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주장훈

수능성적표와 아버지

2012년 11월,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학생으로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는데 결과는 너무나 처참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12년간 치열하게 공부해왔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실패의 상처에 아파하며 눈물을 흘러야 했다. 수능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날, 아버지가 내 점수를 보시고는 짧게 한마디 말씀을 하셨다. “주장훈, 너 나한테 다시는 공부한다는 이야기 꺼내지도 말아라.” 아버지는 그동안 가슴 속에 쌓아둔 나에 대한 온갖 감정들을 한꺼번에 쏟아내시는 듯했다.

대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많은 걸 포기하고 달려온 나에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나는 그날부터 아버지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와 마주치기 싫어서 늘 피해 다녔다. 어쩌다 집에서 만나면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시고 나에게 “용돈은 있냐?” 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돈을 책상 위에 두시고는 조용히 나가셨다. 아버지는 점점 내게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 갔다.

미워하는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고, 그 사람을 피하기 위해 PC방과 술집을 전전하는 것도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벗어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고등학교 동창생 한 명이 외국에서 지내고 있는 소식을 접했다. 학창시절에는 오로지 성적에 매달려 웃음기 없이 지내던 친구인데, 사진 속에서는 봉사활동을 하며 현지인들과 어울려 환하게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친구를 보니 너무 부럽고, 나도 무언가에 열정을 쏟으며 그런 웃음을 웃어보고 싶어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무척 반가워하며 해외봉사단에 참여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나는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을 느끼며 봉사단 워크숍에 참석해 트레이닝의 과정을 거친 후,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나 또한 행복해지기 위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나라 ‘아이티’로 11개월의 봉사여행을 떠났다.

오토바이 사고 후의 대화

아이티에 대한 첫인상은 강렬했다. 길거리는 쓰레기와 흙더미로 넘실댔고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어둠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평균기온이 37도를 웃도는 아이티의 날씨는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아침마다 먹는 설탕죽이 입맛에 맞지 않아 한동안 고생했고, 나보다 어린 봉사단원들과 의견을 조율하며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목표가 도움을 주고 기쁨을 느끼려는 것인 만큼 힘들어도 괜찮은 척 견디며 최선을 다했다. 아이티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칭찬해 주었는데, 나는 기대했던 행복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 무렵, 봉사단 주관으로 매년 아이티 시청에서 열리는 영어캠프를 알리기 위해 여러 학교를 찾아가 교장 선생님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 한번은 무더위를 뚫고 현지인 ‘아벨’이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영어캠프를 홍보했다. 어쩌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기름이 흘러 있는 걸 보지 못하고 달리다가 미끄러져 모두 바닥에 굴러 넘어지고 말았다. 무척 놀랐지만 얼른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보니 아벨의 팔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나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다친 곳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센터로 돌아왔다. 봉사단 지부장님은 사고 소식을 듣고 나를 살펴보시더니 숙소에서 좀 쉬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몸에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한 나는 푹 자면서 피로를 풀려고 누웠다. 그런데 온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팔이 점점 아파왔고, 넘어지면서 부딪힌 몸 이곳저곳에 통증이 느껴져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다.

아침이 되자 지부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영어캠프 후원건으로 어느 기업인을 만나는 자리에 함께 가자시며 정장을 입고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몸도 아프고 잠도 못 자서 가기가 싫었지만 짜증스러운 표현을 할 수도 없고 아프다는 핑계를 대기도 싫어서 꾹 참고 따라나섰다.

두 시간 동안 겨우 버티며 캠프를 소개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지치고 덥기까지 해 지부장님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아픈 나에게 왜 이런 일을 시키지? 대체 뭐 하러 이곳에 왔을까? 아, 정말 힘들다. 한국에 있었으면 그냥 편하게 지낼 텐데….’ 생각할수록 솟구치는 화를 참을 수 없어서 지부장님을 찾아가 따지듯 물었다.

“왜 저를 보내셨어요? 넘어져서 아픈데 제가 꼭 가야 했나요?” 나는 지부장님이 옹색한 변명을 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하셨다. “장훈아, 미안해. 나는 네 마음을 전혀 몰랐다. 쉬면 될 줄로 알았는데 생각한 것보다 더 힘들었구나. 내가 너무 잘못했다.” 내가 속에 담아두었던 분노를 쏟아내고 돌려받은 것은 미안하다는 사과였고, 진심이 담긴 마음이었다.

꽉 막힌 마음 통하게 하는 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아카데미 수업을진행하고 있다. 가난해도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들은 내게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아카데미 수업을진행하고 있다. 가난해도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들은 내게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지부장님 앞에서 10분이 넘도록 울었다. 그리고 20년 넘게 묵혀 두었던 내 마음속 답답한 무언가를 꺼내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왕따를 당했어요. 너무나 바보 같고 한심한 건 반 34명중에 30표를 얻어 반장이 되었던 제가 하루아침에 친구 한 명 때문에 왕따가 된 거예요. 담임 선생님이 반 친구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지시하시면 저는 두렵고 무서웠어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죠. 엄마는 이 사실을 아시고 제게 말씀하셨어요. ‘장훈아, 많이 힘들지? 사람들이 너의 약점이나 속마음을 알게 되면 너를 흉보고 무시할 수 있으니까 이런 일은 말을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힘들더라도 그냥 조용히 참고 지내보자. 알겠지?’라고요. 엄마는 제가 친구들 사이에서 상처받지 않길 바라셔서 그렇게 이야기하셨지만 저는 그때부터 제 속마음을 감추고 지내왔어요.”

지부장님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나를 비웃거나 무시하시지 않고 오히려 힘들었던 자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이제껏 몰랐던 지부장님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지부장님이 진정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장훈아, 사고가 일어난 건 위험하고 큰일이지. 그런데 사람마다 문제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 몸은 쉬고 병원에도 가지만 마음까지 환자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강인하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야. 네가 아이티에서 봉사하면서 어렵고 힘들 때도 웃을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 나도 어렸을 때 상처 때문에 많이 아파했지만,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어려움도 이겨내지 못했을 거야. 네게 찾아온 문제들을 안 좋게만 보지 말고 진짜 행복을 느끼게 해줄 기회라고 생각해 봐!”

지부장님과 대화를 하면서 나는 세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 그동안 내가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과 둘째, 고민거리는 말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미워했던 사람과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고, 사소한 문제도 꺼내놓고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아이티에서 눈에 보이는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편해지고 그들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행복이 자연스럽게 커져갔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형과 함께.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형과 함께.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아버지께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동안 내게 상처를 준 아버지를 원망하느라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려 보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을 때 느끼셨을 허탈함과 스트레스, 기대했던 자식이 실패하자 찾아온 절망감,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이런 감정들에 시달리며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셨는지도 모른다.

이후 소소한 이야기부터 진짜 하고 싶었던 말까지 문자 메시지나 편지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와의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긴 이야기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아마 아버지도 아이티에서의 나처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라 혼자 고민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께 다가가기가 쉽지만은 않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도 어색하지만 아버지 마음의 문을 두드려보려 한다.

지금까지는 애써 무관심한 듯 지내며 아버지와 마주하는 상황을 피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내 자신을 숨기지 않고 아버지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며 지내고 싶다.

글=주장훈(굿뉴스코 해외봉사 아이티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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