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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베냉Benin의 앨리스
박하연 기자 | 승인 2019.02.22 15:43

누구보다 완벽하고 멋진 삶을 살고 싶었지만 혼자서 경영했던 자신의 삶에 큰 파산을 만난 박하연 씨. 아프리카 베냉에서 봉사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봤던 마음 성장 스토리를 소개한다.

칭찬 받고 싶은 아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고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어디를 가도 칭찬을 받고 예쁨을 많이 받아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고 자신감도 넘쳤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완벽한 모습만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찾아왔다. 완벽해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고 인정해주는데, 점점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확신이 들지 않은 것은 발표도, 말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교사가 되는 꿈을 위해 사범대에 가려고 했고, 나름대로 성적관리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수학은 아무리 노력해도 점수를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예체능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과감히 수학을 포기하고 사범대 음악교육과를 목표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성악과 공부를 병행하며 입시를 준비했고 다행히 내가 원하던 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두 번의 자퇴 세 번의 입학

하지만 대전 집에서 공주의 학교까지 매일 통학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노래가 아닌 교육학 등 이론 수업을 듣는 것이 싫었고, 나보다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자퇴를 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가 일본어학과에 다시 입학했는데 나랑 전혀 맞지 않는 곳이었다. 졸업장은 따야 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2년을 다닌다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또 다시 자퇴했다.

노래가 하고 싶고 뮤지컬이 하고 싶었다. 부모님과 상의 후에 학원에 등록해서 연기를 배웠다. 연기의 매력에 빠져서 2017년도에 연극과에 신입생으로 들어갔는데,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다. 같은 과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조금 있는 편이었고 내 연기는 완벽하지 않아서 무대에서 자신감 있게 연기하지 못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또 다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연기를 배우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고 못난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신과 강한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이런 고민으로 복잡하던 그때, 부모님의 권유로 해외봉사를 지원했다. 갑자기 해외로 나가서 1년 봉사한다고 25년 동안 똑같이 살아왔던 나 자신이 바뀔지 의문이 컸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해외에 가서 고생도 좀 하고 한계에도 부딪히는 등 적극적으로 봉사할 요량으로 아프리카 국가를 지원했다. 그래서 아프리카 베냉이란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땡볕 아프리카

아프리카라는 것과 불어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베냉에 왔다. 그런데 처음부터 숨이 막히도록 더운 날씨가 일 년 동안 지속된다는 사실이 무척 절망적이었다. 선풍기를 틀어도 덥고, 물은 끊겨서 안 나올 때가 많고, 가끔 전기도 나가서 베냉의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다. 불어는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현지인들이 말을 걸며 다가왔지만 영어 한마디도 안 통하는 그들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예의상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할 일이 있으면 말을 못한다는 핑계로 빠지고, 댄스 공연에도 몸치라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혼자서 피아노만 두들기고 있었다. 보람찬 1년을 보내자고 다짐하고 비행기를 탔던 내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봉사하러 와서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전혀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됐다.

땡큐 아프리카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허비하고 있었다. 땡볕에서 하루 종일 있는 것이 그렇게 곤욕인데 5월에는 열흘 넘게 영어캠프를 홍보해야 했다. 해가 너무 쨍쨍해서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로 걸었는데 내 홍보 파트너 뮤리엘은 걸어가는 그 와중에도 활짝 웃으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20분을 걸어서 그늘에 도착했을 때, 뮤리엘은 나보고 앉아서 쉬라고 하고 포스터를 꺼내서 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오로지 내 힘든 것만 생각하고 잔뜩 불평을 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고 베냉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를 배려해주고 있고 챙겨주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봉사하러 왔으니까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서 뮤리엘이 포스터 붙이는 것을 도왔다. 뮤리엘은 무척 좋아했고, 나중에는 나를 위해 공책에 한 자 한 자 적어서 홍보 문구들을 가르쳐주었다. 뮤리엘의 도움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더듬더듬 불어로 홍보를 할 수 있었다. 홍보기간 내내 무척 더웠고 비를 맞아가며 한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베냉 사람들과 함께 홍보하니까 즐거웠다. 영어캠프에는 목표 인원을 넘는 많은 대학생들이 참여했다. 학생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절로 행복해졌고, 내가 고생하며 홍보했던 시간들이 참 보람차게 느껴졌다. 그날을 계기로 베냉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워졌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무척 고마워졌다.

베냉이 그리워

그런데 갑자기 나 혼자만 이웃나라 카메룬으로 봉사지 이동이 있었다. 3개월 간 지내보고 그 후에 돌아올지 남을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었다. 베냉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떠나는 날까지 눈만 마주치면 울었다. 뮤리엘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편지도 주었다. 왜 진작 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사실 카메룬이 베냉보다 잘 살고, 덥지 않고, 무엇보다도 공용어가 영어와 불어였다. 그곳에서도 내가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이 많았지만 베냉을 떠나올 때 했던 후회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어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부채춤 공연도 준비하면서 카메룬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친해졌다. 하지만 베냉 사람들이 여전히 그리워 3개월이 됐을 때 다시 베냉으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베냉은 여전히 더웠다. 그래도 베냉 사람들과 동료 단원들 얼굴을 보자마자 너무 기뻐서 뛰어가 안고 인사하고 난리를 쳤다. 베냉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사실 카메룬 가기 전과 나의 불어실력은 비슷했지만 이들과 소통하려는 내 마음이 무척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베냉의 앨리스

그리고 12월에는 콘서트를 하기로 했는데 아프리카식 댄스와 합창은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도저히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지부장님께 말씀드렸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 생일이 아닌 것을 축하한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생일인 하루만 축하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생일이 아닌 날도 축하하면 365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의 틀을 바꿔서 행복하게 산다고 하셨는데, 내가 베냉에 와서 마음의 틀이 굉장히 바뀌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현재 나는 불어실력이 유창하지 않고, 언제나 좋은 마음을 가지고 봉사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불평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법도 안다. 또한 힘들어도 전처럼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강한 마음도 배웠다. 처음 베냉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와서 모든 것에 부정적이고 대충 생활했는데 귀국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베냉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곧 한국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공연 연습을 즐겁게 하고 있다. 앞으로 2주 뒤 콘서트에서 그동안 연습한 것을 마음껏 공연하고 정말 행복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척 아쉽고 감사하다.

박하연 기자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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