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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필리핀 제너럴 산토스 시티 로넬 C. 리베라 시장시장님, 우리 시장님
조현주 | 승인 2019.09.02 14:24

그날 로빈슨 몰에는 사회연금을 받으려고 모인 수천 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행사 연설을 마친 리베라 시장은 시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운집한 사람들 사이로 언뜻 목발 짚은 노인이 보였다. 시장은 그에게로 다가가 인사를 했고, 69세의 노인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땡볕을 가릴 오두막 짓는 목수였어요. 일을 끝내고 길을 건너다가 달려오는 자동차에 치여 그만 왼쪽 다리를 잃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외다리 노인의 사연을 듣던 시장은 둔탁해 보이는 목발로 시선을 옮겼고, 노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직접 목발을 짚고 걸어 보았다. 200페소(한화 4,600원)를 주고 샀다는 목발이 어땠을까? 무게도 문제였지만 거친 마무리가 어깻죽지에 닿을 때마다 살갗을 찔러댔다.

노인도 불편한 줄 알지만 그게 없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목발을 돌려주면서 시장은 뒤따르던 비서에게 짧게 지시했다. “노인의 연락처 좀…” 곧 차를 타고 이동하던 리베라 시장은 길에서 의료기구점 간판을 보았다. 운전사에게 차를 멈추라 하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비서에게 주며 부탁했다. “알루미늄 목발을 사서 아직 행사장에 있을 그분께 갖다드리게.” 잠시 후, 새털 같이 가벼운 새 목발이 노인의 품에 안겼다. 속 깊은 배려에 목이 멘 노인은 “시장님, 시장님, 우리 시장님”만 계속 읊조리며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요즘 우리 사회엔 고위직 내정자들의 탈법과 편법 관련 의혹이 드러나면서, 정치인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풍토가 만연하고 있다. 불신이 득세하고 보편적 양심이 상실된 이 시대에, 멀리 필리핀에서 있었던 로넬 C. 리베라 시장의 목발 이야기는 우리의 굳은 마음들을 젤리처럼 풀어준다.

얼마 전 그가 업무차 한국을 방문했고 그때 본지와 인터뷰가 잡혔다. 약속한 토요일 아침, 한가로운 명동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그를 만났다. 흐트러짐 없이 빗은 머리에 구김 하나 없는 흰 셔츠 차림이 매우 반듯한 인상이었는데, 안경 너머 눈빛엔 깊고 따스한 힘이 담겨 있었다. 한국 땅에서야 그를 알아볼 사람이 별로 없지만, 제너럴 산토스 시티에서는 길가던 아이도 단번에 알아보고 손 흔들 만큼 ‘자상한 시장님’이다.

제너럴 산토스 시티(General Santos City, 이하 젠산 시)는 7천 개가 넘는 수많은 필리핀 섬들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민다나오 섬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면적과 비슷한 그 섬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해 있는데, 바다가 육지 쪽으로 원을 그리며 들어와 젠산 시는 천혜의 항구를 이루고 있다. 로넬 C. 리베라 시장은 이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지금은 시장이 되어 이곳을 이끌어가고 있다.

리베라 시장이 밤낮없이 일하는 시청 건물이다. 그가 시장에 취임했을 때 시민수가 약 55만 명이었고 지금은 상주인구가 75만 명에 이른다.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100만 명에 가깝다.
1930년대, 대규모의 개척민을 사우스 코타바토에 이끌고 와서 정착시킨 파울리노 산토스 장군(General Paulino Santos, 1890~1945)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가 생겼다. 위 사진은 시내 중심 공원에 있는 장군의 동상이다.
젠산 시는 고층빌딩 없이 자연과 잘 어우러진 평화로운 곳이다. 사람들은 시내의 쇼핑몰 나들이를 좋아한다. 젠산 시는 민다나오섬의 33개 도시 중에서 4대 도시에 손꼽히며 ‘참치의 수도’로도 불린다.

2013년에 처음 시장이 되어 올해가 세 번째 연임이신데, 그 전에는 기업가로 활동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저희 집안은 젠산 시에서 가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젠산 조선기계공사Gensan Shipyard and Machine Works와 아시아-태평양 참치통조림회사Asia-Pacific Tuna Canning Corporation를 맡아 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참치잡이 어선을 제작하고, 잡은 참치들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외에 다른 여러 회사의 이사회 멤버로도 참여했습니다.

기업가로서 이미 공인公人의 자리에 계셨는데, 굳이 선거를 치르면서까지 공직자로 들어선 이유가 있습니까?

사업을 하다보니 여러 사회단체에 연결되었고, 시의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시정 개선과 사회발전을 위해 제가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시 공무원들과 소통이 너무 안돼서 답답했어요. 시민에게 봉사할 생각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데, 선심 쓰듯 행정을 펼쳐 나가니 일이 계속 어긋났습니다. 이럴 바에야 내가 직접 해봐야겠다 생각해서 출마했고, 2010년에 시의원이 되었습니다.

로넬 C. 리베라 시장의 재선 취임식 모습. 선서를 할 때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단상에 올랐다. 그는 모든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그 다음엔 시장에 도전하셨습니다. 유권자들이 왜 시장님을 뽑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젠산 시의 출범이 1968년이고 아버지의 RD그룹 시작은 1976년입니다. 아버지 회사가 처음엔 작은 전당포로 출발했는데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이 사회에 기여한 것을 알고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보아왔기에, 정치적 인맥도 경험도 없는 제게 점수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업의 빠른 발전 경험이, 이 도시에도 적용되길 바라는 기대치가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시장님께서는 젠산 시가 발전해갈 우선순위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지금 젠산 시의 모든 사람이 풍요롭게 사는 건 아닙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좋아지려면 첫째 요건이 교육입니다. 네댓 살 아이부터 대학생까지 모든 청소년들이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로서,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사회복지 정책입니다. 안전한 도시, 쉴 만한 집, 일할 곳이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임기 내에 시청 직원들이 일하기에 유용한 시스템과 매뉴얼을 구축하고, 이 도시가 향후 광역시가 될 수 있도록 청사진을 그리고 있습니다.

리베라 시장은 ‘클린 젠산C.L.E.A.N GENSAN(Creating a Livable Environment for All Generals Towards Nation Building)’으로 명명한 프로그램을 실행 중이다. 그 목표는 ‘국가 재건을 향해 모든 젠산 시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 만들기’인데, 괄목할 만한 수치들이 나오고 있어 정부와 유관 기관들도 실행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클린 젠산’은 도시 발전 영역을 교육, 치안과 질서, 보건 서비스, 노동 및 고용 등 10개 항목으로 나눈다. 그 다음에 관련 기업 또는 민간 단체들과 협업체계로 개선해가는 점이 독특한데, 이 프로그램으로 2017년에 갈링푹 상Galing Pook Award을 받기도 했다. 지면상 도시 변화 사례들을 자세히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클린 젠산’ 추진이 성공을 거둬 도시가 점점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내 제인 골론 리베라Jane Gollon-Rivera는 그에게 가장 헌신적인 조력자이다. 아내는 특히 교육발전과 관광산업 개발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 일을 진행하다가 계획이 어그러져 실패한 적이 있으시지요? 그럴 때 시장님의 해결 방안이 궁금합니다.

제가 사업할 때에 부도를 내고 실패한 적이 많습니다. 모든 일엔 어려운 순간이 있고 그를 통해 배운다고 봅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런 위기가 올 때 기회도 같이 온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게 사업을 가르치실 때 처음엔 책상에 앉아 있지 못하게 하셨어요. 참치잡이 배를 타고 그물 정리부터 배우게 했고, 창고에 물건 정리하는 일부터 시키셨습니다. 머리로 알면 오래 못간다고, 몸으로 먼저 배우게 하셨어요. 그래야 실패를 해도 도망가지 않고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면서요.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면 대부분 회사를 정리하고 문을 닫는데 아버지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선교를 위해 회사를 운영한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기업은 사회 기여가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갑자기 직장을 잃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돈은 다음에도 벌 수 있다”고 하셨어요.

시청 직원들과 함께 한국 IYF 마인드교육에 참석한 리베라 시장의 진지한 모습.(사진 맨오른쪽)
아버지 로드리고 E. 리베라 시니어는 참치 산업의 공로로 파푸아 뉴기니 명예총영사가 되었다. 그는 청렴한 기업인으로 존경받는다.

로드리고 E. 리베라 시니어, 그가 시장의 영원한 멘토인 아버지다. 아들이 다섯 살 되던 1976년에 아내와 함께 전당포를 시작했고 사업이 번창하여 1999년에는 RD코퍼레이션(RDC)을 설립했다. 산하에 조선업, 제조업, 수산업, 농업, 부동산, 은행, 호텔, 리조트 등 자회사만 50여 개이며, 대표기업 RD수산업은 참치잡이 선박을 1백여 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한 번도 돈자랑을 한 적이 없으셨다. 부잣집 아들인 줄 모르고 컸다는 그는 아버지 회사에 정식 입사한 뒤에야 비로소 회사 크기와 자산의 규모를 알고 놀랐다고 한다. 어쩌다 방학 때 보내주시는 해외여행이 부모님의 가장 큰 선물이었는데, 이때에도 아버지는 비싼 물건을 사는 것보다 여행에서 경험을 얻는 데 돈을 쓰라고 가르치셨다.

삶의 원칙이 분명한 교육을 받고 자란 리베라 시장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고, 네 명의 자녀들에게 똑같이 절제와 인내를 가르친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자녀들을 회사 창고에서 일하게 하고, 고기잡이도 시킨다. 보고 자란 교육의 대물림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교육을 중시하는 리베라 시장은 홈페이지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 교육을 받은 청렴한 젊은이들이 자라서 우리 사회에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대나 지역을 불문하고 모두의 공감을 끌어낼 이슈라면 교육일 것이다. 누구나 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바람직한 교육 제도의 확립과 구현은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임기가 길어야 10년 안팎인 요즘, 교육 문제는 장기 전략을 찾지 못한 채 뜨거운 감자처럼 난항을 겪고 있다. 리베라 시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그는 교육을 미래의 든든한 보험으로 알고 투자하면서, 동시에 경제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시장 첫해부터 7년차에 이른 지금까지 그는 교육의 씨앗들을 곳곳에 심어두었다. 그 결과, 교육 공약은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변화를 이뤄냈다. 수만 명의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교실 내 의자와 책상 설치, 급식제도, 장학금 등 열거할 것들이 많다.

“지금까지는 교육 환경을 좋게 바꾸려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새로운 교육을 접목시켜서,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을 바꾸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2018년 RD재단 건립 15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로고를 선보였다. 재단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을 미션으로 한다.
항구에 자리한 세계 굴지의 기업 RDC 전경. 젠산 시민들 중 한명은 이 기업의 직원이거나 직원의 가족일 만큼, 시민들의 삶에 기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교육은 한국의 국제청소년연합IYF에서 청소년들에게 실시하고 있는 마인드교육을 가리킨다. 작년에 타굼 시 불법마약 반대 행사에 참석했다가 마인드교육의 현장을 목도한 리베라 시장은 마음을 바꿀 줄 알면 외부적 상황이나 환경, 습관은 문제가 되지 않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현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전부터, 저희 시에도 마약 반대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만약 우리의 젊은이들이 모두 마인드교육을 받는다면 마약에 빠질 사람이 줄어들 것이며, 만약 그들에게 직업이 생긴다면 아무도 마약 매매에 손을 대지 않을 것입니다. 마인드교육과 고용창출은 청소년들을 올바로 이끄는 쌍두마차 같다고 생각합니다.”

젠산 시에서는 지난 4월에 월드캠프를 개최해 청소년 대상으로 마인드교육을 실시했고, 8월엔 시청 주요부서의 임원 150명에게도 마인드교육을 했다. 이때엔 리베라 시장도 학생처럼 앉아 꼬박 이틀간 교육을 받았다.

“우리가 마인드교육을 실시하는 이유는 첫째, 젊은이들을 잘 관리하고 앞길을 제시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봄에 한국의 IYF 파트너들을 초청해 월드캠프를 개최했고 마인드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이 교육으로 학생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내년에도 개최할 계획인데 시예산이 부족하면 개인적 후원을 해서라고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시민들의 마음이 행복해지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장의 고민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는 외부로의 수출증진 외에, 외지인들이 젠산 시를 방문할 방법도 찾고 있다. 이른바 관광도시로의 탈바꿈이다.

학령 전 유아들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가진 리베라 시장은 어린이집에서 읽고 쓰기를 배울 수 있게 했다.

필리핀 관광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젠산 시가 공인된 관광 시설이 많은 도시 1위로 집계됩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2015년부터 3년간 젠산 시를 방문했던 누적 관광객수는 약 500만 명입니다. 이 작은 도시에 연평균 150만 명이 넘었다는 말입니다. 이 숫자는 필리핀 방문 총 관광객 수가 2017년에 660만 명이었다는 것과 비교해볼 때 매우 고무적인 숫자입니다. 젠산 시 관광객 수는 매년 11퍼센트 이상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민다나오 지역 신규 국제공항 건설 등 관광 인프라가 강화된 요인도 있지만, 이 시점에서 제 아내인 제인 골론 리베라의 열정과 노력도 잠시 언급하고 싶습니다. 제게 늘 최고의 조언을 해주는 컨설턴트이자 삶의 동반자인 아내는 젠산 시의 모든 관광 관련 기관들이 긴밀히 협력할 수 있도록 일해왔습니다. 이제 곧 시립박물관이 완공되면 랜드마크가 더 추가되리라 봅니다.

한편, 젠산 시는 연간 40톤 이상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필리핀의 참치 수도’로 통한다. 이곳이 관광 도시로 발전하는 데엔 참치 축제Tuna Festival를 빼놓을 수 없다. 축제 기간에는 신선한 해산물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고 볼거리도 다양해서 음식여행 애호가들이 주로 방문한다. 젠산 시의 참치는 품질이 뛰어나 필리핀 전역뿐 아니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 최고급 횟감으로 수출되고 있다.

참치 축제에 가면 최고급 참치회를 킬로당 300~500페소(한화약 7,000원~12,000원)에 맛볼 수 있다. 이 축제는 추수감사절처럼, 풍부한 참치 어획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올해엔 8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열린다.

9월의 참치 축제에 관해 소개해주세요.

태평양의 참치 떼가 이곳을 지나가는 때에 맞춰 매년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9월 초에 젠산 시 앞바다는 참치들의 휴게소가 되거든요. 참치 모형을 들고 행진하는 퍼레이드, 참가자들의 스트리트 댄스 경연, 한밤의 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가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전 세계 참치 관련자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도 개최해, 참치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논의합니다.

우문愚問인 줄 알면서 인터뷰 말미에 질문을 했다. 임기가 만료되는 3년 뒤 그의 행보에 대해서 말이다. 기업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지, 공직자 10년 경력을 더 늘릴 것인지 궁금했다. 임기가 끝난 시장들은 대부분 국회로 간다고 답한 그는, 자신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당분간 시정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임기 후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내가 지금 하고 있다면, 시장으로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간과하는 것 아니겠냐’며 덧붙여 말했다. 그의 현답賢答이 만찬을 마무리해주는 상큼한 디저트 같았다. 젠산 시 사람들이 왜 ‘시장님, 우리 시장님’ 하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글=조현주 발행인

조현주  realantiqu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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