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에게는 남을 미워하고 헐뜯고 짓밟으려는 독한 본성들이 잠재되어 있다. 다만 이런저런 상황들로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것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 ‘착한 사람’ 그리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서부아프리카 정글 속에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사방이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주민들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나무들을 전부 베어내고 거기에 움막을 50여 채 지어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바깥세상을 전혀 모른 채, 그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지냈다. 해가 뜨면 남자들은 집을 수리하거나 몇몇이 모여 사냥을 나갔고, 마을에 남은 여자들은 채소밭을 살피거나 곡식을 빻아 가족이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그냥 흙에서 뒹굴며 노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일상이 그들의 삶 전부였다.

이 표범은 다른 표범하고 달라요

정글 안의 마을은 언제, 어떤 동물이 나타날지 모르는 곳이라서 추장은 항상 한 손에 창을 들고 다녔다. 그날도 마을 곳곳을 돌아보려고 창을 들고 나선 추장은 나무 그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어린 표범 새끼를 아이들이 데리고 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장이 다가가서 물었다.

“얘들아, 그게 뭐야? 표범 아니야?”
“예, 추장님. 표범이에요. 아버지가 사냥 나갔다가 잡아오셨어요. 아주 귀엽죠?”
“새끼 표범이 자라서 어른 표범이 되면 무서워! 위험하니까 죽여야 돼!”
“추장님, 아니에요. 이 표범은 다른 표범하고 달라요.”
“똑같은 표범이야.”
“아니에요. 달라요. 우리 아버지가 이 표범에게 고기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죽만 먹이고 있어요. 이 표범은 너무 순해요. 토끼보다 더 순해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친구예요.”
“아니야. 지금은 온순해 보여도 자라면 무서운 표범이 돼. 그러면 우리 마을 전체가 위험해져. 지금 없애야 돼.”

새끼 표범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멀뚱거리며 쳐다보고만 있었다. 추장은 표범을 찔러 죽이려고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들어올렸다.

“추장님, 제발 죽이지 마세요. 표범이 불쌍해요…. 이렇게 착한 표범을 왜 죽여요? 아버지가 죽만 먹이면 아무 일 없다고 했어요. 보세요. 얼마나 고분고분한데요.”

아이들의 울먹이는 소리에 추장은 멈칫했다. ‘이 표범이 크면 맹수가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표범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내가 표범을 죽이면 아이들이 몹시 슬퍼하겠지? 지금은 어리니까 당분간 두고 보자.’ 추장은 치켜들었던 창을 내려놓았다.

“얘들아, 이 표범이 자라면 아주 무서운 맹수가 되니까 조심해야 한다.”
“네, 추장님. 절대 표범에게 고기를 먹이지 않을게요. 죽만 먹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무언가 마음에 미심쩍은 게 없지 않았지만, 추장은 창을 거두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그럼 너희들이 약속한 대로 표범에게 고기를 주지 말아야 한다. 절대 고기를 주면 안돼.”
“예, 고기는 절대 안 먹일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추장은 돌아서면서도 내심 염려스러웠지만, 정글에서 아이들이 딱히 가지고 놀 장난감도 없고 또 아이들이 표범과 같이 잘 지내기 때문에 ‘뭐, 괜찮겠지’ 하며 그냥 넘어갔다.

“우리 추장님은 괜히 그러셔. 이 표범이 얼마나 착한지 알지도 못하시면서….”

아이들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래도 모르니 추장님 당부대로 표범에게 고기를 먹이지 말자고 서로 다짐했다.

숨어 있던 맹수의 본능

그렇게 아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새끼 표범은 표범답지 않게, 토끼처럼 즐겁게 지냈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서 표범도 자라나 덩치가 커졌다. 표범은 다 자란 뒤에도 여전히 순했고 고기를 주지 않아도 매일 죽을 잘 먹었다. 아이들은 표범과 뒤엉켜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숲 속에 갈 때는 꼭 표범을 데리고 다녔다. 우람한 표범이 동행하면 다른 짐승들이 겁을 먹고 도망가기에 표범과 함께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면 좋으련만,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생겼다. 아이들이 표범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갔는데, 맨 앞에 한 명이 서고 다음에 표범, 그 뒤로 두 아이가 좁은 언덕길을 한 줄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쩌다 선두에서 걷던 아이가 돌멩이를 밟았다. 그 순간 돌멩이가 언덕으로 떨어지면서 아이도 언덕 아래로 같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이는 뒹굴뒹굴 구르면서 저 아래로 멀리 떨어졌다. 깜짝 놀란 두 아이들이 친구 이름을 부르며 언덕을 돌아 뛰어갔다.

아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자 표범도 아이를 찾아 언덕 아래로 날아가듯이 내달렸다. 표범은 쓰러진 아이를 찾아내 곁으로 다가갔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표범은 바위에 부딪힌 아이의 무릎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표범은 피를 닦아주려고 혀로 아이의 무릎을 핥았다. 그 순간, 표범의 혀에 피의 비릿한 맛이 짜릿함을 불러일으키면서 온몸에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원래 표독한 야성을 가진 맹수이지만, 이 표범은 지금까지 한 번도 고기를 먹지 않았고 피를 맛본 적이 없었다. 죽을 먹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표범이 피 맛을 보는 순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숨어 있던 야생의 강한 본성이 깨어났다. 두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한 표범은 앞발을 높이 쳐들어 쓰러진 아이의 가슴을 단번에 찢어 갈랐다. 이젠 표범도 자신의 잔인하고 표독한 본성을 숨기거나 자제할 수 없었다. 견딜 수 없는 충동이 표범을 휘감아 아이의 몸을 잔인하게 해쳤다.

이런 일을 모르는 두 아이가 그때 언덕 아래에 도착했고 친구와 표범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표범아, 왜 그래, 너 왜 그래?”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표범의 눈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몸을 날려 두 아이를 움켜쥐었다.

“표범아, 왜 그래?”
“으으악!”

두 아이의 가슴도 잔인하게 찢겨졌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표범은 바닥에 쓰러진 아이들을 뒤로하고 유유히 숲속으로 사라졌다.

다시는 교도소에 오지 않을 거야

우리 마음 안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어 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있고,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도 있으며, 아주 고운 마음도 있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거나, 아버지가 자식들을 사랑하고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하는 따스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표범이 가진 잔인한 기질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는 잠자고 있는 악한 마음이 있다. 다시 말해, 음탕하거나 거짓되거나 가증스러운 마음이 우리 안에 숨어 있다. 마치, 어린 표범 안에서 잠자고 있던 야성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평소에는 아무리 잘 참고 친절하고 포근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어떤 충격을 받거나 정신에 자극이 가해지면 아주 못되고 악하고 잔인한 기질이 드러난다. 살인하고 간음하고 남을 짓밟고 모욕하는 그런 악함이 사람들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걸 잘 모른다.

예를 들어, 중범죄로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그는 20년 동안 교도소 안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교도소 밖에서 갖가지 죄를 짓던 사람이 교도소 안에서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으니, 죄를 짓던 삶이 끝나고 자신이 바르게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도소 안에서는 사람들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사기를 치고 싶어도 칠 수 없고, 도둑질도 할 수 없고 간음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변한 줄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같이 지내던 동료들과 악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손 씻었어. 다시는 여기에 안 들어올 거야. 내가 전에는 참 나쁜 놈이었는데 이제 마음을 바꿨어. 난 다시는 이런 곳에 안 들어와. 이제 바르게 살 거야.”
“그래, 축하한다. 잘 나가라.”

그렇게 인사를 하고 출소한다. 그 안에 있을 때에는 동료들에게 다정했고 빵 한 조각도 나눠먹으며 오순도순 지냈는데, 교도소의 철문이 열려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오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교도소 안에서는 도둑질을 할 수 없어서 못했고, 간음을 할 수 없어서 못했고,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만약에 출소한 사람에게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거나 도박을 할 기회가 다시 주어지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마약을 한 번도 안했어. 나는 그동안 도둑질을 한 번도 안했어. 난 정말 깨끗하게 살았어’라는 착각 때문에 그런 기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몇 개월 만에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나는 교도소에 또 오겠구나!

교도소에서 17년을 복역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출소자들이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진짜로 죄를 짓지 않을 거야. 내가 정말 변했다고! 10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죄를 안 지었는데 내가 무슨 죄를 다시 짓겠어?’ 그 남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막상 출소를 앞두자 영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가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봤는데 특별한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종교를 가진 기독교 지도자나 가톨릭 지도자, 불교 지도자 같은 사람들로 교도소 안에서 매우 선량하게 생활했다. 그들이 믿는 종교는 달라도, 교도소 안에서 희생과 봉사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정말 그들은 죄를 짓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남자는 평소에 그들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저 기독교 지도자, 세상에 저런 천사가 어디 있을까? 교도소에서 지난 10년 동안 너무 착하게 지냈어. 자기 먹을 것도 덜 먹고 남에게 나눠 주는데…. 교도소에서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진실하고 깨끗하고 희생적인 저런 사람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길 들어왔을까?’

그런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출소했다가 얼마 뒤 다시 들어오는 것을 그 남자는 똑똑히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들보다 못한 나는 여길 나가면 틀림없이 다시 들어오겠구나.’

그 남자는 아직 교도소에서 나간 것이 아닌데도, 다시 들어오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교도소에 있다가 출소한 사람들이 통틀어 몇 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남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을 믿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실하게 살면 자기가 정말 성실한 사람인 줄로 알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교도소에서 성실과 근면의 대명사였던 종교 지도자들이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은 한 달도 못돼 들어오겠다.’ 싶었다. 그 남자는 교도소에서 성경도 읽고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죄를 안 지으려고 각오하고 결심해도 자신이 없었다. 재소자들은 교도소 안에서 10년, 20년

지내면서 죄를 지을 수 없는 환경이라 죄를 못 짓는 것이지, 죄를 짓는 본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도소에서 10년, 20년 동안 도둑질을 안하고 살인도 안하고 간음도 안했으니까 자신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날 새끼 표범을 죽였더라면

표범도 죽만 먹였을 때에는 정말 양순했고, 옆에 토끼나 송아지가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다친 무릎에서 흘러내리는 피 맛을 본 순간 평소에 함께 지내며 자기를 돌보아 주었던 아이들의 가슴을 잔인하게 찢었다. 악독하고 잔인한 맹수의 본성이 용솟음치며 살아난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내가 도박을 그만해야지. 마약을 그만해야지. 게임을 그만해야지. 도둑질을 그만해야지. 거짓말을 그만해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하며 다짐한다. 그것은 사람이 가진 악한 본성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실제로 표범이 피 맛을 느끼자 변했던 것처럼, 사람도 악한 본성에 잡히면 그것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표범이 죽만 먹으면 온순해져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자신도 착한 마음을 품고 노력하면 선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다.

정글 마을의 추장은 어리석게 판단을 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안타까운 결과를 안겨 주었다. 그는 새끼 표범이 자라면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괜찮겠지. 당장 무슨 일이 있겠어?’라고 하며 맹수의 습성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외면한 채, 좋게 생각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그 결과 세 아이의 생명을 잃었다. 만약 새끼 표범을 처음 보았던 그날, 추장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창으로 표범을 찔러 죽였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아마도 추장은 두고두고 그날의 실수를 자책하며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간절히 원했기에, 추장은 표범을 찔러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당장은 섭섭함을 느끼더라도 앞날을 위해 새끼 표범을 그 자리에서 없앴다면 세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을 것이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면서 그 부족을 이어가는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의 몸을 엑스레이로 촬영해 보고 수술해서 안을 뒤져봐도, 창자나 간이 보이고 심장과 폐가 있을 뿐 마음속에 흐르는 미움이나 음란한 욕망이나 거짓된 생각은 찾아낼 수 없고 실제로 볼 수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도둑질을 몇 번 하고, 그 전에 거짓말을 좀 했을지라도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 내가 거짓말 좀 했다. 그렇지만 남에게 해가 되는 거짓말은 아니었어.’라는 생각으로 자기를 괜찮게 여기는 마음이 점점 강하게 만들어진다. 오늘 이 사회에는 악이 만연해 있어서 친구를 믿지 못하고, 가족끼리도 믿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믿는 생각 속에 더 깊이 빠진다.

부모들과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자기 아들, 딸이 사랑스럽고 귀엽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본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착했어요.”
“우리 딸은 다른 아이들과 달라요. 거짓말 못 해요.”
“우리 애가 부모 말을 어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이것은 사람의 본성을 모르고 하는 말들이다. 표범도 끔찍했던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잔인한 야성을 드러낸 적이 없었고 다른 짐승을 덮친 적도 없었다. 어느 날, 피 맛을 본 후에 맹수의 본성이 일어났듯이, 우리 인간에게는 남을 미워하고 헐뜯고 짓밟으려는 독한 본성들이 잠재되어 있다. 다만 이런저런 상황들로 가려져 있을 뿐이다. 더러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나 사건을 별로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본성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본성이 드러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타고난 본성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 ‘착한 사람’, 그리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 길들이는 법을 배우면

그냥 웃고 있는 모습이 착한 것 같다고 마음속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음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정말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어진다. 남에게 말은 안 해도, 내 마음 안에 더럽고 거짓되고 방탕한 기질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그대로 따라가면 언젠가 내 인생이 불행해지겠구나’ 싶어질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멋대로 뛰고 멋대로 행동하고 멋대로 살고 싶은 우리의 마음은 야생마와 같다. 그렇다고 지금 꼼짝 못하도록 묶어두라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수돗물 아끼는 법이나 남에게 양보하고 남을 이해하는 법이나 내 생각대로만 살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훈련해가면 일 년 뒤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마음을 길들이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 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권위자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 곧 성경에서 찾은 마음의 세계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마인드북 시리즈로 <나를 끌고가는 너는 누구냐> <마음을 파는 백화점>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나> <마음밭에 서서> 등 네 권을 집필했으며, 마음의 세계를 다룬 만화 <신기한 마음여행>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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