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날을 생각하면 작은 흉터가 아려온다. 고등학생 때 소원이 하나 있었다. 아침밥을 조금만 천천히 먹는 것이었다. 시간이 아까워서 음식을 허겁지겁 삼키며 교실로 뛰어가곤 했는데, 소화가 안 됐는지 수업시간 내내 더부룩할 때면 그렇게 생활하는 내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신설 고등학교여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입시 결과에 주목했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추천서도 받았기 때문에 어깨가 더욱 무거웠다.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다 교실 불을 끄고 기숙사로 갔는데, 늘 잠이 부족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시험결과로 나의 모든 것을 당당히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시험을 망치고 온 날 그렇게 울었던 걸까? 뒤도 안 돌아보고 문제집을 다 버렸다. ‘이렇게 끝날 거라면 그동안 무엇 때문에 그토록 가슴 졸이며 달렸을까?’ 내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배들이 도움되는 한마디를 듣겠다고 다가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곤 “열심히 해도 안 되더라”가 전부였다.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미웠다.

그러다 어느 날 읽은 ‘특급품’이라는 수필 속 비자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윗면을 비자나무로 대어 만든 바둑판 비자반은 일등급 상품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가느다란 흉터를 가진 비자반이 특급품인데, 특급품이 되는 과정은 이렇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균열이 생긴 비자나무를 보자기로 싸서 길게는 3년까지 그대로 보관한다. 그러면 비자나무 특유의 유연성으로 상처가 아물고 결국 머리카락 같은 흉터만 남는데, 그 흉터가 바로 특급품의 인증 마크가 된다. 흉터가 있으면 안 좋은 재목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무가 상처를 이겨낸 것을 증명하므로 가치가 높아진다.

작가 김소운은 ‘한낱 목침감이 될 뻔했던 나무가 치명적인 시련을 이겨내며 특급품이 되었다’고 표현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인생을 얼마나 빛나게 하는지 이야기했다. 비자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까? 생을 향한 열정을 모두 포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절망을 이겨낸, 흉터를 지닌 비자반을 사람들은 사랑하고 ‘특급품’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수능 실패의 상처를 극복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가끔씩 아프면 아픈 그대로 내버려두고, 다만 나에게 다가오는 일들에 내 마음을 조금씩 옮겨놓았다. 전공과 관련한 공부도 했고 다양한 공모전에 참가해 장학금도 탔다. 지금은 미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공부만하던 샌님이어서인지 실수할 때가 많지만 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가고 있기에 만족스럽다.

어느덧 11월! 재작년 이맘때를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이 여전히 아리지만 그 감정들이 싫지만은 않다. 그로 인해 지금껏 내가 몰랐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진솔하게 대화하며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인생이 어떤 공식만 있으면 풀어지는 수학과목 같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문제가 찾아올 때 시선을 자주 다른 세계로 옮기는 유연성이 필요했다. 도전해야 할 많은 일들을 앞두고 있는 스물한 살 나이에 나에게 펼쳐진 길들을 다 걸어보고 싶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도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한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실컷 울어도 되고, 실망해도 되며, 상처를 빨리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새로운 희망으로 걸어가는 법을 인생 첫 도전을 통해 배운다면 그가 바로 특급품 인생으로서의 한 발을 뗀 사람이 아닐까?
 

글=임성찬 캠퍼스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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