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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 피쉬’ '허풍쟁이 아버지의 말에 숨어 있던 사랑을 찾아내다'
이상훈 | 승인 2019.06.03 15:22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를 무용담을 쏟아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자 아들.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 같던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영화 <빅 피쉬>는 판타지라는 형식을 통해 몽환적,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빅 피쉬 Big Fish
감 독 팀 버튼
주 연 이완 맥그리거, 알버트 피니
장 르 드라마, 판타지
제작년도 2003년
상영시간 125분

‘가위손’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흥행시키며 판타지 장르의 귀재로 불리는 팀 버튼 감독의 역작이다. 팀 버튼은 영화 ‘에드 우드’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영화감독으로 선정된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에게 비난과 조롱을 퍼부을 때, 팀 버튼은 ‘에드 우드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 그는 내 가슴에 살아 숨쉬는 영원한 멘토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팀 버튼은 영화 ‘가위손’과 ‘빅 피쉬’의 주인공에게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를 향한 경의를 표했다. 특히 ‘빅 피쉬’ 속 아버지 에드워드를 통해서는 언젠가는 아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자신의 순수한 판타지 세계와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길 바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르다’의 사전적 의미는 ‘비교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다’이고, ‘틀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이다. ‘다름’에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없다. ‘틀림’에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분명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서로 나누는 일을 한다. 틀림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례는 시험답안을 채점할 때다. 사람들은 정답을 맞힌 사람과 맞히지 못한 사람을 기준으로 공부 잘하는 사람, 공부 못하는 사람으로 나누기도 한다.

마음에 자기만의 분명한 정답, 자기가 옳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 기준에 맞는 사람들에게는 우호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적대적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영화 ‘빅 피쉬’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그렇다.

수선화가 가득한 꽃밭에서 프로포즈하는 에드워드.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기도 하다.

‘이거 실화야?’ 영화만큼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삶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주인공 윌 블룸은 아버지가 암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한다. 사실 윌은 아버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그야말로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틈만 나면 “내가 왕년에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옛 모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모험담이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를 만큼 황당한 내용들이다.

그중 몇 가지를 보자.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출생부터 남달랐다. 할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마치 대포알이 튀어나오듯 뻥 소리를 내며 세상에 태어났다. 교회에서 예배 보는 도중에 옷이 빵빵하게 부풀어 터질 만큼 몸이 급성장하는 불가사의한 병에 걸려 3년을 침대에서 보낸다. 병이 완치된 뒤에는 야구·럭비·농구 등을 석권한 스포츠맨에 발명가, 화재현장에서 반려견을 구하는 영웅으로 맹활약을 펼친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아들도 ‘그랬나 보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허풍은 도를 더해간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는 마을에 키가 4미터나 되는 거인 ‘칼’이 나타나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가축을 해치는 등 소동을 벌인다. 자원해서 칼과 만나 담판을 지은 아버지는 둘이 함께 멀리 여행을 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 뒤로도 아버지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한쪽 눈이 유리구슬로 된 마녀를 만났는데, 그 구슬을 보면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보인다’ ‘내가 일한 서커스단의 단장이 늑대인간이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북한군 앞에서 공연하던 샴쌍둥이 자매를 미국으로 탈출시켰다’ ‘강도 짓을 한 시인에게 경제학을 잠깐 강의했더니 시인이 그걸 알아듣고 대박을 터뜨려 거금 1만 달러를 사례로 내게 보냈다’ 등.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하신 적이 없다”며 분노한다. 가족들에 대한 관심은 뒷전인 채 오랜 세월 집 밖을 나돌며 겪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아버지가 못마땅해 몇 년 동안 아들은 말도 섞지 않는다.

아들, 아버지의 허풍 속에 담긴 진실에 눈뜨다

하지만 더 이상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보며 아들은 아버지의 진심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창고를 정리하던 아들은 수상한 부동산 증서를 발견한다. ‘모처에 있는 집을 제니퍼 힐이라는 여인에게 위탁한다’는 증서였다. ‘아버지가 혹시 이 여인과 두 집 살림을 했던 건 아닐까?’

궁금해진 아들은 증서에 적힌 주소지로 찾아가 제니퍼를 만난다. 그리고 아버지의 진실과 마주한다.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떨어져 보낸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의 마음 한 편에는 늘 가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제니퍼가 무너져가는 자신의 집을 수리해 준 아버지에게 호감을 표현했을 때도 아버지는 “난 아내가 있다. 내게는 평생 그 여자뿐이다”라며 선을 그었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아버지를 만난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아들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버지는 갑자기 뇌졸중이 찾아와 병원으로 옮겨진 뒤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녀의 수정구슬에 비친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었냐?’고 묻는다. 아들은 기자가 아닌, 아버지와 같은 이야기꾼이 되어 아버지의 마지막을 들려준다. 아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는 ‘정확하구나’란 한마디를 남긴 채 숨을 거둔다.

곧바로 아버지의 장례식이 이어지고, 주위를 둘러보던 아들은 깜짝 놀란다. 거인 칼, 서커스단 단장, 샴쌍둥이 자매, 시인 등이 모두 조문객으로 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말이 완전히 허황된 거짓말은 아니었음을 깨달은 아들은 생전 아버지가 해 주시던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어머니를 만났을 때 시간이 멈췄다는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와 같은 이야기꾼이 되어 아버지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들려주는 아들.

자신을 고집하는 일=자신을 불통에 가두는 일

영화의 시작부터 아버지 에드워드와 아들 윌은 평행선을 달린다. 아버지는 사실이나 사건을 재미있게 꾸며서 전달하는 이야기꾼이지만, 아들은 ‘팩트를 그대로’ 전달하는 신문기자다. 직업만으로도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흐르기 힘든 형편이다. 하지만 영화 ‘빅 피쉬’는 아버지의 마음과 아들의 마음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임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결국 둘의 마음은 하나였음을 일깨워준다. 이런 메시지는 영화 초반 아버지 에드워드가 아들에게 건네는 한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린 둘 다 이야기꾼이야. 난 말로 하고 넌 글로 쓰니 같은 거지.”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와 틀린 것이 아닌, 전달방법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은 이야기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들은 ‘나는 언제나 사실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기자’라는, 나름의 옳은 기준을 가지고 아버지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아버지와 자신은 완전히 틀린 사람임을 강조하며 아버지의 진짜 인생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난 평생 내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소통할 수 없는 사람으로 단정짓는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다름을 인정하면 소통할 수 있다’가 된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가 아닌 상대의 언어를 사용하고, 자신의 관점이 아닌 상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기준이나 관점에서 맞다고 생각하는 언어만 일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의 말은 들어도 그 이면에 숨은 마음은 잡아내지 못한다. 실상은 귀머귀머거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소통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옳다는 아집에 갇혀 살아갈 것인가? 답은 분명할 것이다.

제목 ‘빅 피쉬’에 숨은 세 가지 뜻

마지막으로 영화제목 ‘빅 피쉬Big Fish’의 의미를 짚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빅 피쉬Big Fish’를 그대로 옮기면 ‘대어大魚’라는 뜻이다. 손가락만 한 피라미를 잡아 놓고도 ‘팔뚝만 한 잉어를 잡았다’고 부풀리는 낚시꾼 같은, 아버지의 천성이 엿보이는 제목이다.

둘째,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겹도록 들려준 이야기 중 ‘큰 메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 고향의 강에는 사람 몸집만 한 큰 메기가 살았는데, 그 메기를 잡는 게 아버지의 소원이었다. 아버지는 결혼반지까지 미끼로 쓰지만, 메기는 반지만 삼키고 달아나 버린다. 그러나 아버지는 재도전해 메기를 잡는 데 성공하고 메기는 삼켰던 반지를 도로 토해낸다. 그날이 마침 아들 윌이 태어난 날이라는 게 아버지 이야기의 줄거리다. 하지만 실제로 윌이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출장중이었고 어머니 혼자 병원에 와서 아들을 낳았을 뿐이다. 메기는 아버지가 아들을 얻은 기쁨이 그만큼 컸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셋째, 마녀의 수정구슬 속 아버지는 아들에게 안겨 강에 수장水葬되며 생을 마감한다. 신기하게도 물에 잠긴 아버지는 금세 큰 메기로 되살아난다. 메기가 아들을 낳은 기쁨을 표현하였으니, ‘아들=아버지’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렇게 영화 ‘빅 피쉬’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을 것만 같던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글=이상훈
춘천교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원주 버들초등학교 교사 및 상지영서대학교 평생 교육원 ‘생활속의 심리학’ 담당교수다. 청소년과 소외계층을 위한 인성교육과 마인드강연을 꾸준히 진행해 왔으며, 강원리더십센터, 원주·춘천교도소 우수강사로 선정되었다. <문학광장> 신인작가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상훈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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