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우간다에서 봉사활동 마치고 돌아온 민주은씨

이번 표지의 주인공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민주은 씨입니다.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겁부터 먹고 걱정만 했던 그가 어떻게 낯선 곳에서 생활했는지 들어봅니다.

디자인 전진영 기자
디자인 전진영 기자

해외봉사를 우간다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 보건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우간다에 가면 영어로 마인드강연을 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내가 영어로 강연을 한다고? 영어에 대한 부담이 많았지만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몰라서 우간다를 선택했어요.

처음 도착했을 때 신기하고 생소한 것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상상했던 모습은 길거리에 동물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아프리카였는데 실상은 달랐어요. 거리에 오토바이와 택시만 굉장히 많았고 교과서에 나온 우리나라 60~70년대 모습들이 보이더라고요. 식당에는 전기밥솥이 아닌 큰 가마솥으로 밥을 짓고 밥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칼로 열심히 긁어 먹더라고요. 그리고 설거지를 할 때 자루포대를 잘라서 수세미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시골의 여러 마을과 학교를 다니면서 캠프를 열었고 댄스아카데미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시골의 여러 마을과 학교를 다니면서 캠프를 열었고 댄스아카데미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시골 마을을 다니면서 어린이 캠프를 어떻게 했나요?

놀거리가 딱히 없기 때문에 어린이 캠프를 열면 굉장히 많은 아이들이 참석해요. 몇몇 아이들이 웃으면서 “칭챙총~” 하길래 인사인 줄 알고 저도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동양인을 놀리는 말이더라고요. 순진한 미소로 저를 놀리다니 너무 깜짝 놀랐어요. 한 번은 그 아이들 앞에서 제가 한 시간 동안 영어로 마인드강연을 해야 했는데 너무 걱정되고 부담이 됐어요. 그날따라 몸도 안 좋고 해서 포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 피하면 나중에 다시는 못하겠다 싶어서 정말 힘들게 무대에 섰어요. “할 수 있다!”라고 속으로 외친 다음,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어요. 천 년과도 같던 시간이 지나고, 제 강연을 듣고 아이들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 얼마나 열심히 잘 들었던지 자신을 반성하는 말도 하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제 자신의 한계를 넘고 보람을 맛본 시간이 됐어요.

사진 찍자고 하니 순식간에 몰려드는 아이들.
사진 찍자고 하니 순식간에 몰려드는 아이들.

봉사하면서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무전여행은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돈 없이 어디로 멀리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무거운 배낭을 지고 한참을 걷기 시작했어요. 수도 캄팔라에서 목적지인 첸조조까지 5시간 차를 타고 가야했는데,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려니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손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대는데 차들이 멈춰서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차를 얻어타고 첸조조에 도착했어요. 우기라서 비가 엄청 많이 쏟아졌어요. 한시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또 들어갔어요. 고생은 많이 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웃나라인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 유니버시아드 게임에서 의료봉사를 한 적이 있어요. 어떤 아기 엄마가 제 손을 잡으면서 하나밖에 없는 딸을 꼭 고쳐달라고 눈물을 보이시는데 제가 아직은 무엇 하나 해줄 수 없어서 저도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프다고 하는 아이의 얼굴에 파리가 달라붙는 것을 보면서, 의료시설이 부족해서 치료 하나 받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간호학과 공부가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수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솔직히 1학년 학교생활이 많이 힘들었거든요. ‘병원에서 간호사가 가장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당장 간호사가 됐을 때가 무섭고 걱정이 됐어요. 이론적으로 암기할 것들도 많아서 매일매일 지쳐갔어요. 나이팅게일의 책을 읽으면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희생과 봉사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그 정신들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우간다에 가서 직접 환자들을 만나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만나면서 제가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할지 정확한 목표가 생겼어요.

다사다난했던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 소감이 어떠세요?

집에 도착했을 때 빨래를 널고 있는 엄마를 보고 우간다가 생각났어요. 우간다 친구들과 함께 손빨래를 하거나 이불 빨래를 하며 노래를 불렀던 추억들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그리고 친구들에게 댄스를 가르쳐줄 때, 가르쳐주는 저보다도 친구들이 춤을 더 느낌 있게 잘 추는 것을 보고 기가 죽은 적이 있어요. 그때 한 친구가 와서 “우리는 너의 댄스를 보면서 배우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 저 때문에 매주 댄스 아카데미에 온단 말이야.” 하고 작은 초코바를 건네 줬던 것이 저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됐어요.

우간다에서 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을 만났지만 이런 저를 이해해주고 격려해줬던 친구들 덕분에 여러 번 한계를 넘고 단단해질 수 있었어요. 이제 2학년이 되면 교내실습, 병원실습과 간호학 공부가 또 다시 걱정되긴 하지만 강한 마음으로 즐겁게 공부하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내 밥 한 끼도 제대로 못해봤는데 이곳에선 10인분도 뚝딱.
한국에서는 내 밥 한 끼도 제대로 못해봤는데 이곳에선 10인분도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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