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파나마 운하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사진으로만 보던 곳을 실제로 간다’고 생각하니 흥분되고 설레었다. 직접 본 파나마 운하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1914년에 총 길이 82킬로미터, 폭 33.53미터로 완공된 이 운하는 당대 최고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폭 28미터)도 지나갈 수 있다고 할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2016년에는 한 차례 대규모 확장공사를 거쳐 폭이 55미터로 늘어나면서 더 많은 배들이 운하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인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16세기 무렵부터 사람들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하나로 연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유럽에서 신대륙인 아메리카대륙 서부까지 배를 타고 가려면, 동부 해안선을 따라 대륙 남단의 드레이크 해협을 거쳐 다시 서부 해안선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거리도 거리지만, 드레이크 해협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로 악명 높다. 폭풍우가 칠때는 파도 높이가 30미터에 달한다. 이따금 남극에서 떠내려오는 빙산도 큰 위협이다.

‘사람으로 치면 허리에 해당하는, 파나마에 뱃길을 뚫으면 두 바다를 훨씬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오갈 수 있다!’ 이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겠다고 덤벼든 프랑스인이 있었으니, 페르디낭 드 마리 레셉스(1805~1894) 였다. 외교관이자 기술자인 그는 1869년,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를 완성시킨 경력이 있었다.

1881년, 레셉스는 성공을 호언장담하며 운하 공사에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파나마는 4월부터 12월까지 비가 쏟아지는 열대성 기후다. 밀림은 독사와 맹수, 벌레들로 가득했다. 가장 큰 난관은 말라리아와 황열병이었다. 결국 레셉스는 2만 2천 명이나 되는 사망자만 낸 채 공사에서 손을 떼 야 했다.

프랑스의 뒤를 이어 공사를 맡은 것은 미국이었다. 한창 공사가 진행되던 1910년대, 말라리아와 황열병의 매개체가 모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은 공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모기의 서식처인 웅덩이와 연못에 모기 박멸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도 6천여 명의 사망자를 냈고, 1914년 8월 15일 마침내 운하가 완공되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전에는 한 달 동안 2만 킬로미터 넘게 돌아가던 거리를, 불과 하루 만에 오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운하의 통행료는 과연 얼마일까? 통행료는 선박의 톤수·크기·종류에 따라 결정되는데 컨테이너선은 싣고 있는 화물의 양, 여객선은 침대의 개수나 승객수 에 비례해 요금이 올라간다. 배 한 척당 평균 통행료는 약 5만 4천 달러(한화 6,300만 원)다. 아메리카대륙을 돌아가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훨씬 저렴하기에 해운사들은 비싼 통행료를 감수하고 파나마 운하를 이용한다.

파나마 운하의 가장 큰 특징은 ‘갑문식 운하’라는 점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파나마 운하는 큰 산맥을 통과하기 때문에 산을 모두 깎아 평평하게 물길을 냈다면, 어마어마한 공사비와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희생자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이에 미국은 엘리베이터처럼 선박이 독dock(인 공저수지)에 들어오면, 물을 채우거나 빼내 배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까지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 인력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지난 100여 년간 파나마 운하는 투자한 것 이상의 시간 및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며 지금도 인류의 경 제교류와 발전에 끊임없이 기여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를 다녀온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났다. 하지만 필자의 가슴에는 파나마 운하가 남긴 감동의 여운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단순히 규모가 커서가 아니다. 물의 높낮이를 조절해 선박이 지나가는 방식이, 마치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음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어서다. 파나마 운하가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이어준 ‘뱃길’이 된 것처럼, 우리에게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견해를 받아들이는 ‘마음길’이 생성된다면 개개인의 삶에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찾아오지 않을까? 파나마 운하를 돌아보며 든 생각이다.

글=최은성 중남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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