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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서 나는 ‘독수리’가 되었다
이현우 | 승인 2019.03.20 16:44

나는 내 능력의 한계 안에서 아등바등하는 참새처럼 살았다. 하지만 스리랑카에 가서 나는 멋지게 창공을 가르는 독수리처럼 사는 법을 배웠다. 여기서 배운 마음의 교류가 내게 알려준 지혜였다.

아카데미 클래스에 참여하는 카빗(앞줄 맨왼쪽), 카순(앞줄 가운데)의 집에 초청받아 놀러갔는데 반갑게 대해 주었다. (사진 이현우)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받을 수 없었던 아버지 말씀

“얘들아, 너희는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6년만 고생하면 60년이 편하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나와 형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할아버지의 장애로 인해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노릇을 하며 살아오셨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아버지 말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하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였다. 겉으로는 따르는 척했지만 늘 도망 다니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했다.

간신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과가 예상했던 것과 달라서 한 학기 만에 자퇴하고 재수를 했는데, 성적이 더 안 좋게 나와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하시던 여행사가 폐업하면서 큰 빚을 져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우리 집은 이제 망했구나!’ 하는 생각에 공부를 손에서 놓고 교내 음악밴드에 들어가 술과 기타에 빠져 지냈다.

이현우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다녀온 해외봉사를 통해 귀차니즘에서 벗어났고 새로운 역량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올 한 해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사진 이현우)

세 번 도전한 끝에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군 입대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와 결국 밴드를 그만두고 입대했다.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던데, 최고로 멋진 남자가 되어서 나가야겠다’ 싶어서 훈련 때면 늘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훈련소에서 무릎 연골을 다쳐 수술을 받으면서 오랫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병사들은 ‘아픈 척한다’ ‘혼자 쉴 거 다 쉰다’ 등의 말을 하며 나를 조롱하고 무시했다. 그들에게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오기로 더 열심히 훈련을 받았고, 결국 최우수 병사가 되었다. 제대하니 또 다시 막막함이 찾아왔다. 나는 친구와 아는 형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한 번 편입 시험에 도전했다. 요로결석으로 응급실에 가기도 하고 코피까지 흘려가며 공부했다. ‘여기서 멈추면 내 인생은 정말 끝장이다’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한양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스물다섯에 세 번째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하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것을 이뤘으니 이제 내 앞길은 탄탄대로야!’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만족감은 오래 가지 않았고, 취업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어 교수님들과 학생들의 입에서는 부정적인 의견들만 쏟아져 나왔다.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졸업해도 나만의 경쟁력이 없으면 선택받을 수 없었다.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해져서 동아리에도 가입하고 대외활동도 찾아보았지만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계속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었다.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저리 밝고 명랑하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마음이 공허해서 휴학하고 어느 대안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우리 학생들은 공부를 썩 잘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무척 밝았다.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피우면서도 언제나 즐거워했다. ‘공부도 잘 못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저렇게 밝고 명랑할 수 있지?’ 신기하고 궁금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은 마음을 주고받으며 굉장히 친근하게 지내고 있었다. 작은 일도 서로 이야기하고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문제를 해결해갔다.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나는 마음을 굳게 닫고 사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몰랐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계획하느라 피곤하기만 했는데 교사가 되어 학생들로부터 행복해지는 비결을 배운 셈이다.

네곰보 지역 학교를 돌며 학생들에게 굿뉴스코 봉사단에 대해 소개하고 강한 마음을 만들어 주는 마인드교육에 대해 설명했다.

대안학교에서 일하면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모두들 내게 해외봉사에 참여해보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하는데, ‘나도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 어느 나라에 갈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자!’였다.

그런데 마침 봉사단 워크숍에서 스리랑카 지부장님을 만났고, 나라에 대한 소개를 듣다가 스리랑카에 가기로 했다. ‘물은 풍족하려나? 전기가 자주 끊어지는 건 아닐까?’ 하고 염려도 되었지만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스리랑카 봉사단 활동 소식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으니 하루빨리 그곳에 가서 내 모든 것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내 스리랑카에서 독수리처럼 사는 지혜를 배우다

오픈유니버시티대학교 총장님을 만나 봉사단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교류를 요청했다.

스리랑카에서의 생활은 끝없는 부담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큰 대학교에서 하는 행사의 사회를 맡았다. 얼마나 긴장되던지 덜덜 떨면서 사회를 보았다. 지부장님은 또 스리랑카 학생들 앞에서 봉사단으로서의 체험담과 도전정신, 강인한 마인드에 대해 발표하도록 기회를 주셨다. 처음에는 5분 정도 발표했는데 점점 길어져서 나중에는 20분, 30분 발표까지 할 수 있었다. 또 스리랑카에 간 지 불과 두 달 만에 여러 학교와 정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굿뉴스코가 진행하는 마인드교육에 대해 소개할 수 있었다. 앉아서 강연을 듣고 행사 진행하는 것을 보기만 할 때는 편했는데 막상 진행을 맡아 하려니 너무 부담스럽고 막막했다.

하루는 지부장님이 강연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독수리는 크고 무거운 날개를 가졌지만 멀고 높은 곳까지 빠르게 날아갈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참새처럼 몸이 가볍고 날렵해서가 아니라 상승기류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의 능력만으로 하지 말고 상승기류를 타고 누구보다 멀리, 높이 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연을 듣고 나는 지부장님께 여쭤보았다.

봉사단이 주최한 제1회 영어말하기대회를 치른 후 수상자들과.

“지부장님, 저는 참새과예요, 아니면 독수리과예요?”
“네가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고립된 채 혼자서만 잘하려고 애쓴다면 참새처럼 날갯짓하는 거겠지. 자신에게 부족함이 많다는 걸 인정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묻고 도움을 받으면 네 능력보다 넘치는 일도 할 수 있어. 스리랑카에서 상승기류를 타는 경험을 많이 하고 가길 바란다.”

나는 혼자 노력하면서 사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상승기류 따윈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스리랑카에서 어느새 변화하고 있었다. 청소년을 위한 교육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직접 진행하고, 정부기관과 기업, 호텔 등에 봉사단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요즘은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기보다 나에게 힘을 줄 주위의 상승기류를 떠올리며 한 발을 내디뎌본다. 나에게 변화를 가져다 준 스리랑카에서의 사연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자주 나누고 싶다.

이현우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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