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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영욱 영화음악 감독… 영화 속 보이지 않는 '울림'을 만든다
김소리 기자 | 승인 2019.04.10 14:55

파주 헤이리마을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우연인지, 카페 모퉁이에 장식된 영화 소품들과 클래퍼보드가 취재진을 반겨주는 듯했다. 창문 너머로 조영욱 감독이 사는 아담한 주택이 보였다. 흐렸다, 개었다, 비도 한 차례 쏟아진 변화무쌍한 봄 날씨 속에서 영화음악에 파묻혀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점심 무렵 시작한 대화가 어두워질 때까지 이어졌는데, 영화처럼 흥미로웠다.

조영욱
1997년 ‘접속’으로 데뷔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실미도’,‘박쥐’, ‘베를린’, ‘뷰티인사이드’, ‘아가씨’, ‘말모이’ 등 다수의 영화에서 음악작업을 총괄했다. 대종상영화제 음악상 등 15회 수상경력이 있으며, 최근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BBC 미니시리즈 6부작 ‘리틀 드러머 걸’의 음악을 완성했다.

행정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영화음악을 하게 되셨습니까?
초등학생 때 친척 형과 누나들의 LP판을 듣다가 록 그룹 애니멀스의 노래들을 좋아하게 됐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전혀 다른 차원의 곡을 접하고 음악 에 빠져들었죠. 그때부터 팝, 클래식, 록, 재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들었습니다. 또 저는 영화광이기도 했어요. 상영하는 영화는 물론이고 희귀한 영화들을 찾아다니며 봤죠. 외국 영화사에 편지를 보내 영화를 받아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음악이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꿈이나 목표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졸업한 후에는 취직해서 부모님처럼 사는 게 정해진 코스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하루는 신문에 음반회사 채용공고가 난 것을 봤어요. 고민하다 좋아하는 음악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겨 지원 했는데, 막상 입사하고 보니 제가 해야 할 일 은 한국에서 발매할 팝송들을 선정하고 번역 하는 일이었습니다. 4년쯤 하다가 싫증이 나서 결국 그만뒀죠.

이후에 MBC라디오 ‘정은임의 FM영화음악’ 에서 6개월 정도 방송작가로 일했습니다. 그때 명필름 PD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접속’이라는 영화를 준 비하고 있으니 음악을 맡아달라고요. 그래서 하게 됐고, 영화가 히트를 쳐서 지금까지 영화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운이 아주 좋았던 거죠.

첫 작품이지만, 특히 OST가 대성공을 거두어 실력을 인정받으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셨어요? 부담감도 있지만, 우쭐하는 마음도 들 것 같은데요.
‘접속’ 이후에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신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제 기사가 나왔고요.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부담감이나 우쭐하는 마음 같은 건 없었어요. 저는 누구를 의식해서 하거나 분위기에 휩쓸리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제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련다는 주의입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일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많았어요. 엉뚱한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 건 자기가 조절해야죠. 그때 회사를 차렸다면 더 성공했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제가 원하는 인생은 아니에요.

성공적이었다고 쉬 자만하지 않는 조영욱 감독의 그 ‘스타일’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했다. 음악광, 영화광으로서 수많은 걸 작들을 보아왔기에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늘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창작자로서의 숙제 때문일까. 기자를 배려하며 질문마다 차근 차근 답하는 모습에서 오래 전부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의 태도가 묻어났다.

영화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사람마다 작업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요. 할리우드의 경우는 영상편집을 마치면 뮤직에디터가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의 곡을 지정해서 준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죠. 영화를 ‘날 것’ 그대로 받아서 분석해요. 매 장면이 어떤 음악을 만나야 할지요. 또 영상으로 표현이 제대로 안 된 부분은 음악으로 보완할 방법을 찾고, 관객들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특별한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 뒤에 감독과 같이 보면서 의견을 조율해가고 수정작업을 거친 뒤 레코딩과 믹싱작업을 하죠. 단순 한 과정인데, 한 작품 당 3~4개월 걸려 이런 일을 반복합니다.

각 과정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특히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작업하시는지요. 영화를 분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없이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죠. 누구나 하는 식으로 슬플 때 슬픈 음악, 기쁠 때 기쁜 음악 넣으면 쉽겠지만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니 힘든 거예요. 슬픔도 여러 가지잖아요.

‘어떤 슬픔일까? 어떻게 표현하지? 경쾌한 음악으로 슬픔을 표현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면서 곡을 만드는데, 음악이 장면과 결합되면 또 다릅니다.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기도 하고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가 다른 사람의 치아를 뽑는 장면에 비발디의 ‘사계’를 쓴 것이 그런 예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음악이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모두들 의아해 했죠. 극적인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또 영화는 특정 장면만 보면 슬프지만 전체에서 그 장면을 보면 슬프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각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파악하는 분석도 해야 합니다.

영화음악은 순수음악과는 달라요. 음악적인 표현에 치중하기보다 영화라는 틀 안에서 예술적인 퀄리티를 높여가야 하죠. 또 영화음악은 감독과 제작자의 요구사항이 있어서 그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감독이 작품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지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에 그것을 어 떻게 표현할지 작곡팀 사운드트랙킹스(The SoundTrackings 조영욱 감독이 함께 작업하는 작곡팀. 한 편의 영화에 보통 3~4명이 한 팀이 되어 일하며, 조영욱 감독은 프로듀싱과 디렉팅을 총괄한다.)와 논의 하죠. 영화는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작업이에요. 요즘 웬만한 영화는 백 억 이상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잘 찍었나 못 찍었나, 흥행이 될까 안 될까’를 생각하게 되고, 음악이 해줘야 할 역할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러기 위해 감독과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영화 ‘올드보이’는 2004년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력과 뛰어난 영상미 못지않게 음악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복수’라는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OST가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명 작으로 손색이 없게 했으며, 작품성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했다.

작업과정에서 감독이나 제작진과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하나요?
심심치 않게 생깁니다. 제가 볼 때 전혀 아닌 걸 요구하는 경우 가 있거든요. 마찰이 생길 때 제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 라도 영화 분석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신을 가지고 주장도 하고 새로운 제안도 할 수 있으니까요. 모르면 어떻게 이야기하겠어요. 그냥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지요.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뷰티인사이드’를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주위에 서너 번씩 본 사람들도 있던데, 음악이 만들어내 는 독특한 분위기가 인상 깊었죠.
영화가 굉장히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데, 저는 작업하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닭살이 돋아서요.(웃음) ‘뷰티인사이드’의 제작자는 제가 잘 아는 후배입니다. 하루는 “형, 이번에는 멜로 영화인 데 형이 해줘야겠어. 형은 멜로 출신이잖아” 하더라고요. “너 잘 아는구나” 했죠. 사람들이 제가 멜로 영화를 했다는 걸 자꾸 잊 어버리는데 히트한 게 몇 개 있어요. ‘접속’도 그랬고 ‘클래식’도 음악수입이 꽤 많았죠. 영화 일은 서로서로 도와서 하고 그런 면이 있어요. 후배가 “형,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하면 개런티를 조금만 받더라도 해줘야지요.(웃음)

조영욱 감독은 ‘뷰티인사이드’에서 독특한 분위 기의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설렘과 즐거움을 선사 했다. 날마다 모습이 변하는 ‘우진’의 고통과 그런 우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 ‘이수’의 진심에 그의 테마곡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토록 공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성패와 상관없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 품이 있나요?
아쉬움은 항상 있어요. 그리고 작업을 하다 보면 애정과 사랑이 생겨서 작품이 모두 자식 같 죠. 그래서 ‘안 좋다’라고 하기보다 ‘아깝다’는 마음이 들어요. ‘이렇게 했으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죠.

직접 메가폰을 잡고 감독을 해보고 싶지는 않으세요?
언젠가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해요. 하지만 조절을 잘 해야죠.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분간하지 못하고 뛰어들다가 실패하고 망가지니까요. 영화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감靈感’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영화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하고 감동을 주도하는 멜로디를 번뜩 스치는 기발한 착상에 맡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품고, 고민하는 중에 탄생하는 것이 조영욱의 음악이다.

작년 겨울 조영욱 감독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 게 지냈다. 영국 BBC에서 방영된 박찬욱 감독 의 첫 드라마 연출작 ‘리틀 드러머 걸:감독판’의 음악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 역시 드 라마는 처음이었다. 타이트한 제작 스케줄로 인해 어느 때보다 힘든 작업을 소화해야 했지만 박찬욱 감독이 함께하자고 하면 그는 두말 않고 응낙한다. 오랜 친구이자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기에 만나면 무슨 작품이든 신나게 한다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감독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박 감독은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후배 가 이야기해도 귀담아듣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묻죠. 무슨 일을 하든 들을 수 있는 자세는 있어야 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그와 한 동네, 옆집에 사는 이웃이건만 짬을 내기 힘든 두 사람이 어서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큰 듯했다.

영화음악가는 어찌 보면 베일에 가려져있는 존재입니다.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엔딩 크레디트 에서 음악감독을 눈여겨보지는 않거든요. 섭섭 하지는 않으세요?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저는 오히려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요. 아까 말했듯이 나서는 걸 싫어 하거든요. 그래도 업계 사람들은 다 알아요.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도 알고요. 그러면 된 거죠. 제가 요즘 들어 하는 생각은 ‘영화에서 음악이 하는 역할이 어디까지일까?’ 하는 질문이에요. 음악이 아예 없는 영화도 있잖아요. 영화에서 음악, 음악감독은 없어도 되는 존재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하죠. 내가 영화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 궁금하지만 아마 영원히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저만 하는 고민인데요. 마음 한켠에 늘 숙제처럼 남아 있습니다.

조영욱 감독은 영화 안에서, 영화를 위한 음악을 추구한다. 음악이 도드라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 다. 형체를 잃어버리고 영화 속에 녹아들어 무언의 메시지로 관객들의 마음에 자리 잡기 원한다. 영화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무엇보다 ‘먼저’이기에 그는 영화와 하나 되기를 선택했다.

저예산 영화들의 음악작업을 돕고 계신다고요.
후배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일 년에 한 작품씩은 저예산 영화를 하려고 합니다. 스케줄이 맞아야 하는데 시간이 안 날 때도 있죠. 후배들이 성공하면 좋겠어요. 그게 결국 제게 돌아오거든요. 할 수 있는 한 좋은 후배를 많이 길러내고 어려운 후배들을 도우려 하는데 일에 쫓기다 보면 못할 때가 많아서 아쉽습니다.

보람되고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그런 걸 느끼는 데 둔감한 편인데,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해요.(웃음) 결혼을 늦게 해서 아홉 살 된 쌍둥이 아들 둘 이 있거든요. 얼마 전에는 아들이 집에 놔둔 ‘증인’ 시나리오를 보고 “아빠, 순호가…” 하면서 소감을 말하는데 신기했죠. 개봉한 뒤에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차에서 이야기도 나누며 돌아왔어요. 중학생이 되면 아이들이 아버지와 대화를 안 한다면서요. 언제까지나 영화를 소재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그는 일상에서 거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더 수수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진짜 모습이 궁금했는데, ‘여기’에서 찾으면 안 될 것 같다. 자리를 옮겨야 그저 묵묵한 그가 관객들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며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울림’으로 말하는 사람 조영욱. 사람들은 그를 통해 영화를 마음에 담고 인생을 생각한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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