻이 맞는 의사들과 함께 병원을 세웠는데, 거기서 20년 넘게 진료실장으로 일했습니다.

의사로서의 삶과 대사로서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의사 생활은 굉장히 거칠고 힘듭니다. 병원에서 종일 환자만 돌봐야 하니까요. 환자들과 함께 병마와 싸워야 하니까 전쟁터나 다름없지요. 게다가 의학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치료법이나 약이 발명되고, 늘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니까 그야말로 한눈 팔 새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쉴 틈 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실제로 수련의修鍊醫 생활은 군인이 훈련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치열하죠. 저는 이후에도 아르헨티나에서 5년을 더 공부했어요.

진료실장이 된 뒤에는 아침 6시 반까지 출근했습니다. 병원에서 첫 출근자였죠. 진료 받는 환자 등 병원의 상황 전반을 다 돌아봐야 하니까요. 퇴근시간은 밤 8~9시였습니다. 환자들을 돌보느라 잠을 못 자거나, 병원에서 살다시피 할 때도 있습니다. 환자가 있으니까 의사도 있고, 그래서 환자를 위해 저를 희생하는 게 제 삶이었죠. 집에 와서도 항상 휴대전화를 켜놓은 채 마음은 병원에 가 있었습니다.

대사가 된 뒤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의사의 고객이 환자라면, 외교관의 고객은 국민입니다. 물론 새벽같이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는 건 아니지만, 돌발상황에 대비해 언제어디서나 연락을 주고받을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죠. 외교 관계는 단순히 우호를 넘어 정치, 경제, 문화, 국방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약 36개 나라가 있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그들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만큼 그들의 입장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외교란 복잡하죠. 하지만 그럴수록 풀어가는 재미는 더 큽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개최한 공공외교주간에 참가한 각국 대사들 및 도미니카 외교부 차관과 함께.

의사에서 외교관으로 진로를 바꾸신 계기가 궁금하네요.

원래는 언론인, 그중에서도 신문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8살이던 1963년 쿠데타가 일어나고, 1965년에는 군부와 전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두 세력은 민심을 얻기 위해 방송국과 신문사 등 언론을 장악하느라 온 힘을 쏟았지요. 대학에 진학해 언론학을 공부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네가 기자가 되어 내전에 휩쓸리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며 극구 반대하셨지요. 그래서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의사가 된 뒤에는 기독교사회당에 입당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틈틈이 정치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순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목적이었죠.

2004년부터는 공무원으로 변신해 행정부 의료 고문, 대통령실 AIDS 대책위원장, 보건개학 상임위원회 이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다닐로 메디나 대통령과도 그때 친분을 쌓았는데, 대통령께서 저를 주한 대사로 임명하셔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살라사르 대사가 아르헨티나 유학 시절 근무했던 곳은 바로 중환자실이었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려고 심혈을 기울여 환자를 돌보다 보면, 어느 새 환자랑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환자가 숨을 거둘 때면 마치 가족이 세상을 떠난 듯한 심정이 되었다’ 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럴 때는 의사로서 한없이 부족함을 느끼며 비통해하다가도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도 좋지만, 자칫 다음 환자를 진료할 때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성과 감성을 겸비했기에 의사로서 인생 1막을 마치고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대사께서는 본인의 성공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을 걸 만한, 가치 있는 꿈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뭘 하든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의사였을 때는 도미니카 최고의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젊었을 때 못 이룬, 언론분야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이루고 싶어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신문에 도미니카 내 정세나 각종 현안에 대해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TV 시사프로그램의 PD로 일한 적도 있고요. 분명한 꿈이 있으면 노력할 수도 있고,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도 있지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요?

저는 아이가 셋인데, 모두 2030세대입니다. 뻔한 얘기 같지만 아이들을 만날 때면 책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청소년들 대부분이 검색을 통해 지식을 얻다 보니 사고력이 부족하고, 그나마 갖고 있는 지식들도 수박 겉핥기식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지식들이 많아요. 앞으로 깊은 사고력이 필요한 시대가 분명히 옵니다.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생각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독서가 가장 좋은 대안이지요.

그리고 여러분이 일하고 살아갈 공간인 지구를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앞세우는 서양 세계의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세상은 앞으로 사라져버릴지 모릅니다. 나보다 ‘우리’를 앞세우는 동양의 공동체적 가치관이 요구됩니다.

살라사르 대사는 ‘인생의 행복은 풍족함에 있지 않다. 서로 위하고 배려하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그럼 대사님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그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이죠. 제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직장을 못 잡고 힘들어할 때 대학 은사께서 추천서를 써 주시며 말씀하셨어요,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 고요. 저희 직원들이나 중남미 대사들 모두 저를 돕고 있으니까 저도 대사로서 큰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어요?” 그를 인터뷰한 어느 일간지에서 그에게 ‘항상 미소짓는 대사’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미니카공화국
위치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북부
면적 4만 8,671평방킬로미터(세계 128위)
인구 1,073만 5,896명(세계 86위)
언어 스페인어
수도 산토도밍고
도미니카공화국은 카리브해 인근 나라들 중에서는 쿠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다. 서쪽으로는 아이티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1844년까지 아이티의 지배를 받은 바 있다. 도미니카라는 국명은 역시 카리브해에 있는 도미니카연방과는 엄연히 다른 나라다. 도미니카라는 지명은 스페인의 가톨릭 사제인 ‘도미니코’에서 유래하였다.

살라사르 대사가 소개하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자랑거리

ⓒMariordo

1.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도시, 산토도밍고
1498년에 세워진 산토도밍고는 도미니카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한다. 해안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로, 오랜 식민지 시절과 내전을 겪었음에도 바실리카 성당 등 유적들이 잘 보존돼 있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2. 카리브해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
‘도미니카공화국의 해변은 카리브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 살라사르 대사의 설명이다. 파란색, 초록색, 청록색 등 다양한 바닷물을 볼 수 있으며, 서양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관광지 6위에 랭크된 바 있다.

3. 안정적인 국내 정치
한때 내전을 겪기도 했지만, 1966년 이후 도미니카공화국의 리더들은 큰 분쟁 없이 나라를 이끌어오고 있다. 여느 남미 나라처럼 게릴라나 테러도 없으며, 선거를 통해 안정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위 사진은 메디나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성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