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볼 눈을 갖게 해 준 솔로몬 제도. 아름다운 해변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곳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도 모르는 새에 그들처럼 맑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중학교에서 마인드강연과 마인드 레크리에이션을 마치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중학교에서 마인드강연과 마인드 레크리에이션을 마치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솔로몬 제도를 만나다
비행기를 타고 솔로몬 제도를 내려다보니 커다란 숲에 나무집을 꽂아 놓은 듯했다. 이곳에선 어딜 가도 작은 언덕 하나만 넘으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내가 머무는 봉사단 지부 건물엔 집주인 가족을 포함해 총 네 가구가 산다. 그러고 보니 일곱 마리 강아지 소개를 안 했다. 도둑 잡으라고 데려다 놓은 이 녀석들은 밤만 되면 짖어댔는데, 한 놈이 울면 온 동네 개들이 우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게 했다. 너무 심한 날에는 참지 못해 “시끄러!” 하고 창밖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마당에 나가 개들을 위협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최대한 현지관습에 맞춰 살려고 한다. 솔로몬 제도는 전기와 물이 자주 끊기는데, 특히 비가 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 손에 바가지를 들고 물을 받으러 뛰쳐나간다. 같이 사는 꼬맹이들과 함께 물장난을 치곤 하는 게 요즘의 소소한 일상이다.

솔로몬제도에서는 화창한 날씨와 아름다운 해변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솔로몬제도에서는 화창한 날씨와 아름다운 해변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무전여행을 하다 방문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무전여행을 하다 방문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대학교에서 댄스 아카데미를 진행해 인기를 끌었다.
대학교에서 댄스 아카데미를 진행해 인기를 끌었다.

나를 '와꾸'라고 부르는 사람들
동네 꼬맹이들은 우리를 ‘와꾸’라고 부른다. 길을 걸어갈 때면 어딘가에서 나타난 아이들이 “와꾸!” 하며 졸졸 따라온다. 황인종인 우리가 이들에게는 백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백인이라는 뜻의 와꾸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한눈에 봐도 우리를 환영해주는 게 느껴지는데 재미있는 건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면 쑥스러운지 더러는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순수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덩달아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시간이 몇 달 지났을까? 좋은 것만 보이던 내 눈에 하나둘 솔로몬제도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했던 건 바로 의미 없는 일로 인생을 허비하는 젊은이들의 태도였다. ‘왜 아무런 목적 없이 살지? 최소한 조금이라도 노력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나라가 가난해 마땅한 직장이 없다고는 하지만, 낮에는 해먹에 누워 잠만 자고, 밤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밤새 술 마시며 노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봉과 그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봉과 그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에서 느끼는 행복
‘봉’을 만난 건 그즈음이었다. 봉을 처음 본 날, 온몸에 문신을 하고 험악한 인상을 가진 그를 나는 도저히 곱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성격이 활달한 봉은 우리를 굉장히 반가워했고, 우리가 진행하는 무료 아카데미 수업에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런 봉을 나는 속으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날 길에서 봉을 만났을 때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우리를 보고는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눈이 풀리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딱 봐도 술에 취했거나 정상이 아닌
알 수 있었다. 봉의 친구들 중 덩치가 큰 녀석들이 우리 손을 꼭 붙잡고 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단원들도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본능적으로 ‘다음에 보자’고 말하며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삶이 너무 싫어.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제발 나 좀 도와줘. 날 이곳에서 구해줘.”
봉의 말이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도망가
려던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한심하다고만 여겼던 그들의 삶속에서 처음으로 아픔을 발견한 것이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무시했던 내 어린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생각은 빠르게 돌아 지난날의 내 모습이 머릿 속을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자기 욕심과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 이렇게 살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어리석은 삶을 반복하던 건 바로 내가 아니었나. 그전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그들이 ‘나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 마음에서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봉을 도와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삶의 굴레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당장은 대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내일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
안 많은 사람을 만났었지만, 그 영혼을 살펴달라고 신께 간구한 것은 봉이 처음이었다. 다음 날
봉과 다시 만났다. 그는 내게 자기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갱단에 들어가 보스가 시키는 대로 싸움도 하고, 도둑질도 하며 살아왔어. 그러다 감옥에도 다녀왔고. 이제 이런 어두운 삶을 끝내고 싶은데 그곳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나, 너무 괴로워.”

커다란 숲에 나무집을 꽂아 놓은 듯한 솔로몬 제도.
커다란 숲에 나무집을 꽂아 놓은 듯한 솔로몬 제도.

파란만장한 그의 삶과는 비교되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에게 내 과거를 털어놓았다.
“몇 해 전, 대학교와 회사 일로 몸과 마음도 많이 지쳤을 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본 적이 있어. 그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듯 스스로를 내팽개쳤지. 그동안 모아둔 돈을 쓰며 놀았지만 마음에 남는 건 공허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뿐이었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수없이 다짐해봤지만 달라지지 않는 날 보며 좌절하고 방황도 했었어. 그런데 해외봉사를 하러 와서 난 달라졌어.”
봉은 고개를 끄덕이다 눈을 크게 떴다.
“이곳에선 내 멋대로 사는 게 아니라 지부장님이 날 이끌어 주고 계셔. 조언과 도움을 받는 게
싫고 힘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행복하다! 내가 가진 마음의 구조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데, 주위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내가 행복해지는 거야.”
그날, 봉은 마음 속 깊고 어두운 족쇄를 벗어 던지고 내가 전하는 밝고 희망찬 이야기를 받아
들였다. 이후 그는 봉사단원들과 자주 교류하면 서 과거를 청산할 수 있었고, 지금도 길에서 마
주치면 ‘행복하다. 감사할 조건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밝은 청년이 되었다. 봉은 뭐라도 주고 싶었는지 손수 만든 것 같은 작은 가방을 내게 선물했다. 투박하지만 정성스런 가방에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곳에 온 뒤 내게는 새로운 마음이 가득하다. 길 가다가 봉을 마주쳤을 때의 반가움, 변화되어 정말 기뻐하는 청춘을 바라볼 때의 행복감은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감정이다. 험상궂은 얼굴에 아이 같은 미소를 띠던 봉의 천진난만한 표정은 생생하게 내 가슴속에 살아 있다.

글=김대은(굿뉴스코 해외봉사단 1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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