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결혼'에 관한 보고서 3

‘반쪽짜리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내 이보배

나는 여느 20대처럼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결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나 또한 때가 되면 결혼을 자연스레 하게 될 거라 믿었다. 미래 남편은 누구일지도 궁금하고, 내가 부모님을 떠나서 또 하나의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은 어떨지 막연하면서도 기다려졌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은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이 됐고, 뒷전이 됐다.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의 연속인 데다 주어진 몫을 무조건 해내야 했다. 하지만 한두 번 부담, 스트레스와 싸우며 일하다보니 그 맛이 있었다. 무시도 많이 당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런 부족함이 오히려 동력이 되어 더 공부하고,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일에 몰두했다.

한 직장에서 같은 분야의 일을 오래 했는데, 시간을 좀 더 투자하면 훨씬 나은 성과를 얻겠다는 생각에 때로는 식사하러가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결혼은 경력을 단절시키고 성장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것’이 되어갔다. 물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나이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겼고, 설령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복직한다 해도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시간을 더 투자해야 성과를 낼지도 알 수 없었다. 결혼을 접어두고,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전문성을 쌓는 데 집중하고 싶었고, 더 많이 도전하면서 배운 것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누며 사는 것도 가치있는 삶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결혼관에 다시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부턴가 내 사고방식이 나라는 사람의 틀 안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좋고 괜찮으면 되지 남을 의식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이 볼 때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반쪽짜리 행복, 반쪽짜리 인생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내려놓게 됐다. 내가 볼 때 여자로서 결혼 상대로 좋은 조건을 가진 건 없었지만, 누군가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게 순리이고, 순서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는데, 처음에는 한 남자 옆에 ‘여자’로서 있기가 어색했다. 남편이 나를 보호하고 챙겨주려 노력하는 게 고맙기는 했지만, 보호받는 여자로 대우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남편이 너무 고맙다. 정없고 차가운 내가 결혼 후에 웃는 일이 많아졌다. 남편은 내 마음이 요동칠 때나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마음 아파하며 나를 일으켜 주려 애쓰고, 단짝 친구처럼 또 때로는 아빠처럼 따뜻하게 살펴주고 사랑해준다. 나에게 결혼은, 그동안 차를 타고 앞만 보고 달렸던 길을, 두 발로 천천히 걸어면서 길가에 핀 꽃을 보는 즐거움과 같다. 남편을 위해 고민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도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나와 너무 다른 남편과 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옳고 그름과 논리를 앞세우는 마음을 연하게 해주고, 삶을 살고 사람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넓혀주고 있다. 결혼은 내 안에 나로서는 가질 수 없는 마음을 만들어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할 걸!
남편 송인호

준비해 둔 것도 없고 배우자로서 조건도 미달이란 생각에 결혼을 한참 동안 미루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준비되는 건 없었고 누군가를 사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연애를 하려면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그럴 자신도 없었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이, 결혼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는 내 속사정을 아시고 하루는 “자네, 결혼할 수 있어! 내가 좋은 신부감을 찾아주겠네!” 하셨다. 그 한마디에 위로와 용기를 얻었는데, 목사님이 약속하신대로 마음에 꼭 드는 아가씨를 소개해주셨다. 그 아가씨와 기대 이상으로 잘 맞고 대화도 잘 통해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결혼했다.

결혼해서 가장 좋은 점은 내 편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좋은 일뿐만 아니라 고민과 어려운 점까지 모두 말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갑작스레 병으로 돌아가셔서 생계가 어려워졌고, 치열하게 두 아들을 기른 어머니와 살면서, 마음속 이야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면서 지내왔는데,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아내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 아내는 내가 보지 못하는 내 모습에 대해 말해준다. 옷차림도 신경 써주어 전보다 훨씬 멋진 모습이 되었다. 한번씩 내 흉내를 내는 아내를 보면 사랑스럽고, “오빠, 좋아!” 말 한마디에 최고로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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