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인터뷰] 축구선수 이재성

축구는 11명이 함께 뛰는 경기다. 공격수 혼자 상대팀 11명을 제치고 득점에 성공하는 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개인기에 의존하기보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골을 만들어가는 축구, 그것이 이재성이 생각하는 축구의 이상형이자 완성형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도전으로 일관했던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나는 현재 프랑크푸르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자 <투머로우> 독일 통신원이다. 7년째 독일에서 생활하다 보니 축구는 독일인에게 있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삶의 일부임을 피부로 느낀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축구를 보러 경기장으로, TV 앞으로 몰려들어 거리가 한산해질 정도다. 인터넷, 잡지, 신문은 경기 전날부터 온통 축구소식으로 도배된다.

황희찬, 이청용, 지동원, 구자철… 축구 선진국 독일에서 뛰며 당당히 조국을 빛내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멋진 플레이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는 소식이 TV나 인터넷에 나오면 절로 가슴이 뿌듯해진다. 지금 소개할 이재성도 그중 한 명이다. 인스타그램으로 그에게 인터뷰하고 싶다는 글을 보냈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죠?’

너무 뜻밖이었다.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그가 있는 킬Kiel에 도착했다. 인터뷰는 시내의 작은 한식당에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작년 7월 홀슈타인 킬로 이적한 뒤 8개월이 지났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아픈 곳도 많고 부상도 잦았는데, 지금은 다 나아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유럽 선수들은 체격이 좋고 경기 템포도 빨라 완벽히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합니다. 해외에서 뛰는 건 힘들지만, 여기 있는 시간이 제 인생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라 행복합니다. 2월 23일에는 이청용 선수가 뛰는 VfL 보훔과 경기가 있었습니다. 청용이 형을 만나 많이 반가웠지만, 경기 때만큼은 소속팀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생애 첫 ‘코리안 더비’였는데, 큰 영광이었습니다.

이재성은 넓은 활동반경이 장점으로 꼽힌다. 포지션은 공격수이지만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이재성은 넓은 활동반경이 장점으로 꼽힌다. 포지션은 공격수이지만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홀슈타인 킬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했습니다. 이적료도 역대 최고인 150만 유로(한화 20억 원)이고요. 만만찮은 실력을 갖춘 선수들 사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니 심적 부담이 크지 않습니까?

팀 발터 감독님을 비롯해 선수들이 모두 저를 가족처럼 대해 주어 큰 부담은 없습니다. 특히 감독님은 독일에 오기 전부터 자주 영상통화를 하며 저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내비치셨어요. ‘이런 분이라면 믿고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적한 지 딱 일주일인 작년 8월 4일에 데뷔전을 치렀는데, 어시스트만 두 개를 올리며 만점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 뒤로는 경기가 잘 안 풀렸어요. 그래도 감독님은 ‘넌 아직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 그래서 나는 기다려줄 수 있어’라고 하셨어요. 마음이 든든했죠.

경기장에서 팬들도 저한테 ‘리Lee~’ 하고 환호해 주시는데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몰라요. 외국에서 제 이름을 들으니 한국에서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에요. 팬들 덕에 저도 성장하고 축구가 발전하는 거니까 팬 한 분 한 분이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지요. 감독님과 동료들, 팬들은 제가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3형제의 막내로 어려서부터 골목에서 형들과 공을 차던 이재성이 정식으로 축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학성고 3학년이던 2010년에는 대교 눈높이 고교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고려대로 진학해 2013년 대학리그에서 31경기 14골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기량을 선보였다.

그런 그가 2014년 K리그 전북 현대에 입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기대보다 우려를 나타냈다. 2010년 이후 리그 3위 밑으로는 내려간 적이 없는 전북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강팀이다. 2군 선수들 기량이 타팀 1군과 맞먹을 만큼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하다. 또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신예보다 실력이 검증된 노장을 선호한다. ‘신인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전북에서 그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그해 리그 26경기에 출전해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슈퍼루키’란 찬사를 받았다.

전북에서 데뷔 첫해부터 주전을 확보하는 걸 보며 ‘참 대단한 재능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3년에 전북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전북은 잘하는 선수가 워낙 많아 신인이 출전기회를 잡기 힘들다’는 게 주위의 반응이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자. 그 안에서 내 실력을 시험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최 감독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전지훈련 때 출전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그렇게 계속 경기를 뛰다 보니 큰 도움이 됐습니다. 좋은 선수들과 경쟁을 펼치는 동안 기량도 한 차원 더 성장했습니다. 전화위복이었지요.

축구선수는 골을 넣을 때 가장 기쁘다. 11명이 함께 만든 골이기에 기쁨은 더 크다.
축구선수는 골을 넣을 때 가장 기쁘다. 11명이 함께 만든 골이기에 기쁨은 더 크다.

감독님뿐 아니라 선배들도 많은 힘이 되어 주셨을 텐데요.

입단 후 첫 훈련 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동국, 김남일 선수 같은 대선배들이 와 계셨거든요. 평소 TV로만 보며 동경하던 선수들과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기했어요. 동국이 형이 첫 룸메이트였는데 어찌나 떨리는지 잠도 잘 못 자고 긴장하며 지냈어요. 그런 선배들과 생활하며 프로 선수들이 얼마나 철저히 몸관리를 하는지 배웠습니다.

K리그 통산 137경기에 출전해 26골 32도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통산 5골 10도움을 기록했습니다. 골보다 도움이 많은데 플레이 스타일이 이타적이기 때문인가요?

개인적으로 득점보다 도움을 좋아합니다. 축구란 골 많이 넣는 팀이 이기잖아요? 메시, 호날두 같은 개인기 좋은 선수들이 단독 드리블로 넣어도, 11명이 협력 플레이로 넣어도 똑같은 골입니다. 화려한 개인기가 없어도 동료들과 함께 경기를 풀어가며 골을 만드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축구입니다. 나중에 지도자가 되어도 11명이 함께 하는 축구,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뛰는 축구를 추구하고 싶어요.

이재성은 해외파 치고는 축구팬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선수다. 하지만 이재성의 이력은 웬만한 중견선수 못지않게 화려하다. K리그 3회 우승 외에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2017 동아시안컵 2연속 우승, 2016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8 러시아 월드컵 최대 이변으로 꼽히는 독일전 2-0 승리까지…, 최근 5년간 한국 축구의 국제무대 주요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K리그에 남았다면 높은 연봉과 성적, 인기가 보장되었을 텐데, 해외 진출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입니다. 동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하루하루 삶의 질도 달라지지요. 월드컵 이후 팀에 복귀했지만, 삶에서 딱히 동기를 찾을 수 없었어요. 열정도 끓어오르지 않고, 뭔가 제 자신이 죽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K리그에 남으면 더 많은 것을 누리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겠지만 ‘아, 이런 상태라면 나에게만 손해일 뿐 아니라 소속팀과 열심히 뛰는 동료들에게도 피해를 주겠다’ 싶었어요. 전부터 유럽 진출을 모색하던 터라 새로운 무대로 나가는 것이 답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침 몇몇 유럽 팀에서 적극적인 제의가 들어와 고심 끝에 홀슈타인 킬을 선택했습니다.

한국 생활과 독일 생활에 차이점이 있다면요?

제가 미혼이라 전북 시절엔 클럽하우스에서 합숙을 했어요. 훈련 등 스케줄은 구단에서 짜주는 대로 따라가면 되고, 식사까지도 하루 세 끼 맛있게 준비해 주시니까 편했죠. 구단이 선수를 관리하는 거죠. 독일에서는 집에서 출퇴근을 합니다. 그만큼 개인시간이 많지만, 알아서 몸관리를 하고 훈련 스케줄을 짜야 하는 등 장단점이 있습니다. 스스로 하루를 계획하며 어떻게 연습해야 내게 가장 잘 맞고, 컨디션은 어떻게 조절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 좋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인생경기’는 언제입니까?

프로 데뷔전, 아시안게임 결승전, 러시아 월드컵… 정말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딱히 한 경기를 꼽기는 어렵네요. 한 경기 한 경기가 마음에 남는 경기였습니다.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저를 있게 했으니까요.

축구선수로서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축구선수로서도, 인생을 살면서도 저는 이루고 싶은 게 많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세웠다고 생각처럼 다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그 목표를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며 하루를 살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제 인생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축구부 입부, 프로 입단, 유럽 진출… 인생의 큰 갈림길에 설 때마다 이재성이 선택한 것은 ‘도전’이었다. 치열한 주전경쟁과 부상, 월드컵 16강 탈락 등 아픈 순간도 있었지만 도전은 항상 그에게 달콤한 열매를 선사했다. 그 맛을 알기에 그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 온 건 아니었을까. ‘삶에 어려움이 찾아와도 그 어려움을 버티고 헤쳐나가는 것이 프로의 자세’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독일에서 어떤 열매를 거둘까. 축구팬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를 더 응원하며 또 지켜보고 싶어졌다.

취재 | 프랑크푸르트(독일)=조민정 글로벌리포터
사진 | 홀슈타인 킬 에이전시, 전북 현대 모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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