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아무런 설계 없이, 막연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은 어떻게 꿈을 얻을 수 있을까? 이사랑 씨도 한때 그러한 고민을 했지만, 아프리카 해외봉사와 캐나다 인턴을 다녀오고 나서 취업, 대학원 공부까지 어떤 기회든 놓치지 않는 열정 디자이너가 됐다.

세련되지만 전투적으로 사는 ‘차도녀’ 이미지의 이사랑 씨를 상상하며 만났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들어와서 부드럽게 미소 짓는 그녀는 이름처럼 사랑스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화장품 패키지 디자이너로 걸맞은 이미지를 가진 그가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주야장천 게임만 하던 때가 있었어요. 공부에 흥미를 못 붙이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니까, 엄마가 저를 진로상담 선생님께 끌고 갔어요. 선생님은 무척 간단하게 ‘컴퓨터 하는 걸 좋아하니까 디자인을 배워서 디자인학과 교수가 되어도 좋겠다’ 라고 하셨죠. 지금 같았으면 공부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교수가 되겠냐고 하겠지만, 그때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네, 그렇게 할게요’ 했죠. 이후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따고 디자인관련 학과에 들어갔지만 성적관리도 못하고 그저 그렇게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해외봉사를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딱히 잘하는 것 없이 살고 있던 그에게 엄마의 뜻밖의 엉뚱한 제안은 또 그를 수긍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장 힘들고 그만큼 보람도 많다는 아프리카를 지원했고 이듬해 케냐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항상 배고프고 목말랐던 케냐 일 년

“이제 날도 어두워지고 잠을 자야 하는데 먼저 씻을 수 있을까요?”
“여긴 물이 없어요. 그냥 자요.”
“네? 씻지도 않고 어떻게 그냥 자요?”

아프리카 케냐의 카지아도. 마사이족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는 곳으로 건조한 초지 기후여서 물이 항상 부족했다. 반나절을 걸어서 물을 길어올 수 있었다. 부족한 물 때문에 농사도 쉽지 않아 아침에는 ‘만다지’라는 조그만 도너츠 같은 것을 먹고, 점심에는 바나나 하나, 저녁에는 ‘우갈리’라는 옥수수죽만 조금 먹고 사는 곳이었다.

“제가 지냈던 두 달 동안이 마침 건기여서 더더욱 물이 부족해서 딱 두 번 샤워를 할 수 있었어요. 매일 적은 양의 음식을 먹자니 항상 배가 고팠는데 어디에서 사먹을 수 있는 곳도 없고요. 그래서 아주 혹독한 다이어트가 됐어요. ‘내가 이렇게 고생해도 되는 거야?’ 하고 후회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그만큼 간절해본 적도 처음이었어요. 이전의 제생활은 ‘되는대로 어떻게든 살겠지’였어요. 꿈이 없어도 학교 졸업하고 취직하고 돈 벌면서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아프리카에서의 경험들은 제 마음을 깨어나도록 만들었어요.”

건물 짓기 봉사, 컴퓨터 클래스 운영, 청소년 캠프 개최 및 홍보 등 날마다 새롭고 벅찬 도전들을 하면서 케냐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했다.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을 때, 그가 수업을 하면 케냐 학생들은 전혀 불평 없이 그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줬다.

이대원 농원 판화 작품. 이사랑 씨의 회사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갤러리. 매월 다양한 주제로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고 있어 젊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촬영할 당시 이사랑 씨는 최선호 작가의 <수화당당전水花堂堂展>을 관람했다. 현재는 라는 주제로 국내외 유명 작가 판화전이 2월 21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대원 농원 판화 작품. 이사랑 씨의 회사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갤러리. 매월 다양한 주제로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고 있어 젊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촬영할 당시 이사랑 씨는 최선호 작가의 <수화당당전水花堂堂展>을 관람했다. 현재는 라는 주제로 국내외 유명 작가 판화전이 2월 21일까지 열리고 있다.

“제가 가르쳐준 것은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었는데 친구들은 새벽부터 걸어와서 클래스에 앉아있을 정도로 배우려는 열정이 굉장히 컸어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그리고 진로에 대해서도 상담해 달라고 찾아왔어요. 배움에 대한 그들의 간절함을 강하게 느꼈어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이들이 이렇게 어렵게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며,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등록금으로 대충 편하게 살았던 제 모습이 되돌아봐졌습니다. 한국이라는 좋은 나라에서 그 친구들처럼 배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 그 시간들을 굉장히 허비하고 있었더라고요.”

 

캐나다 인턴으로 또 일 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최근 인기있는 브랜드나 신생 브랜드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어서 디자이너들이 꼭 가 볼 만하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최근 인기있는 브랜드나 신생 브랜드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어서 디자이너들이 꼭 가 볼 만하다.

한국에 돌아온 이사랑 씨의 마음은 아프리카의 햇볕에 그을렸던 피부만큼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결코 대충, 쉽게 살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동안 등한시했던 성적관리를 시작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는 무엇이든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미 일 년을 휴학하고 해외봉사를 다녀왔지만 일 년 후에 다시 휴학하고 캐나다 인테리어 디자인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위해 떠났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마음공부를 잘 할 수 있었던 케냐와 다르게, 캐나다는 좋은 시스템 환경에서 기술적으로, 학문적으로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곳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케냐 사람들 같지 않더라고요. SNS로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케냐 친구들에 비해, 캐나다 사람들은 관련된 일이 아니면 굳이 저와 같은 유학생과 친해지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덕분에 여가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고 케냐에서 회화로 배웠던 영어를 문법과 어법 위주로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토플과 토익 등 한국에서 필요한 영어 자격시험을 아주 알차게 준비했죠.”

자연과 도시가 아릅답게 공존하는 토론토 생활은 업무와 여가 시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좋았다. 그는 평화로운 시간을 자유롭게 만끽하면서도 디자인 실기와 영어를 야무지게 마스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학원에 갈 기회를 잡다

최근 읽은 책 <트렌드코리아 2019>.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소비과정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최근 읽은 책 <트렌드코리아 2019>.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소비과정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이후 디자인 진흥원에서 보조로 일하기도 하면서 알찬 대학생활을 이어가던 중, 졸업을 준비할 시기가 왔다. 늦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친구들은 일 년 전부터 학원에 다니며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자신은 한참 뒤처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있다면 놓치고 싶지 않았다.

대학원 면접에 참석했을 때, 경쟁자들이 준비한 수십 장의 화려한 포트폴리오들 사이에서 그의 포트폴리오는 정말 초라해보였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에게는 포트폴리오에 대해서 묻던 교수들이 그에게는 전혀 새로운 질문을 해왔다. 디자인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이론과 디자인 책에 관련된 질문을 받았고, 그는 알고 있는 만큼 편하게 대답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포트폴리오는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지원한 그의 열정을 교수들이 높이 샀던 것이다.

“케냐와 캐나다를 다녀와서 저에게 다가오는 기회들을 피하지 않고 도전하니까 하나씩 이루어지더라고요. 가끔 자만해하게 될 때도 있지만 예전의 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배우고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보이는 것만 디자인하지 않고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대학원생이지만 디자이너로서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수십 개의 원서를 쓰고 수십 개 디자인 회사에 지원했다. 그 중에 합격한 곳이 색조 전문 화장품 브랜드 ‘(주)클리오’였다. 이사랑 씨는 클리오의 계열 브랜드인 ‘힐링버드’의 런칭부터 헤어•바디•향수 파트를 맡아, 현재 3년차 패키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패키지 디자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면서 최선의 결과물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동일한 가격대 안에서 패키지를 멋있게 만들지, 내용물의 질을 높일지, 어떻게 하면 소비자에게 가장 필요한 제품이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을지 의논하고 또 의논해서 만들어내요. 한 제품 라인이 나오기까지 3,4개월 이상이 걸리는데 때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지만 거듭된 회의 속에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일을 풀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장엄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케냐와 자연과 도시가 조화롭게 디자인 된 캐나다 토론토에 살면 새로운 디자인 감각이 절로 자란다.
장엄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케냐와 자연과 도시가 조화롭게 디자인 된 캐나다 토론토에 살면 새로운 디자인 감각이 절로 자란다.
장엄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케냐와 자연과 도시가 조화롭게 디자인 된 캐나다 토론토에 살면 새로운 디자인 감각이 절로 자란다.
장엄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케냐와 자연과 도시가 조화롭게 디자인 된 캐나다 토론토에 살면 새로운 디자인 감각이 절로 자란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백화점 샘플 조사, 디자인 전시나 영화 관람, 디자인 교육 참석 등 남들이 여가시간에만 할 수 있는 것을 일과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직업의 매력이라고 한다. 늘 도태되지 않도록 자신의 감각을 새로 갈고닦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디자인 서적과 베스트셀러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일과 함께 대학원 공부도 병행하면서 디자인적 사고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단순히 눈길을 끄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설계와 경영까지 예측하고 사고할 수 있는 감각도 조금씩 키워 나가고 있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하면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디자인 공부를 위한 여정이 남아있기에 도전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이제 디자이너는 단순히 사무실에서 혼자 작업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최고의 디자인 결과를 얻어내고, 좋은 자료와 재료를 찾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소통 능력이 중요해졌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바이어를 만나서 원자재 가격을 협상할 수 있는 영어구사 능력은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큰 경쟁력이 됩니다. 저는 케냐와 캐나다에서 만났던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통해서 영어와 위기대처, 소통 능력 등을 배울 수 있었어요.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디자인이라는 좁은 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보세요. 훨씬 경쟁력 있는 사고와 감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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