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금은 마음부터 정리할 때… ② 일상에서 배우는 정리

위기의 상황에 대비해 정리정돈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하던 일을 정리하고, 소중한 것을 간직하려고 현재를 정돈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위기 순간을 대비한 정리
최원호(군인)

장교, 부사관, 병사를 막론하고 군에 입대하면 처음 배우는 것이 기본제식과 정리정돈이다. 제식制式이란 차렷, 열중 쉬어, 뒤로 돌아 갓 등과 같이 군인들이 대열을 지어 움직일 때 쓰이는 규정과 양식을 말한다. 제식과 정리정돈을 통해 모든 군인들은 조직 안에서의 질서를 몸으로 체득한다. 특히 정리정돈은 긴급한 작전상황이 발생했을 때 최단시간 내 전투준비를 하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정확한 위치에 해당 물품을 두어야 불이 꺼진 상태에서도 조건반사적으로 전투물자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지 않은 부대는 아무리 전투력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전투준비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다 대응 시기를 놓쳐 작전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적에게 포사격을 하기위해 가장 처음 하는 행동도 포 방열放列이다. 포 방열이란 화포를 사격 대형으로 정렬하는 일인데 이것이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포탄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만다.

그래서 군에서는 항상 정리정돈을 강조하고 주기적으로 그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들을 갖는다. 군대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서도 정리정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평안한 시기에는 삶과 마음이 정리정돈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이나 어려움을 만날 때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삶과 마음이 정리정돈된 사람은 이런 위기가 오히려 다시 한 번 도약할 인생의 호기가 되고, 삶과 마음을 아무렇게나 방치해 온 사람은 이런 위기 앞에 절망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 2018년이 가고 2019년을 맞이하게 된다. 2019년에 이루고 싶은 훌륭한 계획들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정돈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아마 2019년은 여러분에게 전혀 다른 새해가 될 것이다.

 

추억의 상자와 정리
이찬경(취준생)

대학교 4학년 때 전공 수업의 교수님께서 첫 수업을 시작하시면서 노트를 정리할 수 있는 앱을 소개해주셨다. 교수님은 앱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시기 위해 시험적으로 몇 가지를 해보자고 하셨는데, 먼저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기 전과 후의 사진을 찍어 다음 수업 때까지 가져 오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가 책상의 사진을 있는 그대로 찍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왕 정리를 시작했으니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이 들어 서랍과 책상 주변, 책장까지 정리하는데 서랍에 작은 상자 몇 개가 보였다. 그중 하나를 열었더니 편지와 사진, 그리고 일기장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에는 주로 칭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어린이대공원에서 삐친 표정을 하고 찍은 사진도 눈에 띄었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내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내 방 전체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정리를 계기로 서랍 깊숙이 숨어 있던 소중한 추억을 다시 꺼내 회상해 볼 수 있어서 즐겁고 좋았다. 미래를 향해 갈 때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경험하고 느껴온 중요한 것들은 어지럽게 보관된 채 잊혀져 갈 것이다. 목표만을 이루려 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널브러져 있는 주위를 둘러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꿈을 위해서라면
김미래(대학원생)

교무실 책상 위의 물건을 정리하며 3년간의 고교 교직생활을 돌아보았다. 정들었던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려니 눈물이 났다. 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경험 삼아 시작한 교직이 어느새 내 삶의 터전이 되어 있었다. 가끔은 과한 업무에 지쳐 지내다가도 귀엽든 얄밉든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초심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기를 반복했다. 학기 초에는 뾰로통했던 학생이 슬며시 내 옆에 와서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인내했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스물일곱 살이 된 나는 인성교육 전문가이자 교육학 교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직을 내려놔야만 했다.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그 좋은 직장을….’ ‘경단녀(경력단절녀)라는 말도 몰라?’ 등의 말을 뒤로 하고 결단을 내렸는데, 부모님도 무척 당황스러워하셨다.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일과 공부를 다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여태껏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가 쓴 맛을 본 경험이 여러 번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또 지금 이 시점은 안정된 직장에 집중하기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내면을 다져야 할 때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의 앞날에 대해 다시 정리해 보았는데,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꿈’이라는 기준을 세우자 쉽고 결단력 있게 정리할 수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정리한 지 3개월째 접어든다. 업무에 지친 상태에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하고 보고서를 내는 데 급급했던 이전과 달리 요즘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탐구에 집중할 수 있고 무언가를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정리한 경험이 내게 큰 밑거름이 되었기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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