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가 독일을 여행하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 들렀을 때다. 거리 담벼락에 포스터가 붙어 있어 들여다 보니 한 여성 피아니스트가 독주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포스터 맨 아랫줄에는 ‘피아노의 왕자,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다. 이렇게 낯선 사람이 내 제자라니!’

그날 저녁, 리스트가 그 마을에 왔다는 소문이 쫙 퍼졌고, 그 소식은 독주회를 준비하던 여자의 귀에도 들렸다. 여자는 깜짝 놀랐다. 사실 그녀는 리스트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 여자는 병든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독주회를 열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명 피아니스트의 독주회에 사람들이 올 리가 없었고, 고심 끝에 리스트의 제자를 사칭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독주회 바로 전날 리스트가 그 마을을 방문한 것이었다.

‘어쩌지? 리스트 선생님도 독주회 포스터를 보셨다면….’

밤새 고민하던 여자는 다음 날 일찍 호텔로 리스트를 찾아갔다.

“선생님, 마을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셨지요? 독주회를 할 사람이 바로 접니다. 어머니가 병이 드셔서 치료비가 필요한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 같은 무명 연주자의 공연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아 감히 선생님의 이름을 팔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장 가서 사람들에게 잘못을 빌고 독주회도 취소하겠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소. 자, 여기 와서 피아노를 한번 쳐 보겠소?”

리스트의 말에 여자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 피아노를 쳤다. 뜻밖의 훌륭한 연주에 리스트는 적잖이 놀랐다.

“멋진 연주였소. 이번에는 내가 한번 쳐보겠소.”

물론 리스트는 그 여자의 실력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어떻소?”
“선생님 연주를 들으니 제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겠어요.”
“그러면 그 생각을 하면서 다시 쳐보시오.”

그렇게 리스트는 여자의 부족한 점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자, 이렇게 나한테 피아노를 배웠으니 이제 당신은 나의 제자요. 오늘 저녁 사람들에게 멋진 연주를 들려주기 바라오.”

그날 밤, 이름 없는 피아니스트는 감격과 감동에 젖어 연주를 했고 청중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 후로도 리스트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간직한 채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일들 앞에서 상대방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말 못 할 사정을 가진 이의 처지를 헤아리고, 나아가 그 아픔을 포용해줄 줄 아는 마음을 가졌다. 그 마음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 인생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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