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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일 경험해 봤나요?해외에서 맞은 첫 생일 소감
김소리 기자 | 승인 2019.10.18 20:24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대학생들이 각 나라에서 생일을 보낸 소감을 공개했습니다. 8개국 현지에서 뜻밖의 생일이벤트를 선물 받고 한국에서 느끼지 못한 감동에 젖었다고 하는데요. 색다른 생일, 색다른 경험에 행복해하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국경을 넘어 하나 되었던 날
최미정

내 나이 26살. 직장생활에 지쳐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에 해외봉사단으로 미국에 다녀온 오빠가 권유해 독일에 봉사하러 왔다. 그동안 한국에서 바쁘게 지내며 생일은 잘 챙기지도 않았는데, 내 생일인 9월 14일에 독일 자원봉사자 학생들과 동료 단원들, 센터 가족들이 모여 깜짝 생일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그들은 돈을 모아 재료를 사서 직접 케이크와 피자를 만들고 다과도 준비했다. 봉사단원 중에 제과제빵 교육을 받은 친구가 있어서 수월했다고 하며 축하 손편지도 함께 대접해 주었는데, 오랜 기간 지쳐있던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친구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생전 처음 타국에서 맞은 생일. 매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귀찮을 법도 한데 많은 사람들이 내 생일을 챙겨주느라 애쓴 것이 고마웠다. 악수와 포옹으로 생일의 기쁨을 배로 느낀 것과 독일어 축하노래 덕분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도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국경을 넘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 것이 베스트였는데, 이런 인상 깊은 생일을 보낼 수 있게 해준 모두에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날이었어!’라는 소감을 전하고 싶다.

직접 만든 케이크로 축하해주는 정성!

동료 단원들이 구워준 피자. 바질로 적은 이름이 사라졌지만 맛은 최고였다.
생일 축하노래를 독일어로 불러주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직접 구운 케이크로 축하해 주는 것을 의미 있게 여긴다. 케이크를 만들 때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과 사랑, 마음을 담기 때문이다. 생일을 맞은 사람이 어떤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살펴서 준비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생일파티를 열 때는 보통 생일을 맞은 사람이 케이크를 준비해가고, 선생님은 선물을 준비한다. 소원은 촛불을 끄기 전에 빌고 공개하면 안 된다. 소원을 공개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려요
신재희

마드리드 도시체험 중 레티로공원에서 멋있게 한 컷!

스페인에 호기심이 생긴 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하면서부터다. 또 건축을 전공하는 나는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건축가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가 스페인 사람이란 걸 알고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봉사자로 지내는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정열’이다. 사람들도, 문화도 정열적인 곳에서 하루하루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속마음을 진하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 내 생일은 9월 10일인데, 시차 때문에 일찍부터 축하를 받아 어느 해보다 긴 생일을 보냈다. 유럽 봉사단원들이 잊지 않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어 뜻밖의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함께 활동하는 멕시코 봉사단원들은 생일기념으로 멕시코 전통요리인 ‘타코’를 만들어주었고, 봉사단 지부장님은 저녁식사로 갈비를 요리해주셨다.

그리고 시작된 스페인에서의 생일파티! 현지 친구들이 내게 축하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둘러주더니 2분이 넘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즐거웠지만 기분이 묘했다. 너무 감동한 탓인 듯했다. 생각지 못했던 지인들의 축하전화도 받고, 한국에 있는 동생들이 불러주는 노래도 듣다 보니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봉사단 소식을 몇가지 전한 뒤 스페인에서의 생일을 마감했다.

스페인의 생일

친구들과 지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축하해준다.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쁘게 해주는 것이 생일을 축하하는 방식이다. 값진 물건보다 사람들이 방문해 축하해주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까미, 따냐, 모모의 선물
이고은

현지인 친구들이 전해 준 선물에 정성과 배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불가리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일을 맞았다. 현지인 자원봉사자들이 나를 식당으로 데려가 점심을 사주며 선물을 줬는데 선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미술학교에 다니는 ‘까미’는 내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려주었고, ‘따냐’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이 있는 양말을 주었다. ‘모모’는 내 얼굴을 그린 종이액자와 ‘불가리아에 와 줘서 고맙다’는 내용을 한글로 적은 편지를 주었다.

생일선물을 많이 받아봤지만 이런 선물들은 처음이었다.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다니!’ 그동안 마음을 담은 선물보다 비싼 선물, 멋진 선물이 좋다고 생각해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생일을 맞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하나씩 돌리며 덕담을 듣는다. 생일날 많은 덕담을 들었으니 앞으로 죽 행복할 것이다.

낳아주신 부모님께
노영후

“아버지, 어머니. 저를 낳아주셔서 제가 이렇게 행복한 경험을 하고 지냅니다. 생일은 지났지만 감사한 마음에 짧은 편지를 드려요. 이곳에서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들과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동유럽 사람들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제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지 못했는데,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지금은 저도 많이 달라져서 적극적으로 말도 걸고, 용기 내어 안 해봤던 일들도 해봅니다.

터키에 가서 코리안데이 행사를 하며 학생들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했다.

힘든 시간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항상 저를 기다려주셨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응원해주셨죠. 한국에서는 부모님 마음을 몰랐는데, 이곳에서 많은 걸 느낍니다. 언젠가는 부모님이 제게 보여주셨던 그 믿음에 보답할 날이 있겠지요. 감사드리고,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물벼락 생일 선물
이길태

나는 탄자니아 아루샤 지역에서 봉사하고 있다. 내 생일은 9월 4일인데, 9월 첫 주에 봉사단이 큰 행사를 개최해서 생일은 그냥 대충 흘러가리라 생각하고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생일날이 되어 예상했던 대로 바쁘게 행사를 준비한 뒤 피곤해서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함께 지내는 단원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르는 척 하려니 웃음이 나와서 일부러 장난을 치며 알아차린 내색을 하자 단원들도 웃으며 장난을 쳤다. 모두 피곤할 텐데 생일을 챙겨주려 애쓰는 모습을 보니 그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즐거웠다.

케이크의 촛불을 끄자 어디에선가 물벼락이 쏟아졌다. 친구들이 준비한 특별한 선물이었다.

하나둘 모두 자리를 비우더니 잠시 후 한 친구가 나오라고 했다. 캄캄한 밤, 밖으로 나갔을 때 단원들과 지부장님 부부가 모여 있었고, 반짝이는 촛불들이 꽂힌 케이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흥겨운 축하노래가 들렸는데, 나는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기뻤지만 겉으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노래가 끝난 후 작은 목소리로 소원을 빌고 촛불을 껐다. 그러자 한 단원이 불을 켰고 갑자기 어디선가 물벼락이 쏟아졌는데, 단원들이 나를 위해 준비한 생일선물이었다.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너희들도 젖게 해주마!’ 하며 사람들에게 달려들었지만 모두 재빨리 도망쳐 한 명도 잡을 수가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돌아가자 테이블 위에 정성껏 차려진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밥, 미역국, 계란프라이, 생선튀김, 아보카도, 오렌지, 수박…. 미역국은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생일밥 중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와 사람들이 내게 전해 준 편지를 읽었다. 탄자니아에 온 것을 환영하는 말과 1년의 봉사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표현들이었는데, 마음에 와 닿았고 감동을 주었다.

한국에서 생일을 맞을 때면 가족들과 밥을 먹거나 혼자 게임을 실컷 하는 게 다였다. 그런데 탄자니아에서의 생일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날 밤, 물벼락 사건과 친구들이 선물해준 편지 속 글귀들을 떠올리며 한참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또다른 가족을 만나는 행운
허요한

9월 2일이 생일인데, 자메이카 봉사단원들이 미국 단원들과 협력해서 일하는 시기여서 라스베이거스에서 머물렀다. 다른 나라를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생일파티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봉사단 현지지부의 가족들이 정성껏 케이크를 준비해 축하해줘서 행복한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인 누나가 예쁜 카드를 주면서 라스베이거스에서 즐겁게 지내다 가라고 하는 말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해외에서 가족처럼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다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메이카의 한 고등학교에서 행사를 할 때 댄스를 준비해 선보였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지부의 사람들 덕분에 가슴 따뜻해지는 생일을 보냈다. 축하해주기 위해 직접 만든 케이크.

친한 선배가 ‘해외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의미 있는 1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권해서 봉사단에 지원했다. 여름을 좋아해서 1년 내내 여름인 자메이카를 선택했는데, 잘한 것 같다. 한 번씩 물이 안 나와서 불편할 때가 있고 말을 배우는 게 쉽지 않지만 나를 반겨주고 순수하게 다가와주는 자메이카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을 알아가는 것이 즐겁고 만족스럽다.

코리아 클래스 학생들과 생일을~
윤슬기

아기자기한선물들로 나를기쁘게 해주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내왔기에 인도에 와서 생일파티를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인도 찬디가르에서 봉사하며 3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한번은 수업이 끝났는데도 학생들이 집에 가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한 주 뒤가 내 생일이었는데 그 주에 수업이 없어서 미리 축하해주려고 계획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한국말과 영어, 힌디어로 축하노래를 불러주었고, 전통복인 쿠르타와 팔찌, 귀걸이, 인형 등 많은 선물을 주었다. 많은 학생들이 열어준 생일파티에 놀라고 감동받은 나는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그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나에게 주었지만 부끄러워서 보지 못하고 있다.

‘발롯’에 도전하다! 생일이니까
김규리

필리핀 사람들은 케이크에 이름과 나이를 적어준다.

필리핀의 ‘카비테’라는 지역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간 지 1주일 만에 생일을 맞았기 때문에 누가 축하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지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내 생일을 확인하고 축하해주는 것이었다. 카비테 봉사단 지부의 한 아주머니는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내 이름과 나이가 적힌 케이크를 선물해주셨고, 학생들 몇 명이 노래와 바이올린 연주도 해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받았는데, ‘발롯’이었다. 발롯은 오리알을 부화 직전에 삶은 요리로 내가 혐오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싫다고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나를 위해 준비한 성의를 생각하며 도전해보기로 했고, 소감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기뻐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레크리에이션으로 생일을 더 흥겹게~

필리핀은 초코 케이크를 많이 먹고, 케이크에 이름과 나이를 꼭 적는다. 한국은 생일을 맞은 사람이 받는 문화이지만 필리핀은 베푸는 문화이다. 음식을 준비해 지인과 친구들에게 대접하면서 행복해한다. 또 생일날 레크리에이션에 참여하는 것이 특징인데, 사회자가 진행을 하고 모두가 몸을 움직이는 갖가지 게임을 함께하며 즐거운 생일을 보낸다.

남아공에서의 첫 생일파티
김예담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은 다 하는 생일파티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안 된다고 하시며 한 번도 해주시지 않으셨다. ‘그렇게 바라던 생일파티를 남아공에 와서 하다니! 그것도 브라이파티로!’ 너무 신기하고 기뻐서 한껏 들떴지만 내심 ‘내 생일을 축하해 줄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근처에 사는 현지인 친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생일파티에 와주었다. 손수 쓴 편지와 선물들도 받았는데, 모두 마음을 담아서 주었다고 생각하니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웠다.

김예담
허름한 판잣집에서 이불 몇 개로 추위를 견디는 아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가 커졌다고 한다. 소심한 성격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남아공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밝게 지낼 수 있는 지혜를 배웠다는 그는 보육교사로 남아공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온 봉사단원인 ‘슬리나’의 편지가 감동적이었다. 나는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슬리나에게 마음을 닫고 지냈다. 오해가 쌓여도 풀지 않았고, 슬리나의 결점만 보여서 얼마 전부터는 아예 말을 안 했다. 절대로 친해질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았는데, 7월에 슬리나와 무전여행을 같이 가게 됐다. 짝을 이루어 다니는 여행이어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속마음을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해서 점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슬리나는 잘하는 게 정말 많은 친구였다. 요리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배려심도 많고…. 이런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된 것과 서로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느끼면서 무전여행지에서 돌아왔었다.

중국인 봉사단원슬리나가 직접 만들어선물해준 개구리 인형.

슬리나는 중국에 가서 나를 잊지 못할 거라고 편지에 썼다. 그리고 좀 더 친절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종종 배가 아파서 잘 먹지 못하는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내용을 보니 고맙고 미안해서 울컥했는데, 생일편지를 통해 슬리나와 더 가까워진 것이 좋았다.

나는 성격이 그리 활발하지도, 소심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학생이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종종 “예담이랑 얘기하면 재미없어!” “예담이랑 있으니까 심심하네!”라고 말하곤 했다.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인데다 해외에 와 있으니 생일이라고 축하해주는 친구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는데, 작년에 함께 통학하며 사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그냥 안부를 묻는 메시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용을 보고 너무 놀랐다. 친구는 나를 아주 가까운 친구로 생각하고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주 연락하고 싶었지만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남아공에서 잘 지내다 오라고 파이팅으로 응원해주었다.

야외에서 장작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는 브라이파티를 했다.

오빠의 축하메시지도 잊을 수 없다. 항상 ‘동생아~’라고 불러주는 오빠가 그리웠는데, ‘하나밖에 없는 동생 생일을 축하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니 코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엄마. 그동안 엄마 속만 썩였다. 하고 싶고 바라는 게 있을 때만 엄마를 찾는 철부지 딸에게 엄마는 ‘예담이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이야. 행복하게 지내다 와라. 막내딸 많이 보고 싶구나’라고 하셨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게 해준 남아공에서의 생일파티! 자랑하고 또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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