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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를 세계인의 브랜드로 키운 아버지의 따끔한 호통
김성훈 기자 | 승인 2019.05.20 09:08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덴마크에 올레 크리스티얀센이란 목수가 살았다. 젊은 나이에 아내와 사별한 그는 엄마 없이 자라는 아들들이 늘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쓰고 남은 나무로 작은 집이나 동물인형을 만들어 아들들에게 놀잇감으로 선물했다. 목수가 만든 놀잇감들은 모양이 예쁜 데다 튼튼해 금세 인기를 끌었다. 그 놀잇감들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이곳저곳에서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잘 팔리는 제품은 오리인형으로, 일꾼들을 여럿 고용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도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셋째 아들이 목수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나이는 어렸지만, 손재주가 뛰어나고 머리도 영특해 기술을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아들을 바라보는 목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저 녀석이 크면 내 뒤를 잇게 해야겠다.’

1932년 올레가 만든 오리인형

그러던 어느 날, 완성된 오리인형을 수레에 싣고 기차역으로 배달을 갔던 아들이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올레가 물었다.

“배달은 잘 다녀왔느냐?”
“예, 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걸 보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게로구나.”
“예, 오늘 제가 배달하고 온 오리인형들은 광택제를 두 겹 칠한 것들입니다. 아버지는 늘 광택제를 세 겹씩 칠하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두 겹 칠해도 세 겹 칠한 것과 별 차이가 없더군요. 작업시간과 재료비도 절약할 수 있고 말이죠.”

목수는 아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호통을 쳤다.

“지금 달려가면 늦지 않을 게다. 당장 네가 배달한 오리인형들을 찾아 오너라, 어서!”
“예?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이토록 화를 낸 것은 아들의 기억에 처음이었다. 아들은 헐레벌떡 달려가 오리인형들을 되찾아왔다. 포장을 뜯은 목수는 인형에 하나하나 정성껏 광택제를 칠한 뒤, 다시 아들에게 배달을 맡겼다. 이윽고 아들이 돌아오자 목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겠느냐?”
“아뇨,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나는 너보다 목수 일을 훨씬 더 오래 해 왔어. 광택제를 두 겹 칠하나 세 겹 칠하나 별 차이가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네가 말한 대로 작업시간도 재료비도 절약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다 보면 차츰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뭐…. 적당히 대충 만들자’ 하는 태만이 네 삶에 자리잡게 된단다.”
“…”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광택제를 한 겹만 칠하게 될 거야. 어디 광택제뿐이겠냐? 오리 깃털을 새기는 것이나 마무리로 인형 겉면을 다듬는 일도 대충 하게 되겠지. 그렇게 만든 제품은 손님들에게 기쁨을 줄 수 없단다.”
“아버지의 뜻을 잘 알겠어요.”
“작은 구멍을 내버려두면 큰 둑이 무너지듯, 우리 생각을 비집고 들어온 작은 틈이 점점 커지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되는 법이란다. 훌륭한 물건을 만들려면 기술도 뛰어나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의 자세란다.”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

2011년, 레고가 직원 선물용으로 제작한 오리인형

그 후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늘 되새기며 어린이들을 위한 놀잇감을 계속 만들어냈다. 목공소도 발전을 거듭한 끝에 세계적인 완구회사로 성장했는데, 그 회사가 바로 지금의 레고다. 자칫 게으름과 타성惰性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한 장인匠人 올레 크리스티얀센 부자父子의 남다른 마음가짐이, 오늘날 레고를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블록완구의 대명사로 키워낸 것이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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