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진

아프리카 가나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한 문혜진 씨. 그로 인해 20대 청춘을 휠체어에서 보냈지만, 마음으로는 온 세상을 다니며 꿈을 키워왔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척수마비로 허리는 숙이지 못하지만 마음은 수도 없이 숙이고 산 궤적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대학원에 다니며 라디오 진행도 하고 로봇 운동으로 걸을 준비까지 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본다.

어떻게 지내는지 최근의 근황을 알려주세요.

올해는 무엇보다도 걷기 위한 운동에 전념하고 있어요. 제가 운동을 하려면 치료실이나 기구가 필요한데 늘 사람이 몰리다 보니 쓸 기회가 충분치 않은 상황이에요. 일단 찾아가서 기구 사용이 빌 때를 부탁드려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요. 틈틈이 재택근무를 하고, 대학원에도 다니고 있습니다.

또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에서 ‘문혜진의 아름다운 벗’ 진행자로 한 주에 한 번씩 방송하고 있어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상해서 직접 대본을 쓰는 데 1회분에 꼬박 3일이 필요해요. 생활 속에서 영감을 받는 일이 많아서 평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대폰에 짧게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문장으로 정리하는 편이에요. 낮엔 하루 종일 밖에서 지내니까 시간이 안 되고, 부모님이 주무시는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조용히 원고 작업을 합니다.

말해주신 운동, 학업, 방송, 집필만으로도 숨이 찰 듯한데, 몸이 버텨주나요?

24시간이 모자라게 하루를 빠듯하게 써서 잠자는 시간도 부족한 편입니다. 4시간 자면 많이 자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지낸 지 벌써 5년인데 오히려 바쁜 시간들 속에서 제 몸이 더 건강해져요. 잠을 조금 자더라도 푹 자서 다음 날 새 힘을 얻고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라디오나 북콘서트를 진행하는 데 차질이 안 될 만큼 적절한 몸이 만들어졌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보다 제가 더 건강할 걸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마음의 차이인 것 같아요. 내 마음이 우울하거나 지치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힘들잖아요?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고, ‘도대체 나는 언제 쉬나?’ 하는 생각이 저라고 왜 안 들겠어요. 한 번씩 자유롭게 여행도 가고 싶고, 친구들과 넉넉하게 시간 내서 만나고 싶고…. 그렇지만 제 마음이 담긴 ‘아름다운 벗’ 프로그램이 방송되거나 공연을 진행할 때, 저를 보고 기뻐하고 감동받는 분들을 보면 정말 행복해져요. 다시 또 힘을 내서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늘 ‘어떻게 하면 방송 프로그램이 더 좋아질까?’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휠체어 위에서 남들보다 배로 바쁘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남에게 말 못할 어려움도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아요.

사실은 하나하나 다 어려워요. 제가 요추 1번 뼈가 부러져 그 위아래를 고정해 놨어요. 그래서 허리를 숙일 수가 없습니다. 식당 테이블이 낮거나 테이블 앞이 막혀서 휠체어를 가까이 댈 수 없으면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요. 세수를 할 때도 가슴팍을 세면대에 대고 한쪽 팔로 몸을 지탱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고양이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아요. 이게 안 될 것 같은데 하면 또 됩니다. 좀 불편해서 그렇지요. 일반 화장실을 쓸 수 없으니까 외부에 장시간 나와 있을 때에는 수분 섭취를 스스로 조절해요. 거의 물을 마시지 않거나 입을 적시는 정도로만 해요. 그러다 여러 번 탈수증상도 겪었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어요. 다들 측은하게 바라봐요. 사고 후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친척들이 모두 오셨는데 하나같이 울면서 갔어요.

안 그래도 마음이 울적한데 제가 슬퍼하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친구나 지인들이 “넌 할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라고 위로의 말을 제게 해주지만 실상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그냥 하는 말, 어떠한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말, 있잖아요? 어쩌면 그분들이 진심으로 저를 위로해 주었는데, 제 마음이 닫혀 있어서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베이터에 꽉 찬 사람들, 시트가 더러워진다고 승차를 거부하는 택시 기사들, 비좁다고 휠체어를 제지하는 식당 주인들.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일조차 다 상처가 됐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도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닌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것이죠. 제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잖아요. 어떤 점이 힘들고, 어떤 말이 상처가 되는지….

휠체어를 타면 이동에 제약이 있고, 화장실 가는 게 불편하고, 항상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들로 인해서 오히려 제 마음은 풍요로워집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고, 제가 어려워 봤기 때문에 다른 이유로든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어서요.

척수마비 환자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심한 통증을 느끼기에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한다. 특히 잘 때 통증이 몰려와서 점점 강한 진통제를 사용하다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혜진 씨는 약에 의존하는 대신 정신적 멘토들을 의지한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과 상담하는 것이다.

살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던 과정이 궁금합니다.

장기에 박힌 뼛조각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느라 폐가 약해졌을 때, 몇 년 전 고관절에 심한 화상을 입었을 때, 물리치료 처방이 나오지 않아 곤란할 때…. 치료의 고비마다 저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어요. 모두 감사한데요, 제일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두 분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 분은 한의원 원장님이세요. 1주일에 한 번씩 들르는데 치료를 받으러 가는 건 아니에요. 이 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져요. 제게 위로의 말을 해준 적은 없거든요. 다만 “혜진아,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네가 겪는 일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만들어줄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제 마음에 힘이 생기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또 한 분은 제가 존경하는 박옥수 목사님이에요. 사고를 당하고 한국에 온 날 목사님을 처음 만났어요. 그분은 제게 “혜진아, 너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학교를 운영하고, 소망이 없던 사람들에게 소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셨어요.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 이야기도 자주 해주셨어요, 숱한 역경을 통해 요셉의 마음이 단련된 것처럼 ‘내가 겪은 어려운 일들이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고 내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줄 계기가 되겠구나’ 하고 마음 깊이 새겼어요. 돌이켜보면 어려움도 제게는 꼭 필요한 시련의 순간이었습니다.

올해는 ‘걷는 해’로 목표를 세웠다면서요?

박옥수 목사님과 상담하면 제 마음에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요. 연초에 “혜진아, 올해는 네가 걷는 해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일어나 걸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오르는 한편 ‘12월이 됐는데도 못 걸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어린 생각도 함께 올라왔어요. 시간은 흐르는데 내 다리는 변하지 않아 너무나 압박이 가해지는 무거운 마음과 안절부절 못하는 제 모습이 상상도 됐고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2월에 목사님께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후부터 지금까지 제 몸이 눈에 띄게 변하고 있어요. 로봇다리에 의지해 걷는 물리치료를 받는데 다리에 부착된 센서가 걷는 힘을 계산해 모니터에 보여주거든요. 처음에 모니터엔 25%를 제 힘으로 걷는다고 나왔어요. 그때 ‘나에게 걸을 힘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 외에도 수영하면서 다리가 오므려지고 펴지는 게 더 뚜렷해졌고요, 작년보다 다리 근육이 더 굵어졌어요. 몇 주 전부터 새로운 로봇으로 또 다른 치료를 받는데 이건 복도를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등 이전보다 더 활동적이에요.

이런 변화들이 계속, 쉬지 않고 제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 마음이 그대로 머물러 있지 못하겠는 거예요. 모든 일의 타이밍이 소름끼칠 만큼 딱딱 맞아요. 이번 로봇 치료가 끝날 때를 계산해보니 12월 초예요.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마치 제가 걸을 수밖에 없도록 이끌고 있는 듯해요. 그래서 가슴 졸이기보다 두근거리고 앞날이 기대가 됩니다.

문혜진 씨는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인생은 여행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앞날을 전혀 예상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추억이 쌓이는, 행복한 일들이 많은 여행이라고. 삶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고민을 거듭한 결과 그녀는 생각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을 섭리로 수용하되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생각이면 모조리 버렸다. 덕분에 어떤 일을 만나든 그 안에서 기쁨과 감사만 찾아 먹는다. 그게 그녀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었다. 몇 해 전부터는 문혜진 씨의 인생 스토리를 ‘북콘서트’라는 공연에 담아 전국 곳곳에 소개하고 있는데 무대에 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희망과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북콘서트 공연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소년원 친구들이에요. 작년 6월 말, 북콘서트에서 만난 후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중에 임근희라는 학생에게 굉장히 마음이 가요. 그 학생은 ‘누가 나에게 신경이나 쓰겠어?’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삐딱했어요. 어릴 때부터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하거나 누굴 때리는 방법만 써왔기에 그 방면으로밖에 표현을 하지 못했죠. 그런데 제가 ‘널 이끌어주겠다. 나를 믿고 따라오라’고 한 말이 감명 깊었나 봐요. 그 친구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제게 연락을 하더라고요. 지금은 반려견 훈련사의 꿈을 갖고 실습 겸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말해요.

“근희야, 강아지를 훈련하는 것도 좋지만 네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겠어? 나는 네가 거기서 배우고, 시간이 지나면 나와 같이 북콘서트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네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면 좋겠다.”

지금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지만 그 학생은 제가 해준 이야기를 계속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는 항상 제게 연락을 해와요. 그게 너무나 고마워요.

걷게 되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나요?

정말 심장이 튀어나오도록 숨차게 힘껏 달려 보고 싶어요. 휠체어를 탄 이후로는 그렇게 숨차게 달릴 수가 없었으니까요. 가슴이 두근두근 뛰면서 심장이 터질 듯한 그 느낌이 가장 그리워요. 꼭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요. 그리고 걷게 되면 제일 먼저 산에 가보고 싶어요. 엄마가 늘 하시는 이야기가 있어요.

“너랑 등산 많이 다닐 걸….” 해외봉사 떠나기 며칠 전, 1년 동안 못 보니까 엄마랑 같이 도봉산에 다녀온 적이 있거든요. 엄마는 그때가 진짜 좋으셨나 봐요, 서로 끌어주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학생 때라 시간이 많았을 텐데 엄마와 같이 다닌 기억이 왜 별로 없는지 아쉬워요. 엄마와 손 꼭 잡고 등산하는 것도 참 기다려집니다.

달리기와 같은 평범한 행동이 누군가에겐 평생 간절한 소원일 수 있겠다. 더 많은 걸 갖고도 누리지 못하는 기자와 달리, 문혜진씨는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걷고, 뛰고 있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보다 더 많은 난관을 극복해낼 수 있는 건 그녀가 건강한 마음을 지녔고,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몸도 그런 마음에 맞춰서 변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인터뷰를 마친 며칠 뒤 문혜진 씨가 카톡을 보내왔다.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사고 후 절망과 우울감에 빠져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내게 얼마나 행복한 일들이 일어날까’의 기다림이 아니라, ‘얼마나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나’의 마음상태로 나타난다는 것을요. 행복은 내가 소홀히 여기는 것, 늘 가까이 있는 모든 것에 담겨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문득 ‘행복하고 싶었던 그 시절이 실은 행복한 시절이었다’라는 이형기의 시구詩句가 떠올랐다. 기자의 인생에서 사막과 같은 고초의 시간을 보낼 때 그녀의 마지막 카톡 말이 떠오를 것 같다. 나침판이 되어 길을 비춰주는 북극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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