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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시작된 그의 네버엔딩 스토리[인터뷰] 굿뉴스코 봉사단원 신한빛솔
고은비 기자 | 승인 2019.04.10 14:54

외국계 보험회사인 푸르덴셜생명보험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신한빛솔 씨. 그는 현장에 나가 영업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보고 느끼려 노력한다. 미국의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를 적용해 보기도 하고, 시장조사를 통해 트렌드를 파악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 중요한 해외 손님이 오면, 보험 전문용어를 영어로 능숙하게 구사하는 신한빛솔 씨가 통역 담당이다. 회사 동료들에게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 불리는 그는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 ‘1년의 해외봉사’라고 말한다. 도대체 해외봉사가 어땠기에?

신한빛솔
한국외국어대 재학 중이던 2007년에 해외봉사단원으로 미국에서 활동했다. 이후 오하이오 주립대 경영학과에서 유학했다. 졸업 후 맨하탄 소재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다 귀국하여 현재는 (주)푸르덴셜생명보험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며 의욕 넘치는 회사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어린 시절 유난히 체구가 작았던 신한빛솔 씨. 하지만 자존심이 강해서 지기를 무척 싫어한 나머지, 모든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여겼단다. 그에게 친구들은 등을 돌렸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것에 아예 담을 쌓았다. 간혹 가까워진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는 마음 속 한켠에서 늘 불안했다고 한다. ‘아마 저 사람도 나를 알면 싫어하겠지’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무기력한 대학생활, 가식적인 웃음, 불투명한 미래 등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는 문구에 끌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해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해외봉사 활동은 만만치 않았다.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연과 무료강습, 요양원 방문, 캠프 기획과 홍보 등 빡빡한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특히 힘든 것은 홍보활동이었다. 캠프 참가자를 모집하러 거리에 나가 한 시간 넘게 전단지를 돌려도 한 명도 받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갈 일이 전혀 없었기에,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것, 거절 당하는 것이 힘겨웠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것이 마음이 힘든 것보다 견디기 쉬웠다. 하지만 1년간 봉사를 결심하고 왔기에, 그는 포기치 않고 부딪혀 나갔다. 해외봉사를 마칠 즈음, 그는 남녀노소·백인·흑인 누구를 만나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연스레 다가가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길에서 만난 일흔세 살 그레이스 할머니

한국에서 늘 외톨이로 지냈던 그였기에, 처음에는 미국에 함께 간 단원들과 잘 지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낙심하던 그에게 어느 날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길에서 ‘그레이스’라는 일흔세 살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눴어요. 너무 밝고 상냥한 할머니였어요. 처음 만난 분이었는데도 너무 반갑게 맞아주셔서 그 뒤로도 종종 할머니 댁을 지날 때면 꼭 찾아뵙고 안부를 여쭤봤습니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살아온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자식들을 먼저 보내고 건강도 악화되어, 지금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게 유일한 낙이라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께 해드릴게 없어서, 한국에서 교회 다닐 때 들은 성경이야기를 해 드렸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단원들과 찾아뵙고 성경공부도 하고요.”

해외봉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오기 이틀 전, 그는 인사를 드리러 할머니 댁으로 갔다. 문을두드려도 한참이나 기척이 없어 돌아서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난 내 인생에 다시는 행복이 없을 줄 알았어.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다시 행복을 주시려고 너를 보내셨던 것 같구나. 정말 고마워.”

그전까지 신한빛솔 씨는 자신이 항상 남을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늘 잘하려고 애를 썼고, 혹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동료들과 마음의 거리를 두며 지냈다. 그런 자신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그때부터 남을 배려하고 마음을 나누며 사는 법을 배워나갔다.

유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미국

공부나 취업에만 관심 있던 그에게 미국에서 보낸 1년은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는 기회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진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수업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첫 2년 동안은 수업을 녹음했다 다시 들으며 새벽까지 공부했고, 토론수업이 있는 날은 밤새 준비를 하고 등교했다. 피곤한 탓에 입술은 항상 부르터 있었다.

그가 이처럼 힘든 유학생활을 감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해외봉사를 하며 키운 마음의 힘 때문이었다. 미국 대학에서의 첫 수강신청을 앞두고 그는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어떤 리뷰 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다. 그 사이트에는 거의 모든 미국 대학의 교수님에 대한 정보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수업 난이도, 평가방식, 교수님의 성격, 과제물 등을 꼼꼼히 검토한 후 학점을 따기 쉬울 법한 과목들로 미리 시간표를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수강신청 당일, 그의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낙후지역 청소년 프로젝트에함께 참가했던 동료들과 함께.
학과 모든 교수님들앞에서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소개했다.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설령 이번에 내가 계획한 대로 수강신청에 성공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선택하며 살 수 있을까? 인생에 찾아오는 어려움을 맘대로 피하고 살 수 있을까?’ 사실 미국에서 봉사하는 동안 공부보다 훨씬 어려운 일도 해냈거든요.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리뷰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부담스럽다고 피하지만 말고 당당히 부딪혀 보자’고 맘먹은 그는 그때부터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로 학업에 임했다. ‘흑인문학사’ 같은, 아시아인에게는 까다롭고 생소한 과목도 주저없이 수강했다. 한번은 흑인문학사 수업을 마친 후 질문이 있어 개인적으로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지난 15년 동안 이 과목을 수강한 아시아 학생이 두 명인데, 자네는 참 특이하네’라며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해외봉사 1년 동안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이 오히려 유익하다는 걸 배웠다. 이 수업이 어려운 건 알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수강했다’는 그를, 교수님은 신뢰하고 이끌어 주었다. 도전을 즐기는 그의 사고방식은, 적게 일하고 많이 얻는 이른바 ‘효율’을 추구하는 요즘 대학생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도전정신을 높이 산 교수님은 그에게 ‘닥터 조’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종종 교수님과 세미나에 함께 다녔고, 고등학교에서 흑인문학과 한국문학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미국에서 봉사한 1년의 세월이 인생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경험이었는지 깨달았다.

싯가 10억 원의 책을 아프리카에 보내다

이처럼 신한빛솔 씨의 유학생활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끊임없는 도전으로 항상 흥미로웠다. 3학년이 되던 해, 그는 케냐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케냐 청소년들이 공부할 책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책을 기증받아 케냐에 보내는 캠페인을 하기로 했다. 맨 먼저 찾아간 곳은 교내 책 기증 동아리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동아리 회장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 전해에 기증받은 책이 40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다니던 오하이오 주립대는 미국에서 학생수 기준 세 번째로 큰 학교였고, 교직원까지 합치면 10만 명이었다. 교내에서만 책을 모아도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영어도 유창하지는 않았기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교내 모든 부서와 동아리, 민간 도서관에 이메일을 보냈고, 큰 부서에는 직접 찾아가 캠페인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33일간 1,060권의 책을 모았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시아인인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거나 무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거절당해도 움츠러들지 않은 이유는 해외봉사를 하며 ‘거절당하기 연습’을 무수히 했기 때문이다.

“어떤 행사를 하려면 자원봉사자가 많이 필요한데, 사람 한 명을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전단지 천 장, 만 장을 돌려야 겨우 한 명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대개 몇 번 시도하고 안 되면 ‘이건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잖아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많이 일하고 적게 거두자’는 자세로 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캠퍼스 내 후원을 넘어 그는 집집마다 방문하며 아프리카 도서후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후원받은 책을 둘 창고가 없어서 기증자들이 자취방에 임시로 보관했다. 사진은 각 집을 돌며 수거된 책들을 모아놓은 모습이다.
후원 받은 책들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국립도서관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년 뒤, 그는 에티오피아 청소년들을 위한 책 기증 캠페인을 다시 시작했고, 6천여 권의 책(한화 10억원 상당)을 모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국립도서관에 보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가능하다고 말하고, 매번 생각지 못한 의견을 내는 그를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겼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같다

2015년에 귀국해, 현재 그는 (주)푸르덴셜생명보험에서 근무하고 있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지 12년이 가깝지만, 그는 지금도 봉사단원 시절의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일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중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한 몸을 가지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그렇게 훈련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도전하는 자세, 겸손함, 배울 마음도 신체의 근력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누구나 똑같아 보이지만, 저런 마음의 자세를 꾸준하게 훈련하는 사람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두각을 나타냅니다. 부지런히 더 어렵고 새로운 일을 찾아 선배들께 조언을 구하며 해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겸손해지고 배울 수 있더라고요. 해외봉사를 하며 터득한 지혜지요.”

그는 ‘단 한 번도 굿뉴스코 해외봉사가 끝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가 작게나마 거둔 학업, 취업, 직장에서의 성취는 모두 해외봉사에서 배운정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번도 굿뉴스코 해외봉사가 끝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가 작게나마 거둔 학업, 취업 직장에서의 성취는 모두 해외봉사에서 배운 정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입사 4년차인데 그의 마음의 달력은 여전히 2007년, 해외봉사단으로 매일 한계를 뛰어넘던 그때로 출발점이 맞춰져 있다.

고은비 기자  bsh00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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