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바구니에 담긴 것은 멕시코 중부에서 자라는 ‘테오신테teosinte’라는 식물의 씨앗이다.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 하고 반문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테오신테는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옥수수의 조상 격인 식물이다. 겉모습만 봐서는 전혀 연상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테오신테와 옥수수는 불과 다섯 개 정도의 유전자만 다르다고 한다. 테오신테가 지금의 옥수수 모습을 갖추는 데 약 1만 년이 걸렸지만 그 형질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놀랍다.

수없이 많은 테오신테 중에서도 내부적으로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 다른 테오신테보다 수확량이 많거나 키가 큰 것들이 선별되면서 옥수수로 개량되었으리라 학자들은 보고 있다. 옥수수 중에서도 해충에 강한 품종, 수확량이 더 많은 품종, 가뭄에 강한 품종 등 서로 특징이 다른 품종들이 있다. 따라서 수확량이 많은 옥수수 품종에 해충에 강한 특성과 가뭄에 강한 특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재배도 용이하고 수확량도 많은 새 품종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물의 유전적인 성질을 변경함으로써 인류에게 유익한 새로운 동식물로 키워내는 기술을 ‘육종育種’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도 육종기술이 적용된 좋은 사례다. 우리 조상들이 키우던 재래종 벼는 요즘 우리가 키우는 벼보다 키가 두 배 이상 커서 잘 쓰러지고 병충해에도 약했다. 수확량은 지금의 30%도 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품종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쌀 생산량은 늘지 않았다. 이에, 해방 이후 우리 정부는 농촌진흥청을 설립해 농업의 진보를 꾀했는데, 당시 벼 육종학자들은 재래종과 일본 품종 벼로는 생산량 증가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동남아에서 재배되는 ‘인디카’ 품종과 재래종을 교배함으로써 신품종 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벼는 불임이 심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던 학자들은 온대와 열대의 중간인 대만臺灣 재래종과 또 한 번 교배하는, 이른바 삼원교배를 시도하여 ‘통일벼’ 품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통일벼는 수확량이 획기적으로 높은 데다 병충해에도 강하고 키도 작아 태풍에도 잘 쓰러지지 않았다. 기존 재래종 벼의 약점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개선시킨, 그야말로 ‘녹색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성과였다. (*녹색혁명-1960년대 농업 분야에서 품종 개량을 통해 식량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켜 가히 혁명과 같다고 하여 ‘녹색 혁명’이라 일컫는다.)

최근에는 유전자 변형 생물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처럼, 다른 종의 유전자를 조작·삽입하여 본래의 것과 다른 유전적 특성을 갖게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제초제에 저항성이 없는 보통의 옥수수에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형질전환으로 삽입하면, 그 옥수수는 제초제 저항성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하면 농사에 있어 큰 걸림돌인 잡초 제거를, 단순히 제초제를 뿌림으로써 손쉽게 할 수 있고 생산량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한 동식물을 개발함으로써 인류의 삶을 풍족하게 바꾸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마다 장점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약점이나 단점도 많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보다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갖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교배를 통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듯, 그들과 대화나 소통을 통해 내게 없는 상대의 장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전보다 더 발전하고 앞선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글=윤준선 이학박사로 한국과학기술원 KAIST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포항공대에서 식물발달 메커니즘을 연구했으며, 현재 국내 1위 농업기업인 (주)팜한농에서 농작물에 적용 가능한 유용한 유전자를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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