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People 피플
어제의 가난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필리핀 다바오의대 총장 조나단 알레그레 Jonathan A. Alegre
김성훈 기자 | 승인 2019.02.11 17:21

알레그레 총장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며 ‘굳은 땅에 물이 괸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아홉 자녀를 키우느라 늘 가난했던 농부 아버지.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고생을 감내하고, 자신보다 힘겨운 처지의 사람을 먼저 돌아보는 자세를 배웠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며, 예순이 넘은 지금도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조나단 알레그레Jonathan A. Alegre. 예순이 넘은 나이에 다바오의대 총장 외에도 국회의장 고문, 타굼시 상공회의소 부회장, 필리핀 의사협회 초대 회장 등을 맡아 원기왕성하게 일하는 리더. 그는 자신의 왕성한 체력이 운동과 건강한 식사, 그리고 무엇보다 남을 위하는 봉사정신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사진 홍수정 기자

천 원으로 열한 식구가 한 달을 버티던 어린 시절

소년의 집은 늘 가난했다. 교사이자 농부였던 아버지의 월급은 50페소(한화 약 1천 원)가 고작이었다. 1950년대임을 감안하더라도 아내와 아홉 자녀를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결국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농사에 전념했다. 그래도 집안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바구니를 짜고 간단한 가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았다. 막내였던 소년도 형과 누나들 틈에서 톱질과 못질을 했다. 토요일에는 거리에 나가 얼음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팔았고, 일요일에 예배가 끝나면 구두닦이, 신문팔이 일을 했다. 3킬로미터 거리의 학교까지 매일걸어 다녔다. 다바오의대 총장 조나단 알레그레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차는커녕 그 흔한 오토바이 하나 집에 없었어요. 이발비를 아끼려고 머리는 아버지가 직접 깎아 주셨어요. 어렵게 자랐지요.”

그렇게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까.

알레그레 총장은 어딜 가든지 ‘학창 시절의 나처럼 가난한 사람,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나?’ 하고 주위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대학 총장이 된 지금도 도시 외곽에 개인병원을 운영하며 틈틈이 가서 환자를 진료한다.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살면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다. “필리핀 도시 외곽에는 의료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병원까지 가자니 멀고 앰뷸런스나 변변한 차도 하나 없어요. 기껏해야 오토바이로 환자를 데려오다가 병세가 악화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인, 공무원들을 만나면 벽오지에 병원을 많이 지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외국인 유학생, 의사시험 합격률 최고치

알레그레 총장이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며 터득한 또 한 가지는 ‘배우려는 자세’다. 그는 일 년에도 여러 차례 교직원들을 데리고 해외로 연수를 간다. 두 달 전에는 중국·스페인·포르투갈을, 한 달 전에는 한국·싱가포르·일본을 다녀왔다. 해외의 유명 의대를 방문해 벤치마킹할 점들을 찾고 학생과 교직원 파견 등 협력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현재 다바오의대는 150개 병상을 갖춘 12층짜리 병원을 신축 중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를 다녀왔습니다. 싱가포르 의료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앞서 있잖아요. 거기는 질병 예방체계가 어떻게 마련되어 있고, 환자는 어떻게 돌보는지 등을 주의 깊게 살폈어요. 동행한 교수님들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기뻐하더군요. 비용은 학교예산 대신 외부후원금으로 충당합니다. 돈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호텔 대신 여관에 투숙하고, 식사도 간단하게 때웁니다. ‘왜 이렇게 자주 해외에 가시냐?’고 의아해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 가겠다고 할 정도지요.”

또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기자재는 주저없이 도입하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덕분에 다바오의대의 시설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환자처럼 반응하는 마네킹으로 수술 실습을 할 수 있는 의료 시뮬레이션 센터, 75인치 대형스크린과 전자스캐너를 보유한 원형 강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다바오의대 학생들은 시험을 볼 때 종이로 된 문제지 대신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시험을 치른다. 사전에 입력되어 있는 수천 개의 문제들 중 컴퓨터가 무작위로 문제를 선정해 시험이 진행되는데, 학생들마다 풀어야 하는 문제가 모두 다르다. 그래서 부정행위나 시험지 유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필리핀의 의과대학들 가운데 외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은 곳이 저희 학교일 겁니다. 시설도 좋고, 등록금도 저렴한 편이고, 도시 분위기도 평화롭고 아늑해 공부에 집중하기 좋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인도 출신이 가장 많고 네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출신도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의사시험 합격률이 8~10%인데요. 다바오의대 유학생 합격률은 80%가 넘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기쁨과 보람으로 산다

다바오의대 총장 임기는 3년이다. 알레그레 총장은 어느 새 네 번째 임기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다. 그가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다바오의대는 필리핀 10대 의대 중 하나로 성장했다. 학창시절, 그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성적도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1등을 해 본 게 전부예요. 의대에서도 결코 상위권은 아니었어요.

집안 형편도 가난하다 보니 제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어요. 환자들이 저한테 진료를 받고 병이 나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뿌듯했습니다. 사례는 못 받아도 상관이 없었어요. 생명을 살리는 것만큼 귀한 일은 없잖아요.”

가정의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개인병원을 열었다. 환자를 돌보는 틈틈이 의학공부도 계속했다.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보는 그의 모습이 널리 알려지면서 병원은 점점 성업을 이루었다. 주위에서는 병원을 확장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병원의 문턱이 높아져 가난한 사람이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될까봐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벽오지로 찾아가 무료진료를 실시했다. 그렇게 그는 민다나오 인근에서 차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바오의대 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의대 총장을 맡아 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다. 재단으로 찾아가니 이사회에서는 이미 그를 총장으로 점찍어 둔 상황이었다.
그는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저는 이 학교에 대해 잘 모르고 의사로서도 공부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닙니다. 저희 학교에는 박사님 같은 분이 꼭 필요합니다.”

외부인으로 의대 총장 된 첫 사례

고심 끝에 그는 총장직을 수락했다. 그동안 다바오의대는 이사회 멤버들 중에서 투표로 총장을 선출하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알레그레 총장은 외부인사로서 총장에 선출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의사의 꽃이라면 단연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외과의사겠지요. 하지만 저는 가정의학을 전공했습니다. 더구나 이 지역 출신도 아니고요. 그런 제가 총장이 된 이유라면 단 하나, 남을 섬기는 희생과 봉사 정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이자 일곱 손주를 둔 할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가족들의 생일이 되어도 특별히 파티를 하거나 외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품이나 약품, 생활용품 등을 구입해 나눠준다. 어려서부터 가난했기에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잘 헤아릴 수 있었고, 그들을 돕고 싶어졌다는 알레그레 총장. 학생들이 훌륭한 의술을 갖추는 것도 그 바탕은 환자를 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바오의대는 민다나오 지역의 의료인 및 의료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6년 6월 설립되었다.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교, 브로큰셔 기념병원, 국민발전재단, 산 페드로 병원, 산페드로 대학 등 다섯 개 단체가 컨소시엄을 결성해 재단이 출범했다. 산하에는 의과대, 치과대, 간호대, 조산대 등이 있다. 학교는 다바오시市 중심가에 위치해 있으며 교수는 125명, 학생 수는 4천 명이며 그중 800여 명이 외국인 유학생이다. ‘학생들에게 인간미 넘치고 빈틈없는 의학교육을 실시하여 건강과 지역사회의 건강을 도모한다’ ‘유능하고 환자와 공감하며 윤리의식을 갖춘 의료인을 양성한다’ ‘재단 이사회의 각 멤버들은 긴밀한 협력관계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해외의 수준 높은 의료 교육 및 서비스에 보조를 맞추고 뒤처지지 않는다’가 학교의 운영강령이다.

일흔 앞둔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의욕

알레그레 총장은 올해 예순여섯이지만 학교의 발전을 위해 부지런히 세계 각국의 의대와 병원을 배우러 다닌다.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며 일한다는 그는 체력 유지를 위해 매일 1.5킬로미터씩 조깅을 한다. 러닝머신도 하루 3~4킬로미터를 뛴다. 마음만큼은 20대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그는 청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을까?

“말을 조심해서 하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대신 사랑과 배려가 담긴 말은 상대에게 힘을 주고 행복하게 합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성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