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People 피플
[인터뷰] 외교관을 꿈꾸는 한국의 대학생들에게주한 포르투갈 대사 마누엘 곤쌀브스 드 제수스
김성훈 기자 | 승인 2019.05.13 14:47

마누엘 곤살브스 드 제수스 대사는 달변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긴 시간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틈틈이 농담을 섞어가며 상대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진정한 대화의 고수였다. 그가 30년 가까이 국제무대에서 일하면서 터득한, 외교관에게 필요한 성공마인드를 네 가지로 간추려 전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외교관 놀이를 즐겼지만, 정작 자신이 외교관이 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일본,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한국 등에서 아시아권에서 근무하며 포르투갈 외교부 내에서‘아시아통’으로 손꼽힌다. 5천 년 역사를 이어온 한국에서의 근무가 외교관 인생에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한 포르투갈 대사인 ‘마누엘 곤쌀브스 드 제수스’입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고, 조국 포르투갈을 알릴 수 있어 기쁩니다. 한국에 포르투갈이 처음 알려진 것은 400여 년 전인 16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포르투갈 상인이었던 조안 데 멘데스Joao de Mendes가 조선에 상륙했는데, 이는 유럽인으로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포르투갈의 지도제작자인 마누엘 고디뉴Manuel Godinho가 1615년에 펴낸 지도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한국해’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두 나라의 관계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제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92년으로, 일본에서 초임외교관으로 근무하다가 서울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러다 2017년 11월 주한 대사로 부임하면서 공적인 임무를 띠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25년 만에 온 서울은 정말 몰라보게 달라지고 발전해 있었습니다. 세계 7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문화, 학술, 정치 등의 분야에서 영향력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외교관 놀이를 자주 했습니다. ‘너는 미국 대사, 나는 프랑스 대사, 쟤는 독일 대사…’ 식으로 나라를 정한 다음, 자기 나라를 대표해서 연설도 하고 협상도 하며 놀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한국 대사 할 거야’라고 말하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때가 1950년대였으니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인지도가 높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민소득도 100달러가 채 안 되었을 겁니다. 그랬던 한국이 지금은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외교관으로 일한다는 것은 제게는 큰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한국의 청년들을 만난 자리에서 제가 주한 포르투갈 대사라고 소개하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아세요?’입니다. 참, 작년에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뒤로는 ‘벤투 감독을 아세요?’라고 묻는 분이 많이 늘었어요, 하하. 그 외에도 자주 묻는 질문이 ‘대사님처럼 외교관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일하면서 체득한, 외교관에게 필요한 자세와 사고방식을 네 가지로 정리해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Advice #1: 외교는 외교관만 알아야 하는 게 아니다
외교diplomacy라는 단어를 옥스퍼드 사전에서 찾아보면 크게 두 가지 뜻이 나옵니다. 하나는 ‘나라의 대표자로서 해외에 나가 국제관계를 처리하는 직업·활동·기술’, 다른 하나는 ‘세심하고 요령있게 사람을 대하는 기술’인데요. 이중 제가 생각하는 외교에 가까운 것은 두 번째입니다.

외교는 외교관만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교관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혼자 힘만으로는 절대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개인·조직·국가와 도움을 주고받고 힘을 합쳐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외교가 생겨났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문제가 생기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게에서 주인과 흥정을 해서 구입하잖아요? 그 모든 과정이 넓은 의미에서의 외교입니다. 외교란 곧 삶의 일부인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외교관이 목표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분명한 목표가 있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외교학이라는 특정분야만 집중해서 공부하지는 마시길 권합니다. 제 동료 외교관들 중에도 외교학 전공자는 많지 않습니다. 언론, 의학, 법학, 역사, 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외교부에 모여 있습니다. 오히려 훌륭한 품성과 문학·고전음악·역사 등 인문학적 지식이 외교관이 되는 데 더 유용한 자질들입니다.

Advice #2: 시간과 때를 아껴라
시간과 때를 아끼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사이클로 체력을 관리했습니다. 한창 열심히 할 때는 자전거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을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직급이 높아지니까 운동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운동을 안 하면 몸에 생기가 돌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운동은 계속해야 했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세 번은 새벽 5~6시에 일어나 한강변에서 운동을 합니다. 시간이 없으면 잠자거나 다른 일 하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갑니다. 옛날 같으면 하루 종일 걸릴 일도 요즘은 단 몇 초 만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내다보고 준비하며 꾸준히 공들이고 기회가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충분히 시간을 투자하며 생각하고 연구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청년기에는 청년기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외국어 공부입니다. 저의 첫 해외근무지가 일본이었는데, 그때는 아직 젊어서 일본어를 배워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순이 넘은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배움에도 때가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넬슨 만델라의 대선 포스터. 당시 남아공에서 근무하던 제수스 대사도 만델라의 당선과 취임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이런 역사적 순간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외교관으로서의 즐거움’이라고 제수스 대사는 말한다

Advice #3: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다
외교관들 사이에는 ‘주재국에 가면 처음 6개월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입을 다물고 지내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주재국으로 가기 전, 외교관들은 그 나라에 대해 자료조사도 하고 충분히 공부를 하고 갑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그 많은 정보들이 그 나라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재국의 역사와 문화, 국민성 등에 대해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곳곳을 가보며 피부로 느껴봐야 생생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 곳’이라는 생각으로 시간도 들여야 하지요.

반대로 두 나라 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증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저 역시 포르투갈의 문화와 예술을 한국에 알리고,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강연이나 컨퍼런스, 투자설명회 등을 개최하고 있는데요. 한국에 온 지 1년 반 정도밖에 안 되어서 임기 내에 하고 싶은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두 나라가 지식이나 자본을 넘어 마음이 오고 가는 사이가 되길 바랍니다.

Advice #4: 끊임없이 ‘나’를 비우라
외교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저는 윗분이나 동료들에게 단 한 번도 ‘나는 이 나라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딜 가든 잊지 못할, 행복한 공직생활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일할 때는 그전까지 낯설기만 하던 ‘아시아’라는 세계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1994년에는 남아공으로 갔는데요. 제가 갔을 때는 남아공에 있던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는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거의 철폐되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불과 몇 달 전이었습니다.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 있어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뒤에는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근무했는데 같은 유럽연합 회원국이라 그런지 본국에서 근무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외교관은 자신을 나타내고 알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내 기분과 의견을 철저히 내려놓고, 나라를 대표해서 국제무대에 선 국가대표의 심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무심코 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해외에서 우리의 국격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린 네 가지는 비단 외교관으로서뿐 아니라, 성공한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지침들을 간추려 말씀드린 것입니다. 외교란 어느 한 쪽이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양쪽에 모두 이익을 가져다주는 ‘윈-윈 게임’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는 나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외교를 하든 무엇을 하든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성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