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국가대표 전은혜

멘탈 승부로 등락이 오가는 스포츠, 펜싱. 최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랭킹 10위였던 선수가 2위로 급부상하며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인드 컨트롤’ 덕분이라는 선수를 만나 승부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김홍수
사진 김홍수

2019년 1월 8일 국가대표 선발전 현장, 경기대 위에 두 선수가 마주했다. 국내 랭킹 1위와 10위의 대결이었는데, 관전 하는 사람들은 1위의 우승을 예측했다. 그 상황에서 10위 선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 경기에서 진다면 이제 국가대표 선수가 될 기회를 영영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의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그 순간,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을 떠올렸다고 한다. 전력이 화려한 상대 선수에 비하면 그는 작고 부족한 다윗과 같았지만, 골리앗을 이기게 한 하나님의 힘을 믿고 달려들었다. 1차, 2차, 3차전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랭킹 1위의 선수를 ‘2승 1패’로 이겨 승리를 거머쥐었다. 마음에서 이미 이기고 시작한 경기였다.
올해로 펜싱을 시작한 지 10년째에 국내 랭킹 10위에 올라 있는 전은혜 선수. 대학 졸업을 앞둔 그에게 이 대회는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마지막 문이었다. 국내 사브르 상위 랭커 열여섯 명 중 국가대표 일곱 명을 선발하는 경기에서 그가 국가대표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국내 랭킹 1위와 겨뤄 이긴 후, 무서운 기세로 경기를 이어나갔다. 평소 체력이 약했던 그이지만 이날은 아홉 시간의 경기에도 지치지 않았다. 마침내, 전은혜 선수는 2위로 대회를 마쳐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비우기 위한 치열한 싸움

사진 김홍수
사진 김홍수

은혜 씨는 어렸을 적부터 에너지가 넘쳤다. 초등학생 때 육상선수로 활약하던 중 그의 빠른 발을 눈여겨 본 한 중학교의 펜싱 코치가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그렇게 ‘펜싱선수’의 삶이 시작되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오전, 오후, 야간 이렇게 하루 세 차례씩 운동을 했어요. 대학에 와서는 야간 대신 새벽에 주로 운동을 했습니다.” 하루 평균 여덟 시간 훈련을 하며 펜싱에 필요한 기본자세와 기술을 배우고 기초체력을 쌓아나갔다. 열네 살 때부터는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수도 없이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상을 받은 대회만 마흔두 개이다. 가끔은 1위를 해서 행복하고 기쁠 때도 있었지만, 쓰라린 패배를 당할 때도 많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펜싱 실력이 향상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동안 가장 많이 배웠던 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었어요. 특히 어렸을 적엔 메달을 따고 난 뒤 다음 시합을 준비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다음 시합을 위해서 들뜬 마음을 비우고 차분해져야 하는데 거기서 빠져나오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비우는 것’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많은 경기에서 떨어져도 보고 성적이 계속 제자리걸음을 해 마음고생을 할 때도 있었어요. 결국, 0.01초의 찰나에 승부가 엇갈리는 펜싱에서 순위를 결정하는 건 ‘마인드 컨트롤’을 누가 더 잘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결승전에서 내가 지고 있거나, 혹은 앞서나가는 상황일 때 눈앞의 점수를 보고 조금이라도 낙담하거나 혹은 자만하는 마음을 받아들이면, 그 순간 바로 몸이 반응하거든요. 저 또한 그렇게 순식간에 점수가 뒤집혀 역전을 당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실패를 통해서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어요.”
기자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대회에 나갔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기록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전국 소년 체육대회 1위, 세계 유소년 펜싱선수권 대회 3등, 세계 청소년 펜싱선수권 대회 참가, 전국 남녀 펜싱선수권 대회 1위…. 종이 위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경기실적을 보면서 그간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해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에 날아든 ‘꿈’
“대학에 들어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주변에 저처럼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뷰티풀마인드’라는 동아리를 시작했습니다.”
은혜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펜싱부원들을 모두 모아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인성교육 강사를 섭외해 마음 강화를 위한 강연을 듣기도 하고, 서로의 교류를 위해 아카펠라를 배웠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이게 뭐지?’하는 표정으로 동아리 참석을 어색해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참여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친구들이 나중엔 무의식중에 아카펠라를 흥얼거리고, 투박하지만 강연 소감을 발표하는 거예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서로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동아리 시간에 운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도전하고 있는 20대 또래들을 강사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1년 동안 해외봉사를 다녀온 이들의 체험담을 들을 때였다. 학교가 없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오지 마을 아이들에게 영어와 컴퓨터, 음악을 가르치며 꿈을 심어주었던 이야기,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법을 배운 이야기 등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곤 했다.
“해외봉사를 떠났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아프리카에 갔다면 어땠을까?’하고 상상을 하곤 했어요. 그리고 내가 해외봉사를 떠나 아이들에게 펜싱을 가르치는 상상도 해보는데 너무 신나는 거예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도 해봤지만 1년 동안 해외봉사를 가려면 운동을 그만둬야 했기에 포기했죠. 대신 ‘지금 당장 갈 수 없다면, 내가 세계 최고의 펜싱선수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나자’는 꿈을 품기 시작했어요.”

사진 김홍수
사진 김홍수

승리는 내 실력에 달려 있지 않다
선수생활 중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미친 듯이 운동하고 훈련했지만 성적은 오히려 더 떨어지기만 했다.
“그때 제가 혼자 열심히 한다는 것에 한계를 느꼈어요. 경기를 할수록 제가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초반에 강적과 만날 수도 있고, 제 컨디션이 어떨지도 모르고, 심판이 누구일지 등 실력을 떠나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은 거예요. 양궁선수들은 바람에게 기도를 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제 실력만으론 꿈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건 기도뿐이었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자는 미국 다이빙 선수 ‘로라 윌킨슨’을 떠올렸다. 올림픽 출전을 몇 달 앞두고 다리 골절상을 당해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던 선수다. 그런 그가 올림픽에 참가해 선두와 60점 이상 점수가 벌어진 상황에서 ‘믿음’으로 금메달까지 획득했던 기적 같은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2019년, 전은혜 선수에게도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예정에 없던 국가대표 선발전이 갑작스레 열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이겼다는 믿음으로 선발전을 치러냈고, 마침내 ‘국가대표’가 되었다.
“경기를 마치고, 항상 제 꿈을 응원해주신 부모님 그리고 교수님께 소식을 알리는데 너무 감사해서 막 눈물이 났어요(하하). 아직 선수촌에 들어가기 전이라 사실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제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무척 기대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함께 지켜봐주세요!”
전은혜 선수는 종종 ‘만약 올해 초, 국가대표 선발전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이 무척 감사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뉴욕 펜싱 월드컵 을 시작으로 이집트 카이로 그랑프리, 그리스 아테네 월드컵, 벨기에 신트니콜라스 월드컵 등 5월까지만 해도 총 일곱 개의 시합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성적에 따라 2020년에 열리는 도쿄 올림픽 티켓을 딸 수 있기에 매 경기가 중요하다. 그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듯, 앞으로 그녀가 세워갈 경이로운 기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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