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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도전을 부르는 기회다!" 주한 니카라과공화국 대사 에드가르도 호세 꾸아레스마
김소리 기자 | 승인 2019.03.13 20:49

장기간 내전으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불안정했던 니카라과는 21세기 들어 정치적으로 안정되면서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 세계 각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2014년에 주한 대사관을 재개설하고, 2016년에는 ‘에드가르도 호세 꾸아레스마’를 대사로 임명했다. 그는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기에 대통령으로부터 중책을 맡고 지구 반대편 한국까지 오게 된 걸까?

에드가르도 호세 꾸아레스마(Edgardo José Cuarezma). 법학을 전공한 교수 출신 관료다. 2001년부터 수도 마나과 시 환경국장, 시의원도 겸임했다. 배운 지식과 기술로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신념이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2016년 6월, 니카라과 대사로 한국에 부임했다. (사진 김홍수 포토디렉터)

2016년에 주한 대사로 부임하셨는데요. 한국에 오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대학에서 부총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직업외교관은 아닙니다. 대통령이 직접 부르셔서 특채로 임명된 대사입니다. 한국이 외교관으로서 온 첫 부임지이고요.

새로운 직책을 맡아 기대가 크셨을 것 같아요. 한국에 가게 됐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으셨을 때 어떠셨습니까? 또 3년 정도 지났는데, 당시 예상했던 것과 지내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원래는 제가 다른 나라에 가기로 내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바뀌었지요.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한국과 서울을 떠올리니 곧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될 흥미로운 시기가 될 것 같아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올 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누굴 만나서 무얼 할지 궁금했죠.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의구심이 있었던 점들이 쉽게 풀렸고, 맞닥뜨리는 일이나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신기하리만치 한국 생활에 적응을 잘했고요. 그동안 한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덕분에 한국을 아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시는 과제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양국 간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인데요. 특히 경제·사회적인 면에서 중점적으로 협력하고, 문화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 가까워지길 원합니다. 니카라과는 농업 국가여서 농산물과 식품의 질을 향상시켜야 할 과제가 있고 재생에너지 분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을 도입해 니카라과에 전달하는 것이 제가 주력해야 할 일이지요. 
작년 2월 21일에 니카라과와 한국 간 FTA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교류하는 데 있어서 틀을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협정을 체결하기까지 난관이 많이 있었는데,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환경과 관련해서 많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두 나라의 축이 환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경문제에 영향을 주는 산림청이나 수자원공사 등의 기관과 협력하면서 도움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니카라과 대통령께서 대사님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해 임명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여쭤봐야겠습니다. 저를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숙제가 있으면 끝을 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헤쳐 나가는 스타일이지요. 집요하고 추진력이 강하다고 하겠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을 피하지 않고 해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니카라과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간의 대립이 100년 이상 이어졌다.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 최대의 국가이자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지정학적 특징으로 외세의 개입을 초래하며 불안정한 정세가 야기되었다. 이 무렵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외세에 저항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산디노는 니카라과에서 미국을 추방했고, 미국은 니카라과를 떠나면서 국민위병대를 조직하고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를 사령관에 임명했다. 1934년 소모사는 산디노를 살해했고, 이후 소모사 대통령과 일가는 40년간 독재정치를 펼친다. 그러나 소모사는 독재에 저항하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과 계속 충돌해 왔고, 1979년 정권을 빼앗겼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중심 인물인 ‘다니엘 오르테가’는 긴 전쟁 끝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당선됐다. 
장기화된 내전으로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지만, 그렇기에 국민들은 평화를 갈구하며 가족과 이웃, 나라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1964년생인 에드가르도 호세 꾸아레스마 대사 역시 내전 중에 10대 시절을 보내며 군인으로 활동했고, 학업을 중단했기에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고 한다.

대사님의 학창시절이 궁금합니다.

저는 보통의 학생들과 조금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열세 살 때 니카라과에 내전이 일어났는데요. 전쟁이 8년 정도 이어졌기 때문에 그 기간이 지나서야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군인으로 전쟁에도 참전했고요. 10년 가까이 공부를 쉬었다가 다시 학업을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평범한 일은 아니지요. 그때부터 공부해서 법대에 진학했는데,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장을 받는 게 꿈이었습니다. 교사이셨던 어머니와 큰형의 영향 때문인지 내전 중에도 학교는 꼭 졸업하고 싶었는데 대학에 다니게 되어 공부하는 것도,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는 것도 모두 즐거웠습니다.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지만 사회와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외교관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내전을 겪고 군인으로 지내면서 새로운 국가관을 갖게 됐고, 이후 대학에 다니면서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졸업한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대학을 마치고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나라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습니다. 전쟁 중에 알게 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교수였죠. 대학에 가르칠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해서 법률 관련 수업을 하기 시작했고 석사 과정 때는 환경 관련 법을 공부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굉장한 기쁨을 맛봤습니다. 스승과 제자로 지내는 것은 매우 흥미롭거든요. 전공과목도 가르치지만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다 어느 정치인의 소개로 국회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산디니스타 정당에 들어가 고문 직책을 맡기도 했습니다. 교수직을 그만둔 것은 아니고요. 대학과 국회를 모두 오가며 일했습니다. 대통령께 직접 자문하는 일도 했습니다. 2000년에서 2006년까지는 수도 마나과 시의 일도 했고요.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대학과 나라의 일을 병행하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2018년 니카라과 교원 20명이 한국을 방문해 열흘간 경기도교육청이 실시한 교육정보화 연수에 참여했다.

교수와 외교관, 두 직업을 비교해본다면 어느 쪽이 더 보람된가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둘 다 매우 보람됩니다. 교수로서는 학생들이 졸업하는 걸 볼 때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자기 길을 찾아가는 학생을 보면 ‘내 노력이 저 젊은이들을 통해 결실을 맺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사로서는 제가 일을 잘하면 두 나라 사이가 돈독해지고 더 잘 협력할 수 있잖아요. 국가가 발전하는 데 기여하는 것처럼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한 젊은이의 미래를 위해 기여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고요. 모두 성취감과 만족감을 주는 직업입니다.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국제관광박람회’ 에 참석해 관광산업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했다.

대사님 이야기를 들으니 외교학을 전공하신 건 아니지만 삶 속에서 외교관이 될 준비를 하고 계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법을 공부했기 때문에 정치·외교 분야와 관련이 없지는 않습니다. 항상 관심이 있었지요. 그런데 니카라과를 워낙 사랑하다 보니 국외에서 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니카라과 구석구석에 대해 아주 잘 압니다. 그동안 니카라과에서 편안하게 지내왔는데, 대사로서 조국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니카라과 외에 잘 알게 된 또 다른 나라가 생겼습니다. 한국입니다(웃음).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고요.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 속초나 부산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구정 때는 혼자 여행도 다녀왔고요. 3년 동안 한국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니카라과 역시 한류 열풍이 거세다. 한국 음악과 영화, 드라마가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한다. 에드가르도 호세 꾸아레스마 대사는 자신도 K-팝 열성팬이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한다는 그는 특히 경복궁이 좋다고 하며 “한국 역사를 배우고 한국인의 생각과 삶을 느껴보는 것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한복을 입고 가면 입장료를 할인해 주는 제도도 마음에 들고요”라고 경복궁 방문 팁까지 알려주었다.

신생아 때 원인 모를 질환으로 생명을 잃을 뻔했던 아들 에르에스또는 지금 아홉 살로 건강하다. 다섯 살 된 딸 나비, 에르에스또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언젠가 한국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시면서 ‘인생에 찾아오는 많은 어려움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게 말씀하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2010년에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4개월 된 아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졌어요.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죠. 아내와 저는 혼비백산할 만큼 힘들었지만 아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 냉정하게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결정을 했지요. ‘어차피 죽는다면 미국에 한번 데려가 보자. 비행기를 태워 미국에 데려가는 게 위험하고 무모한 짓 같지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나아. 그러니 가보자’라고 말입니다. 
아들은 미국에서 두 달 동안 치료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났어요. 
지금은 아홉 살인데 아주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동안 일에만 몰두해 왔거든요. 가족과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된 기회였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을 부정하거나 피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부딪혀서 해답을 찾아가야 하지요. ‘역경은 도전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지면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역경은 항상 우리를 성장시키지요. 그러니 문제상황이나 어려움이 찾아오면 즐거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좋은 사회와 국가일수록 젊은이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해 줍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삶은 편리해지지만 정신적인 측면이 함께 성장하지 않아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정신적으로 고립되는 학생들도 많고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서로 돕는 인정이 오래 전 이야기인 것만 같아 안타깝기도 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니카라과도 그런 현상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GDP가 100불이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 것들을 기억한다면 사는 게 좀 달라질 겁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지식과 기술 위주로 가르치다 보니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과목들은 사라져 갑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지요. 청소년들은 각국의 역사를 배우고 가정은 무엇인지, 국가는 어떻게 지켜져 왔는지에 대해 알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학교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이 균형을 맞추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 치우치게 되고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좌절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겁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니카라과를 대표해서 한국에 왔고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정말 행복합니다. 한국은 대단한 나라이고 도전할 기회가 많습니다. 저도 대사로서 해야 할 숙제들을 해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생각입니다. 희망을 가득 안고 새 학기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도전하세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여러분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길 바랍니다.

‘가능한 일은 지금 당장 하고 불가능한 일은 잠시 후에 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는 에드가르도 호세 꾸아레스마 대사의 삶 속에서 도전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투머로우>편집실을 방문하고 싶다며 기자들의 일정을 묻는 질문에 이웃과 가족처럼 지낸다는 니카라과 사람의 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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