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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그린북'…달라도 너무 다른 둘의 여행안내서 ‘그린북’
이상훈 | 승인 2019.04.15 21:33

영화 ‘그린 북’은 실존인물인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그의 백인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를 소재로 한다. 서로를 보는 시각이나 말투, 행동, 성격 등이 피부색만큼이나 다른 두 사람! 그러나 둘은 8주간 미국 남부로 공연투어를 다니며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서로를 향한 편견이 무너지고 진솔한 마음을 발견하며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다.

‘그린 북’은 시작부터 우리의 편견을 깬다. 흑인 ‘돈 셜리’는 천재적인 재즈 뮤지션이자 교양 있고 친절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다. 백인 ‘토니 발레롱가’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다혈질적이고 직설적인 사람이다. 여느 영화에서 묘사되던 흑인과 백인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토니는, 지인의 소개로 셜리의 운전사가 되어 함께 8주간 미국 남부 지역으로 공연투어를 떠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62년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미국 내 흑인들의 인권상황을 잠시 짚어보자.

영국에서는 1780년대 산업혁명으로 방직산업이 폭풍 성장하면서 면화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영국에 면화를 수출하던 미국은 호황을 맞았고, 급기야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부렸다. 특히 미국 남부지역은 광대한 토지와 풍부한 흑인 노동력에 힘입어 세계 면화시장을 장악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반면 공업이 발달한 북부지역은 새롭게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의 노예해방 정책에 동조한다. 결국 두 지역 사이에 남북전쟁(1861~1865)이 발발하고 1863년 1월, 링컨은 노예해방 선언문을 발표한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면서 1865년 12월, 미국은 노예제를 정식으로 폐지하지만 실제로 켄터키 주는 1976년, 미시시피 주는 1995년에야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켄터키 주와 미시시피 주는 1962년 당시 흑인노예가 존속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이해가 될 것이다.

흑인들은 법적으로는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백인에게 큰 차별을 받고 살았다. 특히 남부지역에서는 개정된 헌법을 비준하지 않았기에 1960년대 흑인이 남부로 여행을 다니는 것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셜리와 백인 토니가 ‘고용주-운전기사’라는 묘한 관계로 함께 두 달을 지내게 된 것이다.

박사 돈 셜리 vs. 흑인 돈 셜리

실존인물 돈 셜리는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꼽힌다. 8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심리학 박사 학위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내면으로는 몹시 외로웠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표현을 빌면 그는 겉으로 드러난 사교성과 달리 속은 고립과 불안으로 번민하는 ‘고독한 군중’의 한 사람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박사 돈 셜리이지만 백인들과는 함께할 수 없고, 무대 아래에서는 흑인 돈 셜리이지만 흑인들과도 어울릴 수 없던 그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그 정체성을 찾을 요량으로 그는 남부로 공연투어를 떠난다. 북부에서 공연하면 공연료를 세 배나 더 받고 무시나 차별도 받지 않을 테지만 굳이 남부로 간 것은 실제 흑인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바닥까지 내려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은 영화 속 여러 장면에서 나타난다. 발코니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동료 백인 연주자들이 백인 여성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는 장면, 흑인들이 함께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약속이 있다며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장면, 토니 없이 위험한 술집에 혼자 가는 등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내던지는 장면…. 셜리는 ‘무대 위의 백인’이 진짜 자신인지, ‘무대 아래의 흑인’이 진짜 자신인지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린 북’의 절정은 비오는 날, 토니가 자신을 ‘깜둥이 하수인’이라고 모욕한 경찰관을 때리는 바람에 토니와 셜리가 유치장에 갇혔다가 법무장관의 도움으로 풀려났을 때이다. 토니는 셜리가 법무장관과 막역한 사이임을 알고 통쾌해 하지만, 셜리는 ‘난 평생 그런 모욕을 당했는데, 당신은 그 한 번을 못 참았냐?’며 불쾌해 한다. 토니는 토니대로 ‘궁전 같은 집에 살면서 부자들 앞에서 음악회를 하는 당신이 실제 흑인의 삶을 얼마나 아느냐?’며 쏘아 붙인다. 급기야 셜리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토니에게 그간 묻어둔 속내를 털어놓는다. 백인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지만 그들에게 자신은 시키는 일을 하는 노예와 같다는 것을, 그리고 흑인들과도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트면서 영화는 이어진다. 한편 여행의 마지막 코스 버밍햄에서 셜리는 ‘흑인 돈 셜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공연을 맘편히 먹고 즐길 수 있는 흑인 레스토랑에서 공연하며 행복한 투어를 마친다. 그리고 박사 돈 셜리도, 흑인 돈 셜리도 모두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한다.

마음도 함께하는 동안 물들어간다

토니는 ‘토니 립Lip(입술, 입담)’이라는 별명답게 입으로는 허풍이, 몸으로는 주먹이 앞서는 사람이다. 원리 원칙이나 법, 예의, 예절 같은 단어는 그의 사전에 없다. 반면 돈 셜리는 예의 바르며 격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다.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은 영화 초반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주 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티격태격하는 동안 둘은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서로의 마음으로 물들어간다.

하노버로 가던 중 들른 휴게소에서 각종 자연석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토니는 옥돌 하나가 땅에 떨어진 것을 보고 그 돌을 슬쩍 주워 온다. 그러나 셜리는 ‘돌을 돌려놓거나 돈을 내라’고 한다. 주운 것이라 그냥 가져도 된다고 항변하던 토니는 돌을 돌려놓는다. 하노버의 공연장에서 리허설을 앞두고 피아노를 점검하던 토니는 담당자를 불러 항의한다. 셜리가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토니를 무시하며 ‘그냥 있는 걸 쓰라’고 응대하는 담당자에게 토니는 주먹맛을 보여준다. 덕분에 셜리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공연을 치를 수 있었다. ‘좋은 게 좋다’ 식으로 타협하며 귀찮은 일은 하지 않던 토니가 셜리와 함께하는 동안 셜리의 마음에 물든 것이다.

마음에 변화가 찾아온 건 토니뿐만이 아니다. 원리원칙주의자이던 셜리도 차 안에서 토니가 건네준 프라이드 치킨을 접시 없이 맨손으로 먹으며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치킨의 맛을 알게 된다. 토니가 알려주는 대로 남은 뼈를 창 밖에 던져 버리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위생관념을 내려놓고 자유를 만끽한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기에 자신의 것만 고집해서는 함께할 수 없다. 그래서 관념의 틀을 깨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물들어 갈 때 오해는 이해로 바뀌고 특별한 우정이 만들어진다. 셜리는 토니를 만나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이론의 틀에서 벗어났다. 토니도 셜리를 만나 ‘진정 즐거운 삶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는 삶’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의사에게 잡힌 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지만, 강도에게 잡힌 칼은 생명을 해하는 일에 사용된다. 칼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지듯, 우리의 삶도 누구와 마음을 함께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비참해질 수도,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그린 북
정식명칭은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 당시흑인들은 백인 전용 식당이나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흑인운전자들이 제한 없이 이용가능한 여관을 정리한 책을 배포했는데, 이것이 그린북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 북’은 1960년대 미국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 운전자들에게 안전한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을 알려주는 가이드북이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폭행이 공공연히 자행되던 남부에서 그린 북은 여행객들의 필수품이었다. 실제로 셜리와 토니는 경찰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가 하면, 자동차 고장으로 난감한 상황을 겪는다.

하지만 두 사람이 그런 난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그린 북이 아닌, 서로의 존재였다. 우리도 온갖 걱정, 근심, 불안, 위험을 겪으면서도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다. 그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안내해주는 진정한 ‘그린 북’일 것이다.

이상훈
춘천교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원주 버들초등학교 교사 및 상지영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생활속의 심리학 담당교수다. 청소년과 소외계층을 위한 인성교육과 마인드강연을 꾸준히 진행해 왔으며, 강원리더십센터, 원주·춘천교도소 우수강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학광장> 신인작가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상훈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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