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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외진출 1호 쇼호스트 그러나 ‘처음부터 1등’은 없다‘홈쇼핑 한류’ 주도하는 최서은
전진영 기자 | 승인 2019.07.10 09:16

지난 해 국내 4대 홈쇼핑 업체 매출은 4조 2,503억 원. TV홈쇼핑이 첫 출범한 ’95년 총매출액이 34억 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어느덧 일본, 중국, 인도, 베트남 등 해외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우리 홈쇼핑 업계에서 최서은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만 업체의 초청으로 생방송을 진행하고, 현지 직원들에게 교육까지 실시함으로써 ‘해외진출 1호 쇼호스트’가 된 것이다.

최서은
MBC ‘생방송 오늘아침’ 쇼호스트 선발대회 1위 수상을 계기로 데뷔했다. 이후 NS홈쇼핑과 쇼핑엔T쇼호스트로 활약하며 4년 연속 목표 매출액 달성상, Jump-up 쇼호스트상을 수상했다.현재 한국영상대학교 겸임교수 및 한국생산성본부 대표강사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해외서도 컨설팅 요청이 쇄도하는 그녀는 ‘홈쇼핑 한류’의 주역이기도 하다.

“원래는 ‘일 년 동안 체류하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대만 측 요청이었어요. 가정이 있어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더니 절충안으로 내놓은 기간이 한 달이었습니다.”

쇼호스트 최서은은 한 달 간 대만에 다녀온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작년 7월, 몇몇 대만인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한국을 벤치마킹하러 온 대만 1위 동삼홈쇼핑의 쇼호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최서은에게 ‘홈쇼핑 프로그램의 구성과 운영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고 했고, 그녀는 이를 쾌히 수락해 강연을 해 주었다. 이 강연내용은 대만에까지 전해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본사 방송팀장이 ‘대만에 오셔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해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작년 10월에 대만까지 가서 일주일을 머물며 홈쇼핑 전반에 대해 교육을 진행하고 왔죠. 그랬더니 ‘아예 1년 동안 체류하면서 더 많은 걸 가르쳐 달라’고 하더군요. 논의 끝에 한 달 일정으로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강연식 교육이 아니었다. 협력업체와 미팅을 하며 상품을 기획하는 것부터 상품 디스플레이, 무대 디자인, 카피 작성, 카메라 촬영까지 홈쇼핑의 모든 것을 몸소 보여주며 가르친 도제식 교육이었다. 내친김에 직접 방송에도 출연해 상품의 판매를 맡았다. 출연 횟수는 무려 열여덟 번! 그녀로서도 업체로서도 상당한 모험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국인 쇼호스트가 통역을 앞세워 숨가쁘게 제품들을 설명하는 것을 본 고객들로부터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그녀가 소개한 제품들은 전보다 최대 세 배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최서은식 컨설팅’의 효과를 체험한 현지 직원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우겠다며 의욕을 불태웠고, 덕분에 동상홈쇼핑은 업무 분위기에 회사 시스템까지 바뀔 정도로 큰 변화가 이뤄졌다.

홈쇼핑 진행자, 그러나 ‘처음부터 일류’는 없다

쇼호스트 하면 흔히 세련된 옷차림에 똑 부러지는 말솜씨, 그리고 제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해박한 지식으로 시청자의 구매욕을 일으키는 여성 진행자를 떠올린다. 최서은 역시 이런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쇼호스트다. 그런데 그녀의 대만 원정기를 들어보니, 초 단위로 어마어마한 매출이 오가는 홈쇼핑이라는 전쟁터를 진두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란 단어가 딱 어울린다.

하지만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 최서은도 처음부터 일류 쇼호스트는 아니었다. 너무 소심한 나머지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 꺼내는, 수줍음 많은 여대생이었다. 관광학을 전공한 그녀는 항공 승무원이 되어 세계를 누비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승무원 최종면접에서 탈락했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바로 마지막 학기 ‘호텔실습 과정’에 투입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프론트나 뷔페, 레스토랑 등 요직에 배치되었지만, 그녀가 일하게 된 곳은 호텔 인사팀 내 사무직이었다. 또 한 번 큰 좌절을 맛본 최서은은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대학원에서 다시 호텔관광학 공부를 했고, 한국영상대학교 스튜어디스학과 전공 전임교수가 됐다.

“승무원 경력이 없는 제 강의를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되었지만, 어떤 교수님이 ‘다른 분야에 진출한 선배도 있어야 학생들이 다양하게 진로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격려해 주셨어요. 쇼호스트학과 학생들도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것

만큼은 직접 경험하고 가르쳐야겠다’는 의욕이 생겼어요. 방학 때 쇼호스트 아카데미에 등록했는데 마침 MBC ‘생방송 오늘아 침’에서 쇼호스트 선발대회를 열었어요.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너도나도 지원하는 분위기 속에 저도 지원서를 냈지요.”

대회는 서바이벌로 진행되기에 특별한 사연이나 지원동기가 있는 사람, 재능과 끼가 있는 사람이 쉽게 주목받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작 본방송에서 편집되는 자신을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았다. 하지만 반전은 있는 법! 한번은 직접 쇼호스트가 되어 소보로빵, 고무장갑, 딱지, 화투 중 하나를 파는 미션이 주어졌다. 최서은이 뽑은 것은 화투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골을 넣는 게 축구선수의 숙명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제품을 팔아 야 하는 게 쇼호스트의 숙명이다. 위기상황에서 그동안 강연을 하며 다져온 논리적 접근법과 조리 있는 화법이 빛을 발했다.

“막막했는데 생각해보니 화투의 장점이 떠오르더군요. ‘화투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놀이’로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아이들은 화투로 숫자 세기, 그림 맞추기를 하며 놀죠. 아이들이 즐거우면 어른들도 즐겁죠.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기려고 머리를 쓰니 치매가 예방돼요. 엄마는 아빠가 숨긴 비상금을 찾아낼 수도 있고요.”

처음엔 ‘난 이런 거 못 해, 안 돼’ 싶은 미션이었지만, ‘한번 해 보자’고 적극적인 자세로 덤벼드니 자신이 생각해도 신통하다고 여겨질 만큼 아이디어가 술술 나왔다. 결국 그녀는 대회 1위에 올랐고, NS홈쇼핑 쇼호스트로 특채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진정한 프로는 머리보다 몸으로 말한다

하지만 특채는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사 전까지 직장에 다니며 나름 고생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쇼호스트가 직업이 되어 느끼는 무게감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입사하자마자 건강기능식품을 맡았어요. 실력이 있어야만 배치되는 분야인데, 제가 준비기간도 짧고 실전경험도 부족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답답했어요. 회사는 물론 행여 다른 팀원들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하루 세 시간씩 자며 방송 준비를 했지요.”

‘뭐든 하나라도 더 알면 도움이 되겠다’ 싶은 절박함에 그녀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물으며 조언을 구했다. 선후배, PD, 카메라맨, 카피라이터, 협력업체 직원까지…. 그렇게 산전수전 공중전을 치르는 동안 최서은은 제품 기획, 상품 구성 및 진열, 조명 및 카메라의 앵글과 이동방향, 카피 작성 등 홈쇼핑 전 분야를 두루 꿰게 되었다. 나중에는 전화주문 수와 프로그램 분위기에 맞춰 멘트를 하는 속도를 자연스럽게 조절할 만큼 진행 또한 능숙해졌다. 덕분에 주위에서는 ‘PD로 전직하는 건 어떻겠냐?’고 할 정도였다.

“홈쇼핑 생방송 현장은 완전 전쟁터예요. 카메라가 쇼호스트를 비추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스태프들이 화면에 나갈 제품을 세팅하고, 모델들은 투입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하지만 쇼호스트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되고, 차분한 진행으로 프로그램을 끌고 가며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아야죠.”

협력업체에서 주는 소개자료라고는 상품명·규격·재료·제품구성·가격 등이 적힌 기술서 한 장이 고작이다. 그것만으로 한 시간 이상 방송을 진행할 수 없다. 고객들이 ‘어머, 저건 사야 해’ 하고 납득할 근거를 만들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거듭하는 과정이 필수다.

“입사 2년차에 샌들을 판 적이 있어요. 앞쪽은 넓고 둥근 모양에 폭신폭신한 밑창, 십자 모양으로 된 밴드, 망사에 비즈까지 박혀 있어 자칫 촌스럽고 난감한 스타일로 비쳐질 수 있었죠. 생각 끝에 ‘연세 드신 어머니들의 발을 편하고 세련되게 하는 제품’으로 타겟을 잡았어요. 밴드와 밑창이 발을 편하게 잡아주고, 반짝거리는 비즈는 발에 액세서리를 다는 효과를 준다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생각의 흐름이 정리되면 상품 정보와 개인 경험을 첨가해 방송용 시나리오를 만든다. 단, 시나리오는 글로 써서 암기하기보다는 몸이 반응하며 자연스럽게 입에서 술술 나올 정도로 반복해 체득한다. 그래야 실전에서도 고객과 대화하듯 진행할 수 있고, ‘한국 U-20축구 결승 진출’ ‘헝가리 유람선 사고’ 등 돌발뉴스가 터지면 이를 언급하며 실시간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내 눈’ 내려놓고 ‘고객의 눈’으로 바라봐야

“홈쇼핑에는 ‘필요한 상품’은 없다, ‘사고 싶은 상품’만 있을 뿐!” 홈쇼핑 업계의 오래된 농담이다. 시청자의 이목을 끌고 매출을 높이려면 ‘객관적 정보’와 ‘논리적 설득’도 중요하지만, ‘감성적 호소’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항목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 역시 치밀한 준비와 깊은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최서은은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고객이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 있기에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며 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덕분에 그녀는 목표 매출액 달성상을 4년 연속 수상하는가 하면, NS 식품상품 ‘매출 기네스기록’까지 세웠다.

“쇼호스트가 잘하니까 상품이 잘 팔린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제가 기네스기록을 올린 상품도 ‘명절 한라봉 선물세트’였어요. 당시 인기 있던 한라봉이 황금시간대에 착한 가격과 구성으로 나왔으니 잘 팔릴 수밖에 없었어요. 매진도 제 능력이 아니라는 거죠.”

반면 쇼호스트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 제품도 소비자 기호나 트렌드와 맞지 않으면 판매는 저조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고급 흑돼지 양념구이로 방송을 했는데, 일류호텔 주방장이 개발에 참여했고 유명가수까지 출연했지만, 실적은 기대 이하였다. ‘부담없는 가격+푸짐한 구성’이 당시 홈쇼핑에서 다루는 먹거리의 대세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시장의 흐름과 고객의 욕구를 살피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매주 진행하는 쇼호스트 수업. 실전에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친다.

쇼호스트가 된 지도 어느덧 12년, 그녀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프리랜서, 한국영상대학교 겸임교수,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생산성본부 스피치 대표강사 등 다양한 직함을 갖고 활동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대만에 이어 베트남 업체로부터 쇼호스트 교육 의뢰가 들어왔다. 앞서 소개한 동상홈쇼핑 직원들의 직무교육까지 진행하며 바쁘지만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오늘을 살고 있다.

“어제도 늦게까지 수업을 하고 귀가해 대만 직원들 영상을 받아보며 직무평가를 했어요. 동삼홈쇼핑은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저도 함께 배우며 성장해나갈 거라 기대합니다. 소심한 여대생이었던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순간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아요. 누구든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게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좌절하고 싶은 난관도 숱하게 겪었지만, 주어진 일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며 약점도 강점으로 바꾸어온 최서은. 그녀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니 문득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말이 생각난다. 유순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마음은 호된 담금질로 단련된 쇠처럼 단단해 보였다.

대만에서 한 달 동안 종횡무진했던 시간들. 상품기획 미팅, 피켓문구 작성, 상품 진열과 배치, 실제 방송진행까지 아우른 그녀의 활약으로 대만 업체는 큰 혁신을 이루었다

전진영 기자  gugong81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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