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체력>저자 이영미

‘20대에는 밤새도 밤샌 줄 모르고, 30대에는 밤새면 밤샌 줄 알고, 40대에는 밤 안 새도 밤샌 것 같다.’ 출판편집자들 사이에격언처럼 통하는 말이다. 이영미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고, IMF 위기로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 때도 거뜬히 버텨낸 그녀가 어느날 스스로 일을 그만둔 것은 순전히 ‘저질체력’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철인 3종 선수로 변신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진 이영미 제공
사진 이영미 제공

이영미 문학사상사, 디자인하우스 등에서 출판 에디터로 일하며 170여 권의 책을 만들었다. 마흔 살부터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 트라이애슬론 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를 완주했다. 미시령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강철체력의 소유자인 그는 현재 출판 에이전트로 일하는 한편, ‘인생학교’ 선생님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마녀체력>이 있다.

이영미 문학사상사, 디자인하우스 등에서 출판 에디터로 일하며 170여 권의 책을 만들었다. 마흔 살부터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 트라이애슬론 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를 완주했다. 미시령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강철체력의 소유자인 그는 현재 출판 에이전트로 일하는 한편, ‘인생학교’ 선생님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마녀체력>이 있다. 사진 이영미 제공.
이영미 문학사상사, 디자인하우스 등에서 출판 에디터로 일하며 170여 권의 책을 만들었다. 마흔 살부터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 트라이애슬론 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를 완주했다. 미시령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강철체력의 소유자인 그는 현재 출판 에이전트로 일하는 한편, ‘인생학교’ 선생님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마녀체력>이 있다. 사진 이영미 제공.

회사에서는 13년차 경력의 출판편집자로, 집에서는 아내이자 엄마로 바쁘게 살던 이영미 작가. 책의 기획부터 집필, 편집, 제작, 판매와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해야 하는 편집자가 겪는 스트레스는 참으로 어마무시하다. 종일 책상 앞을 지키는 것은 물론, 밤을 새는 일도 많고 심지어 주말에도 집에 일거리를 챙겨들고 와야 한다.

결국 그녀는 서른 살 중반에 고혈압 판정을 받았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졸음과 쌓여가는 피로 때문에 가족과 동료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도 잦아졌다. 회사 일과 육아의 틈바구니에서 그녀는 점점 지쳐 갔고, 결국 직장에 사표를 냈다. 2,30대 때는 젊음 하나로 버텼지만, 40대가 되자 그나마 있던 체력도 바닥나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친구들끼리 미니버스를 대절해 가족동반 지리산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민박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은 다음 날, 남자들 몇몇이 ‘지리산에 왔으니 천왕봉을 다녀와야겠다’며 나선 것이다. 도저히 따라 나설 엄두가 나지 않던 그녀는 근처의 녹차밭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리산의 절경을 감상할 절호의 기회 앞에서 시도조차 못하고 포기하는 상황을 맞자 자괴감마저 들었다.

‘공터 한 바퀴만 돌자’로 시작한 철인 3종

그 사건을 계기로, 이 작가는 ‘더 이상 저질체력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수영장에 새벽반으로 등록해 ‘꾸준히’ 6개월을 다녔다. 물론 빠지는 날도 많았고, 실력도 생각만큼 확 늘지는 않았지만 몸에 서서히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호흡도 안정되고 거리도 늘어난 것이다. 운동에 자신감이 붙자 동네공터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바퀴를 걷는 정도였지만,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열 바퀴를 뛸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운동에 취미가 붙자 남편은 자전거를 선물해줬다. 동네 가까운 거리나 지하철역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그녀는 어느 날 남편을 따라 하남시의 미사리 조정경기장으로 놀러 갔다. 호수를 낀 5킬로미터짜리 사이클 트랙은 경관이 아름다워 사이클 동호인들 사이에 최고의 코스로 꼽힌다. 하지만 그녀에게 5킬로미터는 너무도 먼 거리였다. 가까스로 한 바퀴를 돌고 기진맥진한 이영미 작가의 눈에 사이클을 몰고 들어오는 어떤 여성이 꽂혔다. 사이클을 자동차 트렁크에 실은 여성은 정리운동 삼아 트랙을 한 바퀴 더 뛰고 올 작정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영미 작가와 동갑인 직장맘으로,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한 경험까지 있었다. ‘저 사람이 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 그렇게 이영미 작가는 철인 3종에 입문한다.

작년 11월, 100킬로미터 라이딩을 한 후 환호하며 한 컷. 사진 이영미 제공.
작년 11월, 100킬로미터 라이딩을 한 후 환호하며 한 컷. 사진 이영미 제공.

‘트라이애슬론’이라고도 불리는 철인 3종 경기는 수영, 사이클, 달리기 등 세 종목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철인 3종은 단순히 운동을 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바다나 강, 호수에서 수영을 해야 하는데 때로는 야생동물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황토물에 몸을 담가야 한다. 사이클은 어떤가? 철인 3종 선수들은 클릿이라는 특수장비를 신발 바닥에 붙이고 페달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한 채 달린다. 그러다 자전거를 세울 때는 발로 땅을 디뎌야 하는데, 클릿 때문에 양쪽 발이 페달에 붙은 상태라 넘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지할 때는 재빨리 발을 움직여 클릿을 페달에서 빼야 한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꼬박 열흘 동안 연습에 매달린 끝에 그녀는 자유자재로 클릿을 페달에 끼웠다 뺐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이영미 작가는 ‘운동을 하는 동안 연습의 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연습은 힘든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한 번 두 번 넘을수록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한계를 넘는 데 재미를 붙인 이영미 작가는 여전사로 탈바꿈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도 달리고, 비가 오는 날에도 노숙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철녀가 되었다.

운동으로 마음의 근력까지 단련한다

결혼 25주년 기념여행으로 스위스 몽블랑 트레킹을 다녀왔다. 사진 이영미 제공.
결혼 25주년 기념여행으로 스위스 몽블랑 트레킹을 다녀왔다. 사진 이영미 제공.

프랑스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성공보다 더 중요한 건 실패 후의 회복 탄력성’이라고 말한다. 이영미 작가가 생애 첫 실패를 경험한 건 대학교 4학년 때다. 졸업을 앞둔 그녀는 어느 시사잡지의 기자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해 당당히 합격했다. 합격자는 그녀를 비롯해 모두 여섯 명, ‘졸업 전에 취업을 했다는 자부심’과 ‘이제 내 앞길은 탄탄대로’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회사측에서는 여섯 명 중 두 명만 정직원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당연히 정직원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그녀는 뜻밖에도 탈락했다.

그 일로 그녀는 학교에 다시 못 나갈 만큼 큰 충격에 빠졌다. 공부도 곧잘 해서 칭찬만 듣던 그녀에게 시련과 실패는 너무나도 낯선 단어였던 것이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 숱하게 실패를 경험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남보다 뒤떨어지는 분야도 있음을 ‘쿨’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이 작가는 평탄하고 무난한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일수록 운동을 하면서 좌절과 실패를 연습해 보길 권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실패를 극복해 본 경험과 노하우야말로 인생에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탄탄하게 다져진 체력에서 나온 활력과 여유는 회사 업무로도 그대로 이어졌다. ‘대편집자’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고 책 만들기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꼼꼼히 챙기며 의욕적으로 업무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2012년에는 출판인회의에서 주는 출판인상 ‘편집부문’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자신이 편집을 맡은 손미나 아나운서의 책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회사의 만년적자 브랜드였던 ‘펭귄클래식 시리즈’를 흑자로 돌려놓기도 했다.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던 후배 들에게는 좋은 선례를 남긴 선배가 되었다. 특히 여성 편집자들은 커리어의 정점에서 회사를 떠나는 대신 계속해서 편집자로 일하며 경력을 쌓게 된 것이다.

10년 전보다 훨씬 젊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이영미 작가. 운동을 하는 동안 트라이애슬론 완주 15회, 마라톤 풀코스 완주 10회라는 훈장도 생겼다. 단순히 체력만 강해진 것이 아니다. 나태, 권태, 우울,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마음의 근력까지 키운 것이다.

편집자, 강연가, 방송인… 도전의 끝은?

원주의 서점 ‘책방틔움’에서 강연을 한 뒤 참석자들과 함께. 사진 이영미 제공.
원주의 서점 ‘책방틔움’에서 강연을 한 뒤 참석자들과 함께. 사진 이영미 제공.

건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이 작가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기를 기피하던 그녀였지만, 2015년 출판사를 퇴사한 뒤에는 강연가로 변신해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법’ ‘내 짝 찾는 법’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방송패널로도 분야를 넓혀 KBS 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에 1년 2개월 동안 매주 한 권씩 70여 권의 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떻게 대중 앞에 설 용기를 얻었을까? 강의의 콘텐츠가 될 지식이나 콘셉트를 정하는 일은 편집자로서의 경험 덕분에 가능했지만, 청중을 사로잡는 자신감은 운동을 통해 키웠다. 운동을 하며 맞닥뜨린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이 그녀를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운동을 통해 나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앞에 넋놓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분발하며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틈틈이 남편과 여행도 다니는데, ‘돈과 시간이 있어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을 우선적으로 골라 다녀온다고 한다. 2014년에는 히말라야 푼힐전망대로 트레킹을 다녀왔고, 작년에는 결혼 25주년 기념여행으로 스위스 몽블랑 등반을 다녀왔다. 인생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를 뜻밖의 기회를 잡아챌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그녀가 운동을 하는 목적이다. 동년배 친구들 중에는 어느덧 오십견이나 갱년기,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하나둘 늘고 있단다.

하지만 쉰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히려 더욱 열정이 넘친다. 최근에는 일본어와 해금 배우기에 열심이며, 배드민턴 실력을 갈고닦아 전국대회에 나가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작년에는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뜻을 담은 <마녀체력>을 출간해 자신이 몸소 깨달은 체력의 중요성을 책과 강연으로 널리 알리고 있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지병 없이 건강하게 가치 있는 일을 하며 100세까지 사는 사람은 주위에 많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예순일곱에 자전거를 배웠고, 일흔에 스케이트를 탔다. 아인슈타인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전거를 즐겨 탔다고 한다. 노년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창의성을 쏟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운동이었던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얼마 후 이 작가에게 연락을 하니 마침 해외를 여행하던 중이라고 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니 미국 유니버설스튜디오에 있는 호그와트 성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문득 그녀가 <마녀체력>에 썼던 글이 생각났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호그와트(해리 포터가 다닌 마법학교)에서 보낸 편지가 된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 비록 작고 허약하고 말라빠진 몸이지만, 그 안에 상상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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