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컬쳐 세계 문화
세상의 모든 지식,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송지은 기자 | 승인 2019.08.13 17:14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 톱을 달리는 유튜버 나동현 씨는 본명보다 ‘대도서관’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대도서관은 시뮬레이션게임 ‘문명 시리즈’에 등장하는 건축물로, 정식명칭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의 건설 여부가 게임의 승패를 결정지을 만큼 중 요한 건축물이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어떤 곳이었을까? 동양권에서는 다소 낯설지만, 서양권에서는 지금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지혜의 아이콘이자 인류 문명의 보고寶庫로 여긴다. 기원전 331년, 동서양을 아우른 정복자였던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지금의 이집트 북부 지중해 인근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울 것을 명한다. 그 도시가 바로 ‘알렉산드리아’였다. ‘이곳을 전 세계 무역과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것이 알렉산더의 야심이었지만, 그는 도시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기원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낸 도서관의 내부와 외부 모습이다.

그런 알렉산더의 유지를 계승한 인물이 있었으니, 알렉산더의 부하장군 프톨레마이오스였다. 이집트 총독이었던 그는 기원전 305년,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았다. 이후 17대 275년간 지속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시작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수학·물리학·생물학·천문학·문학·지리학·의학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도서관을 만들기로 하고, 이를 의욕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그리스는 물론 아프리카, 페르시아, 인도, 이스라엘 등 세계 각지의 책을 사 모았다. 심지어 알렉산드리아가 항구도시인 점을 이용해 입항한 선박들을 뒤져 책이 나오면 모조리 압수한 뒤, 필사본을 만들어 주인에게 주고 원본은 도서관에 보관했다.

집념으로는 손자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소포클레스·아이스킬로스·에우리피데스 등 고전비극의 원본을 아테네에서 빌려왔다. 물론 반납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 아테네에 막대한 보증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원본은 자신이 차지하고 필사본을 만들어 돌려주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을 각오한 결정이었다. ‘보증금으로 낸 금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책은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모인, 오늘날로 치면 구글에 비견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더 이상 단순한 책 창고가 아니었다. 실험실·천문대·식물원·해부실·독서실은 물론 숙박시설까지 갖춘 종합 연구단지였다. 이곳에서 이뤄낸 연구성과들은 지금의 관점에서도 놀랍기만 하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 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물론, 지구의 반지름과 둘레까지 정확히 계산해냈다. 헤론은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을 만들었는데,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것보다 1,700년 이상 앞선 것이다. 유클리드는 <기하학 원론>을 저술함으로써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 위대한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갈레노스가 쓴 열다섯 권의 의학서적들은 이후 1,200년 동안 의학의 표준으로 인정받았다.

도서관에 보관했던 파피루스.

오늘날 우리가 읽는 구약성경도 이곳의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을 토대로 편찬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학자들은 왕조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서로 배우고 교류 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지식을 창출했다.

하지만 한때 70만 권이나 되는 장서를 보유하며 융성하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쇠퇴하면서 차츰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수백 년간 공들여 세운 도서관이었지만, 무너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원전 48년에 알렉산드리아를 침공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실수로 4만여 권이나 되는 책을 불태웠고, 서기 270년에는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도서관 일부가 파괴 되었다. 640년에는 무슬림 정복자 오마르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완전히 파괴시키고 말았다. 아무리 뛰어난 지혜도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소멸한 이후 안타깝게도 서구 문명은 약 천 년 동안 암흑 시대를 맞이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명맥을 이어 2002년 이집트에 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개관했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소멸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아쉬워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들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엄청난 업적들을 남겼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금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결코 옛것을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내가 뭔가 안다’고 오만을 부릴 수도 없는 이유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도 따지고 보면 앞 세대의 노력을 토대로 세워진 것들이니 말이다. 지금은 사라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송지은 기자  songj8612@gmail.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지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