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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변화를 영어로 말하다…제18회 IYF 영어말하기대회 수상작고려대 홍바울ㆍ대구한의대 전하린
고은비 기자 | 승인 2019.01.21 14:34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 이야기를 누군가 듣고 공감하며, ‘나도 저런 경험을 해봤으면…’ 하는 눈빛으로 바라봐주면 더 실감나게 말하지요. 변화, 행복, 희망을 맛본 사연을 영어로 말할 수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지구촌 사람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전하린, 홍바울 씨가 제18회 IYF 영어말하기대회에 참가해 발표한 내용을 지면으로 소개합니다.

 

홍바울(고려대학교 국제학부 4학년)

- 스피치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달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마음에서부터 불행할 마음, ‘어렵고 힘들다’는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은 결국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마음에서 소망의 마음, 희망을 가지는 마음, 행복할 마음을 가지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은 제 대학생활뿐만 아니라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습니다.

- 원고에서 강조했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현재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저는 현재 고등교육 전문 교수를 목표로 고등교육 분야로 석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등교육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서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 들어 너무 바쁘다보니 스스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그 목적도 잊고 살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를 통해서 제 꿈에 대해서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고,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제 마음을 잡아준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전하린(대구한의대학교 한의학과 2학년) 

 - '나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원고로 쓰고, 말하면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었나요?

제가 한의사가 될 꿈을 품은 지 8년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이 꿈을 꾸기 시작한 계기에 대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어요. 저조차도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사실 힘들 때가 많았어요. 너무 힘들 땐 ‘내가 괜히 이 길을 선택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다시 제 꿈에 대해서 적고, 외우고 계속 발표하면서 ‘아, 내가 이런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었지!’ 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어요. 또 원고를 여러 번 반복해 연습하면서 제 꿈을 향해 달려 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 청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스피치를 할 때마다 난치병 환자분들을 생각하면서 ‘제가 열심히 공부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심정이었어요. 또 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을 분들에게도 함께 힘내자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 18회 IYF영어말하기대회 수상작
A Willing Mind(할 마음만 있다면)
홍바울(고려대학교 국제학부 4학년)

I feel like there’s a war going on inside of mind every day. It’s an epic war between the positive and negative, to do or not to do, to continue going forward or just give up. A common battle can be summarized by my daily travel to university.

One morning as I got ready to take the public transport to campus, I checked my account balance and a glaring figure stared back at me: zero. “Oh boy, here we go again,” I said as I packed my bag and slowly began my long walk to campus. Four hours later, I arrived on campus drenched in sweat and entered the lecture hall. As my classmates took out their brand-new imported textbooks, I took out the paper copied version I printed from the library. After class, I enviously looked on as classmates headed towards nearby restaurants and the school cafeteria, while I quietly went to a bench to take out my lunchbox for another day of rice and vegetables.

Afterwards, I began my long journey back home. The next day my feet were so swollen that I couldn’t go to class and so from then on I borrowed a bike and cycled the long distance to campus.

In these circumstances a war always waged on inside of my mind. Waves of negativity attacked me saying, “What’s the point of going through university like this? I can’t take this anymore, I wish I had some financial support like the other students.” However, I realized that if I just accepted these negative thoughts, I would only end up feeling miserable about myself and it wouldn’t change anything.

It reminded me of a famous story about a criminal and a judge in a certain town. When reporters asked them both the same question “How did you end up here?” they both answered in the same way, “It’s because of my father.”

It makes one wonder what kind of fathers they were raised under, but they were actually brothers and their father was an abusive alcoholic. The only difference was that one was willing to overcome his situation and study law, while the other blamed his situation and turned to crime instead. And so, I too chose to counterattack with a willing mind; a willing mind to not give up, a willing mind to challenge myself and a willing mind to dream. Instead of feeling sorry for myself, I chose to carry on because I realized that life isn’t always rainbow and butterflies, but there are those who are in much deeper financial hardships than me who still persevere and find a way to get it done.

“Don’t ever think it’s over, because the moment you do, it really is over.”

My perseverance eventually led me to come across a special scholarship that fully funded my tuition and even provided me with allowance. I also decided to explore extracurricular activities and was chosen to represent my university as an academic delegation member to Peking University in China, while also working as a team leader for the World Education Leaders Forum during summer breaks because opportunities come to those who seek them. Every day I still face a war of negativity inside of me. But even today I counterattack that negativity with a willing mind by telling myself, “If there is first a willing mind, nothing is too difficult. Today I choose to not give up. Today I choose to challenge myself, and today I choose to dream.” Thank you.

저는 매일 제 마음속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사이의 전쟁, 할지 하지 않을지 두 가지 사이의 전쟁. 계속해서 해나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사이에서의 전쟁이죠. 이 ‘싸움’의 이야기는 보통 제가 학교로 오가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요약됩니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갈 채비를 하던 중 제 통장계좌의 잔액을 확인하곤 화면에 찍힌 ‘0’원이라는 숫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하… 또 시작이라니” 가방을 싸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학교를 향해 걸어갔어요. 4시간 뒤, 저는 땀에 흠뻑 젖은 채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강의실로 들어갔죠. 교실에 있는 친구들이 최신 개정된 교재를 꺼낼 때, 저는 도서관에서 빌린 구판 교재 복사본을 꺼냈습니다. 수업이 마치고, 학교 구내식당과 학교 근처 식당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얼른 벤치로 가서 지난 끼니를 싸온 제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다음 날 제 발은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부어올랐고, 그 이후부터 몇 개월 간은 지인에게 빌린 자전거로 통학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 마음에는 전쟁이 항상 벌어졌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저를 공격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가 뭐지? 난 이제 도저히 못하겠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살고 싶다고.” 하지만 저는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받아준다면 결국 저는 제 스스로에게 비참함을 느낄 뿐 어느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요.

그때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수와 판사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기자들이 두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답은 같았습니다. “저희 아버지 때문입니다.” 그들을 길렀을 두 아버지가 각각 어떤 종류의 사람일지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죠. 하지만 사실 그들은 형제였으며, 그들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차이점은 이것이었죠. 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법을 공부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비관하며 살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반격해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계속해서 꿈을 꾸는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기로. 제 스스로 연민에 빠져 있는 대신 저는 계속해서 앞에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인생이 항상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지만 저보다 더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참고 자신의 길을 계속 찾아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절대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때가 정말 끝입니다.” 저는 이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건너왔고, 학비는 물론 용돈까지도 지원받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교외 활동을 체험해 보기로 마음을 먹자, 학교 대표로 뽑혀 북경대학에 학술대회 대표단원으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여름방학 때는 세계대학총장포럼 팀의 리더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기회는 결국, 이를 찾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여전히 저는 매일같이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전쟁을 치룹니다. 하지만 오늘도 저는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반격합니다. 그리고 제게 말하죠. “내가 할 마음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어려움이 되지 않아. 오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아. 나는 나에게 도전할거야. 그리고 나는 오늘도 꿈을 꾸기로 했어.” 감사합니다.

 

A Striving to Heal(치유를 위한 노력)
전하린(대구한의대학교 한의학과 2학년)

“Hey, Halin, what do you want to be when you grow up?” It’s a question I got asked a lot as a child. At first, I tried to come up with a serious answer. But I realized they weren’t concerned about my aspirations for the future, they just didn’t have anything else to say. Since then, my “aspiration” was to give them the most random answers. One day it would be a singer like Lady Gaga, and another it would be a carpenter like Jesus. I loved seeing the confused look on their faces! But honestly, I had no clue of what I wanted to be until my dreams found me.

It began at a cold hospital. I stood there shaking, not knowing what to even think. And beside me was my mother sobbing. At 13, I was diagnosed with cancer.

Fighting cancer was hard. I had to change schools. I couldn’t eat everything I wanted to, and yes, get surgeries and chemotherapy. I lived in total misery, blaming the world for the unbelievable pain. I prayed desperately every night for the pain to go away. After my third surgery, I was fortunate enough to be called a cancer survivor. I was beyond elated when I heard the news, but before I could say anything, I noticed someone staring at me with a hopeless smile. Then she whispered, “I am so happy for you.”

That’s when I finally saw the people around me. They were battling diseases that doctors couldn’t do anything about. They were left in hospital rooms, almost abandoned, because there was no cure for them. Thinking about the whole experience, I felt like I was called to help the ones fighting cureless illnesses. There seemed to be many noble careers that I could pursue to help them. Suddenly, I came across the studies of Traditional Korean Medicine. I was mes�merized by its holistic and organic view of the human body. It perceives our bodies as a “small universe”! I was so intrigued and wanted to learn more about it. The more I delved into it, the more fascinated I was. At that point, I knew this was it.

This is my fourth year majoring Korean medicine. I am still captivated by its brilliant theories and treatments, keeping me eager for more knowledge. Whenever I learn something new, like an acupuncture point, for example, I search for its usage from all over the world and think about how I could apply it. I’ve been studying Western medicine along with it, which has really helped me to understand the human body from a diverse perspective. I believe that Korean and Western medicine can complement one another. By using both aptly, it will be possible to conquer diseases once thought to be incurable.

If you ask me today what I want to be in the future, I could tell you with confidence. I am an aspiring doctor who can empathize with the sick. With my inexhaustible passion for medicine, I will do whatever I can to heal my patients. I will not give up on life, even when the road to recovery seems blurry, because everyone deserves to be free from pain. I truly wish you all a healthy life full of happiness. Thank you very much.

“하린아,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제가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처음엔 진지한 답변을 하려고 고민을 했었지만, 그 질문을 한 사람들이 저의 야망에 관심이 있었던게 아니고, 딱히 다른 할 말이 없어서 물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저의 “야망”은 가장 기상천외한 답을 내놓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레이디 가가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답했고, 또 다른 날엔 예수님 같은 목수가 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질문한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는게 저의 낙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제가 미래에 뭐가 되고 싶은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저의 꿈이 저를 찾아오기 전까지는요.

어느 추운 병원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저는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도 모른 채 멍하니 떨면서 서 있었고, 제 옆에선 어머니가 울고 계셨습니다. 열세 살의 저는 그날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암과 싸우는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전학도 가야 했고,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도 없었고, 수술과 화학요법 치료도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세상을 원망하며 완전히 절망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고, 매일 밤 고통이 사라지기만을 기도했습니다. 세 번째 수술 후에 저는 다행히도 암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을 떼기도 전에, 누군가가 저를 힘없이 쳐다보며 미소짓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저를 보고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요”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제 주변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의사도 손을 쓸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치료법이 없었기에 그들은 그저 병실에 남겨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분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제 소명이 난치병 환자를 돕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난치병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숭고한 직업은 아주 많았습니다. 고민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기회에 ‘한의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체에 대해 전체적이고 유기적인, 한의학의 관점에 매료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을 소우주로 여기다니요! 저에게 한의학은 너무나도 흥미롭게 다가왔고 저는 더 자세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깊이 알아볼수록, 한의학은 더욱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때, ‘아 이거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제가 한의학을 전공한 지 4년째 되는 해입니다. 저는 아직도 한의학적 이론과 치료법에 매료되어 있으며,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혈자리를 새로 배우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 혈자리를 어떻게 써서 치료하는지 찾아보고, 저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봅니다. 또한 서양의학도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이 덕분에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서로 보완하여 이제까지 알아내지 못한 질환들의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제게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환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자 합니다. 의학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치료의 길이 흐려보일지라도 생명을 포기하지 않을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건강하시고 삶에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은비 기자  bsh00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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