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벤더 해외영업부 정지경 대리

의류벤더 회사에서 올해로 7년째 근무하는 정지경 씨를 인터뷰하러 회사가 있는 청담동으로 갔다.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자신이 제작을 진행하고 납품한 옷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소비자들이 남긴 별점 5점, ‘퀄리티 너무 좋아요’라고 적힌 리뷰를 보며 일하는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는 그녀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을까?

Q. 현재 하고 계신 의류벤더는 어떤 직업인가요?

쉽게 설명하자면 바이어가 원하는 옷을 만들기 위해 원단과 부자재를 준비하고, 해외 공장에서 옷을 만든 뒤 선적하여 납품하는 일입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최신물산(주)은 업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곳으로, 노드스트롬Nordstrom, 메이시스Macy’s, 앤트로폴로지Anthropologie, 탈보트Talbots 등 미주美洲 유명 브랜드를 바이어로 두고 일하고 있어요. 제가 담당하는 브랜드는 미국 백화점 브랜드인 노드스트롬으로, 바이어가 생산을 의뢰한 옷의 가격 책정은 물론, 스케치 한 장을 옷으로 만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 관리합니다. 정기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시즌 미팅이 있기 때문에 바이어와 협상을 위해 미국 출장도 자주 갑니다.

Q. 옷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처럼 들려요.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의류벤딩 업계는 업무강도가 높기로 유명해요. 보통 아침에 출근해 메일함을 열어보면 에이전시와 바이어, 공장에서 300통 이상의 e메일이 와 있어요. 메일을 모두 확인해서 바이어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변경된 사항들은 공장에도 알려요. 이때 제작 및 납품이 지연되지 않도록 체크하고, 지연되는 부분들을 해결하는 것도 저의 주업무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과정들을 거쳐야 하지요. 외국 회사들과 일하기 때문에 시차를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Q. 학창시절부터 의류분야에 진출할 꿈이 있으셨나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호텔리어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다 보니 꿈과는 거리가 먼 스페인어과로 진학했습니다. 외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또는 유학을 가서 현지 경험을 쌓는데, 저는 해외봉사를 다녀왔어요.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보다 해외봉사를 가면, 언어뿐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까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팅을 위해 한국을 찾아온 바이어들과 함께 찍은 사진.
미팅을 위해 한국을 찾아온 바이어들과 함께 찍은 사진.

Q. 실제로 해외봉사를 가서 언어와 문화를 충분히 배우셨나요?

그럼요. 1년 동안 멕시코로 해외봉사를 다녀왔어요. 특히 무전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더라고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왜 도움이 필요한지 설명했어요. 흔히들 돈이 없으면 사람들한테 그다지 도움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또 남미는 워낙 넓다 보니 먹는 음식도 정말 다양하고, 같은 스페인어권인데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각양각색이에요. 정말 생생한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해외봉사야말로 내 대학 생활의 전환점이었다’라는 게 정지경 씨의 말이다. 그녀가 학교를 다닌 부산은 얼핏 지역색이 강할 것 같지만, 한 해에 270만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을 만큼 글로벌한 도시다. 국제 포럼이나 컨퍼런스, 박람회도 자주 열린다. 해외봉사를 가서 배운 실력을 살려 그녀는 각종 이벤트에 통역으로 참여했다. 경력이 쌓이다 보니 ‘스페인어 통역’ 하면 ‘정지경’이 첫손에 꼽힐 정도로 부산에서 스페인어 통역을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Q. 통역으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한번은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중남미 출신 4인조 절도단’을 검거했는데, 통역을 해 달라는 거예요. 연락을 받고 저를 포함해 저희 과 학생 네 명이 통역을 하러 갔어요. 네 명이 한 명씩 맡아 통역을 하며 경찰조사를 마쳤는데, ‘법원에 가서 통역을 해 줄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는 거예요. 경찰관들의 추천으로 제가 통역을 하게 되었지요. 그 인연으로 지금도 부산지방법원 스페인어 통역관 리스트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어요, 하하.

같이 간 네 명 중에 두 명은 해외에서 살다 왔고, 다른 한 명은 파라과이에서 10년 동안 살다 온 친구였어요. 해외체류 경험이 비교적 짧은 제가 뽑힌 이유는 언어만 잘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Q. 그만큼 스페인어가 유창했는데, 지금 직업과 연관이 있나요?

회사가 저를 뽑아줬기 때문이죠, 하하. 취업을 준비하면서 저도 여러 번 고배를 마셨답니다. 블라인드 면접까지는 늘 쑥쑥 올라가다가도 최종면접에서 탈락했어요. 전 ‘지방대를 졸업한 문과생’이었거든요. 면접에 들어가면 인사부서 담당자들도 “정지경 씨는 꼭 합격하면 좋겠어요”라고 했지만 결국엔 떨어지더라고요. 지금의 취업세대가 겪고 있는 고충을 저 역시도 겪었죠.

그러던 중 ‘팬코’라는 회사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할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봤어요. 중남미에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는 사업을 하는데,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정말 감사하게 저를 뽑아주셨고, 그렇게 의류벤더 업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사실 의류벤더 업계는 해외 회사와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외국어를 전공한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보통은 의류학이나 섬유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많이 입사해요. 저는 섬유나 의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입사 후 처음부터 하나씩, 7년이 지난 지금도 배우면서 일하고 있어요.

입사한 회사에서 업무능력을 인정받은 정지경 씨는 1년 2개월 만에 계장으로 승진을 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을 한 만큼 회사일을 따라가는 것도 벅찰 텐데, 전문용어를 익히고 업계의 흐름을 파악할 요량으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원작소설을 영어원서로 읽었다고 한다. 지금도 좋은 영어문장을 보면 자신이 이메일을 보낼 때 쓰기 위해 따로 적어놓는다는 이야기에서 일을 향한 그녀의 열정과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Q.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재미있고 보람된 순간도 많았을 텐데요.

신입사원일 때 해외 바이어와 미팅을 준비하는 업무를 맡은 적이 있어요. 미팅 장소에 물컵 하나부터 다과까지 완벽하게 세팅해 놨는데, 그걸 보신 회장님과 부장님이 깜짝 놀라며 “신입사원이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준비하는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잘했어요.”라며 칭찬해 주셨어요. 신입사원이 척척 해내는 모습에 놀라신 거죠.

해외봉사 활동 중에 ‘월드캠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현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문화공연, 무료 아카데미, 마인드강연 등을 하는 행사인데 여기에 국회의원이나 장관, 기업인 등 VIP들이 많이 참석해요. 저는 VIP를 수행하고 영접하는 의전을 담당했는데, 그때 손님들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방법부터 테이블에 물과 물컵, 펜을 놓는 방법까지 세세히 배울 수 있었어요. 그걸 직장에서 활용한 거죠.

Q. 해외봉사에서 배운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저는 해외봉사를 하며 두 가지 정신을 배웠어요. 첫 번째는 “온 마음을 다해서 일하라”, 두번째는 “어떤 일이 생기든 ‘예스’라고 답하라Say yes to all the things”예요. 해외봉사를 가면 생활환경, 언어, 음식 등 모든 것이 한국과 다르니까 거기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 정신이 회사생활에도 적용이 되어 어떤 일을 시켜도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대답만 “Yes”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일하다 보니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해외봉사 시절, 영어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해외봉사 시절, 영어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멕시코 친구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멕시코 친구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Q. 그런 ‘세이 예스’ 정신을 발휘한 에피소드를 더 듣고 싶어요.

입사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 갑자기 ‘붉은악마 티셔츠 150만 장을 제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사실 저는 미주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는 데다 150만 장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진행하기엔 경력도 짧았어요. 시쳇말로 그런 일을 할 ‘군번’이 못 되었죠. 그런데도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단기간에 150만 장이나 되는 티셔츠를 제작해야 하니까 공장을 스무 곳 넘게 돌았어요. 구체적인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선 다른 업체들은 어떻게 제작을 하는지 확인하면서 원단 생산부터 안전성 테스트까지 직접 진행하며 하나씩 매뉴얼들을 만들어 갔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고요. 제가 가진 능력보다 더 큰 일을 맡고 해결해 나가는 동안 2년차에는 얻지 못할 값진 경험을 했어요. 그 뒤에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들이 주어져도 당황하지 않고, 제가 모르는 분야의 업무를 맡게 되어도 깊이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되었죠. 주어진 일을 모른다고, 어렵다고 피하는 게 아니라 부딪혀서 하는 동안 능력과 경험치, 사고력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지요.

Q. ‘어떤 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원’으로 제대로 눈도장을 찍으셨네요.

그렇다고 항상 잘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옷에는 세탁법이나 원산지, 소재 등이 적힌 케어라벨carelabel이 붙어 있잖아요? 입사 2년차 시절, 한번은 옷을 납품하는데 태그에 ‘코튼 스판cotton span’이라고 되어 있어야 하는데, ‘스판 폴리span poly’로 되어 있는 거예요. 미국 가는 배로 선적을 마친 뒤에야 알게 되었죠. 태그에 있는 정보는 국제법에도 정확히 명시된 거라서 잘못 기입되면 무조건 바꿔야 하거든요. 그 사실을 알자마자 땅에 주저앉았어요. 말 그대로 하늘이 노래지는 순간이었죠. 미국 현지의 공장을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지만 얼마나 아찔하던지…. 케어라벨 발주는 언제나 신중에 신중을 기한답니다.

Q.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취업을 준비하다보면 ‘전공과 맞지 않아서’ ‘이 분야는 잘 몰라서’라며 고민하고 헤맬 때가 많아요. 그런데 본인에게 딱 맞는 직장은 분명히 있어요.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직장에서 첫걸음은 누구나 0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전공과 무관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가 될 수 있답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정지경 씨와 함께 회사 근처 식당을 찾았다. 달짝지근한 코다리찜에 양념이 잘 밴 무를 한 입 베어 먹으니 감칠맛이 났다. 인터뷰를 하기 전 정지경 씨의 첫인상은 어떤 일이든 척척 해내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었다. 하지만 저녁을 먹다 보니 사람을 편하게 하는 따스한 매력이 느껴졌다. 업무가 주어질 때는 그 업무에 자신을 맞추고, 사람을 만날 때는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는 그녀. 이는 어떤 일, 어떤 상황 앞에서든 ‘예’라고 답하는 ‘Say Yes’에서 형성된 자세이리라.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