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경북도지사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본인이 변화에 앞장선 것은 물론, 주위에도 변화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리더가 있다. 이철우 경상북도 지사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도 ‘변화’였다.

‘사람 팔자는 여러 번 바뀐다’고들 말한다. 이철우 지사가 그렇다. 그가 살아온 삶은 그야말로 변화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교사 4년 9개월, 군복무 2년 3개월, 국정원 직원 21년, 경북 부지사 2년, 그리고 국회의원 10년까지…. 공직자로 40년 외길을 걸어온 그는 지난해 민선 7기 경북도지사로 당선되며 또 하나의 이력을 추가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유난히 ‘변화’라는 단어를 즐겨 쓰며, 주위에도 그 중요성을 전파하는 데 열심이다. 지난해 도지사 출마를 앞두고 내놓은 자서전 제목도 <변해야 산다>였다.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어느덧 변화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어느 대기업 CEO의 ‘마누라와 자식만 빼 놓고 다 바꾸라’는 한마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리더들은 왜 변화를 강조하는가?

지사님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변화’가 아닐까 합니다. 지사님이 지금까지 거친 직업들은 ‘공무원’이란 점만 빼면 업무의 성격이나 환경, 요구되는 역량 등이 너무도 다릅니다. 변화에 익숙한 삶을 살아오신 이유가 있습니까?

저라고 특별히 변화에 익숙한 건 아닙니다(웃음). 살아남기 위해 변화한 것이지요. 지난 40여 년간 제가 거쳐 온 직업들은 공직자라는 점 외에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교사일 때는 담임으로서 반 학생들을 지도했지요. 국정원에서 근무할 때도 부서장까지 올랐고, 부지사가 되어서는 지사님을 보좌하면서 도청을 대표하여 국회 및 지역의회와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국회의원은 지역구 주민들이 뽑은 입법부 대표 아닙니까.

리더는 조직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공룡이 멸종한 건 덩치가 작아서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였어요. 그런데 사람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합니다. 몸에 익은 방식과 제도대로 살면 편하니까요. 하지만 개인이 현실에 안주하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노사가 변화에 둔감하면 그 기업은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공직자가 변화에 앞서가지 못하면 국민의 삶이 불편해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했으니, 내일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마침 7월 1일이면 취임 1주년을 맞습니다. 지자체의 수장으로서 보낸 지난 1년을 정리해 주신다면요?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경북 면적이 서울시의 31배쯤 되는데요. 구석구석 돌아보느라 한 달 이동거리만 1만 킬로미터쯤 됩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정이 돼야 집에 들어갈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지사님, 좀 쉬엄쉬엄 하시라’고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현재 경북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11일, 울릉도에서 열린 외국인 독도 말하기 대회를 마치고.
지난 6월 11일, 울릉도에서 열린 외국인 독도 말하기 대회를 마치고.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어렵습니까?

2008년까지 경북 정무부지사로 일했는데, 그때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인구가 줄어드는 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구·경북 지역은 서울보다 인구도 많고 경제력도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특히 경북 인구는 전국 1,2위를 다툴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경북을 웅도雄都라 했을까요? 하지만 지금은 지방소멸이 거론될 만큼 추락했습니다. 지난해 경북을 떠난 청년 인구만 1만 3천여 명입니다.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많아서 자연감소하는 인구도 연간 6,200여 명입니다. 전국에서 소멸위험지수가 가장 높은 지자체 열 곳 중 일곱 곳이 경북에 있습니다. 그러니 도지사인 저부터 부지런히 발로 뛰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야지요.

이철우 지사는 ‘지난 1년은 경북 발전의 밑그림을 새로 그리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취임 직후 ‘새바람 행복경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잡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청년 일자리를 잡job아주고, 아이도 맘편히 낳아 키우는 경북을 만들자’는 목표를 담아 붙인 이름이다. 직장인, 기업인, 농부, 학자, 시민대표 등 110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20~40대 젊은 층이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이들은 각 분야별로 회의와 현장 답사, 토론을 통해 실질적으로 경북을 발전시킬 정책을 만들어 제안한다. 그밖에 지역사정에 맞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북형 일자리’, 청년들의 귀농귀촌을 장려하는 ‘이웃사촌 시범마을’, 시·군 주민들이 서로 다른 지역 축제를 방문하는 ‘축제 품앗이’ 등을 시행 중이다.

취임 이후의 행보도 파격의 연속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취임식을 따로 하지 않고 직원들과의 만남으로 첫 공식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전 직원 앞에서 큰절을 했어요.

“나는 4년 임시직 말단 직원이니 편하게 대해도 좋습니다. 대신 열정을 갖고 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민원인과 외부 손님을 응대하는 등 정장차림이 꼭 필요한 직원들을 제외하면 복장을 자유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복장이 자유로우면 사고가 유연해지거든요. 도지사인 저부터 운동화에 점퍼 차림으로 근무하니까, 직원들 사이에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의전과 격식을 최소화하다 보니 상명하달식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조직문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경주에서 열린 글로벌 청년 페스티벌을 방문했다.
작년 9월 경주에서 열린 글로벌 청년 페스티벌을 방문했다.

6,500여 명의 도청 직원들과는 어떻게 소통하십니까?

‘소통하자, 소통하자’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겠죠. 제가 생각하는 소통은 바로 공감입니다. 직원들이 일하며 부딪히는 고충을 이해하는 데서 소통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이론이나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한 번이라도 더 자주 마주치고,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면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는 거죠. 소통이 되면 이해를 하고 신뢰가 쌓이고요.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함께 가벼운 운동을 하는가 하면, 노조 간부들과는 도시락을 같이 먹으며 대화합니다. 20~30대 직원들과 만날 때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나 파스타로 점심을 먹으며 대화하는데, 육아나 업무에 대한 고민이 주된 화제입니다. 간부들과는 스마트폰 단체톡방을 만들어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철우 지사가 변화 못지않게 강조하는 키워드는 ‘현장’이다. 국정원 시절, 부서장에 취임한 그는 어느 날 부서직원들에게 ‘출근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무실에서 일하기보다는 주로 외근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국정원 직원들의 임무다. 출퇴근시간에 구애받느라 업무시간과 능률을 희생하느니, 매주 화요일만 출근하고 다른 요일은 개인지급된 노트북으로 언제 어디서든 보고서를 쓰는 오피스리스 워커officeless worker로 일하라는 의미였다. 처음 1주 동안은 바뀐 분위기에 적응 못해 애를 먹던 직원들이 2,3주차가 지나면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직원들의 실적이 향상된 것은 물론, 가족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업무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졌다.

지난 5월 한동대에서 열린 반기문 글로벌 교육원 개원식. 왼쪽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오른쪽이 사마란치 주니어 IOC 부위원장이다.
지난 5월 한동대에서 열린 반기문 글로벌 교육원 개원식. 왼쪽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오른쪽이 사마란치 주니어 IOC 부위원장이다.

그 일화를 소개하신 책의 제목이 <출근하지 마라, 답은 현장에 있다>인데요. 제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정무부지사로 일할 때부터 직원들에게 ‘우리는 언제나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자주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국민이 바라는 공무원 상像이 종일 사무실에 앉아 서류뭉치와 씨름하는 사람은 아닐 겁니다. 민생현장을 누비며 그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이를 해결하는 사람일 겁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정책은 아무리 그럴 듯해도 결국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이에요.

현장경영을 중시해서 성과를 보신 사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경상북도에서는 매달 경북 내 우수한 중소기업을 선정해 시상을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대개 도지사의 일정에 맞춰 도청 접견실에서 시상식을 여는데요. 제가 정무부지사로 있는 동안, 직접 수상업체로 가서 시상식을 하는 걸로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업체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시상식이 끝나면 근로자들과 간단한 다과를 나누며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도정 운영의 지침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지요.

김천시 국회의원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7년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하실 거예요. 당시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치명적’이라며 온갖 괴담이 떠돌 때, 저는 전자파가 무해하다고 주장하며 지역 주민들을 설득했습니다. 실제로 기지 인근에 주택을 구입해 살았어요. 결국 환경부와 국방부 조사단에 의해 사드 전자파는 기준치의 6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드 괴담은 말 그대로 괴담이었던 거죠.

지자체의 장은 정부 예산을 유치해 지자체의 살림을 꾸려가고, 지역경제를 발전시켜 성장동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CEO에 자주 비유된다. 이철우 지사 역시 큰 기로에 놓인 경상북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국민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응어리진 갈등과 한恨에서 형성된 잘못된 가치관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이를 해소하는 일이야말로 국민들이 정신적 가치를 회복하고, 수도권 집중화를 극복함으로써 경북은 물론 나라 전체가 균형 있게 발전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에서다.

국회의원 시절, 전남지역 의원과 경북지역 의원들이 함께하는 동서화합포럼을 결성하셨지요?

예, 우리 국민들의 화합을 가로막는 해묵은 영호남 지역 갈등은 결국 정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 봤어요. 그래서 몇몇 의원들과 뜻을 모아 두 지역 의원들이 동서화합포럼을 만들었습니다.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교대로 방문하는 등 대화와 만남의 기회를 자주 만들었습니다. 그래야 갈등이 풀리고 온 국민이 하나되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몇 가지 한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배고픔의 한입니다. 6·25전쟁 이후 오랫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다 보니 한이 맺혀 음식을 지나치게 준비하니 음식물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땅에 대한 집착도 심하다 보니 부동산 가격이 세계적으로 높습니다.

직업에 대한 잘못된 태도도 한에서 비롯됐습니다. 우리 청년들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은 먹고살기 위해 힘든 일, 궂은 일을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다 보니 ‘내 자식은 절대 고생스러운 일 안 했으면 좋겠다’는 비뚤어진 직업관이 생겨난 것입니다.

올해 초 미국을 방문해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을 둘러 보았다.
올해 초 미국을 방문해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을 둘러 보았다.

요즘 지자체장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단연 청년 일자리 창출입니다.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십니까?

저희 경북도 청년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농산물을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월급 받는 청년농부 등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청년이여, 농대로 가라’고 했습니다. 농업은 한때 가장 개발이 더딘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유망직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는 분야입니다. 경상북도가 여러분의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이철우 지사는 ‘생각도 바꾸고, 행동도 바꾸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바꿔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기자가 보기에 그의 인생 첫 변화는 중학교 교사에서 국정원으로 자리를 옮긴 일이었다. ‘좁은 교실에서 평생을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는 선배 교사의 조언이 계기였다. 평생 변화라는 한 가지 화두만을 생각해 왔던 그가, 이제는 267만 도민의 삶의 터전인 경상북도를 바꿔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훗날 ‘이런 도지사도 있었구나’ 하고 도민들에게 기억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 꿈이 참 소박하면서도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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