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결혼'에 관한 보고서 1

커피 한 잔 마시고 오자는 생각으로 만났는데
남편 문용성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우리가족은 갈기갈기 찢어진 사진과 같았다. 매일 이어졌던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했던 가정 형편,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불안한 생활은 결국 부모님의 이혼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안 좋았던 기억들이 내 머리 속에 쌓이고  쌓여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결혼이야. 나는 결혼할 자격이 없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면 모두 나를 싫어할 테고, 서로 좋아한다 해도 상대의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하실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만들어냈다.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거나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나는 절대 저런 행복을 누릴 수 없을거야, 욕심내지 마!’라고 되뇌며 그 자리를 지나쳤다.
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내 인생에서 지우고 다른 방면으로 성공하고자 노력했다. ‘성공하면 어느 누구도 내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할 거야’생각하며 대기업에 취직해 기계처럼 일했다.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좋은 위치에 올라가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머릿속은 24시간 일로 가득 차 있었고, 점점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이 되어갔다. 실수를 하거나 경쟁에서 지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술 없이는 잘 수 없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져도 회사를 나가는 순간 존재가치가 사라진다는 생각과 함께 허무함이 밀려와 망나니처럼 방황하며 지내다가 크고 작은 사고에 휘말려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지인 한 분이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줄 테니 그냥 편하게 만나보라고 계속 권유했다. 여러 번 거절하기가 너무 죄송해서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오자는 생각으로 약속을 잡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솔직한 마음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어서 더 자유롭게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듣고 있던 아내는 더 이상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고 “많이 힘들었겠네요” 하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나 혼자만 불행하게 살아왔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날 아내와 대화를 하며 누구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고, 결혼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 인생도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나는 3년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를 통해 많은 걸 발견해가고 있는데, ‘내 마음을 닫아놓은 채 주위 사람들을 오해하며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든다. 작은 회사에 다니며 많지 않은 월급으로 가정을 꾸려가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알뜰살뜰 살림하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아내와 집에 들어갈 때마다 “아빠!” 하고 반겨주는 딸 소은이, 곧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둘째 아이까지 내가 꿈꿀 수 없었던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어 매일 감사하고 있다. 물론 결혼생활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처음 우리가 서로의 어려움과 부족함을 털어놓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마음을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되고 다시 행복해진다. 평생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긴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결혼이 나에게 그런 친구를 선물해 주었다.

즐거운 일은 두 배 힘든일은 n분의 1
아내 이은민

나와 남편은 살아온 방식과 가정환경, 성격, 식성 등 모든 면에서 다르다. 나는 경상도 시골 여자인데 남편은 경기도 도시 남자이고, 나는 덤벙대고 욱하는 성격인데 남편은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굳이 비슷한 것을 이야기한다면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이고 남편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며, 둘 다 장난기가 많다. 결혼해서 서로 다른 만큼 용납하고 상대방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주면서 지내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생겨서인지 우리 부부는 행복하다. 각각 다른 모양의 퍼즐 조각들이 예쁜 작품을 만들어낸 느낌이기도 하다.

나는 남편을 ‘까투리’라고 부른다. 항상 ‘까툴까툴’ 꼼꼼하게 지적하고 확인하는 남편 성격에 적응이 안 됐는데, 지금은 좋다. 잔소리 같은 말 속에서 남편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들로 부딪혀서 힘들고 속상한 날도 있지만 남편이 나를 아끼고 배려해주려는 걸 알기에 맺힌 마음이 오래가지 않는다. 생활력과 책임감이 강해서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고 가족을 생각하는 남편이 믿음직스럽다. 옷장 정리를 조금 해놓았을 뿐인데 나를 ‘최고의 아내’라고 불러주었던 기분 좋은 날도 잊을 수 없다.

나는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결혼과 함께 ‘나만의 삶’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삶’이 생겼다. 하나에서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니 즐거운 일들은 그만큼 많아졌고, 힘든 일은 n분의 1이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 상처를 아물게 하고 행복을 안겨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특별한 느낌이다. 작고 까무잡잡하고 덤벙대는 나에게, ‘당신 같은 사람이 내 아내가 돼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남편에게 나 역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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