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보던 수더분한 모습 그대로였다. 넉넉한 체구에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 게다가 틀어놓은 수도꼭지마냥 쉴 새 없이 콸콸콸 쏟아지는 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백종원과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맛있는 요리를 먹고 난 것처럼 듣는 사람의 힘과 의욕이 불끈 솟아오르게 하는 만남이었다.

(사진 더본코리아)
(사진 더본코리아)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얼마 전 ‘한식대첩-고수외전’ 편이 끝나서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SBS ‘골목식당’ 녹화가 있고, 녹화가 없는 날은 사무실에 출근하고요. 요 며칠 간은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 고생을 하고 있네요(웃음).

최근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단연 화제입니다. 장사가 안 돼 고민하는 식당 사장들에게 대표님이 대안을 제공해 재기의 기회를 열어주고, 지역상권에는 활기를, 시청자들에게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취지가 정말 좋습니다.

‘골목식당’을 하기 전에 제가 출연하던 프로그램이 ‘백종원의 푸드트럭’이었습니다. 장사가 안 돼 고민인 푸드트럭 청년들에게 컨설팅을 해 주었는데, 뜻밖에 좋은 결과가 나오면서 ‘골목식당 사장님들한테도 컨설팅을 해서 가게도, 지역상권도 살리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시작한 거죠.

(사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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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에 출연한 사장들 중 많은 분들이 ‘메인음식을 바꿔라’ ‘음식은 이렇게 담아라’ ‘메뉴는 두세 개만 남기고 정리하라’ 등 대표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좋은 결과를 얻곤 합니다. ‘백종원 매직’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인데요.

식당 사장님들 중 상당수가 ‘직장 그만두고 할게 없는데 음식장사나 해볼까?’ 아니면 ‘칼국수 맛있게 잘 끓이니까 칼국수집이라도 차려 봐?’ 하는 식으로 사업을 시작한 분들이에요. 그런데 외식업은 ‘이렇게 준비해서 창업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조리도구 사용법, 쓰고 남은 식재료 보관하는 법, 주방 위생 관리 등을 제대로 못 배운 채 식당을 하는 거죠. 끓는 물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넣으면 환경호르몬이 생긴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몰랐던 거죠.

시청자들은 그걸 보며 ‘저거 연출 아니야?’라고 하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사실 집에서 살림하는 분들도 그런 거 잘 모르잖아요? 여자들은 시어머니한테 꾸중 들으면서 배우고, 남자들은 아내한테 잔소리 들어가며 배우고. 그나마 다른 식당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에요. 제가 식당을 둘러보며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바로잡아주면 금방 바뀌더라고요.

안타깝게도 에피소드마다 한두 명씩은 대표님의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대표님의 의견이 100퍼센트 맞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성공한 외식사업가의 조언을 듣는 게 훨씬성공할 확률이 높을 듯한데도 말입니다.

자기가 식당 운영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거죠.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가 나름 괜찮은 줄 알지만, 노래방 가서 녹음한 자기 목소리 들어보면 ‘이게 내 목소리였어?’ 하고 깜짝 놀라잖아요. ‘골목식당’에 출연하는 사장님들도 3,4회분 촬영할 때까지는 자기 모습이 어떤지 몰라요. 그러다 방송에 나오는 본인들 모습에 깜짝 놀라는 거예요. ‘제가 진짜 손님한테 저렇게 했어요?’ 하고. 혹시 악의적으로 편집한 거 아니냐며 항의하는 분들도 있고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말씀에서 뭔가 심오한 철학이 느껴집니다(웃음).

장사 잘하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내가 손님의 입장이 되어보는 거예요. ‘나라면 이 서비스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떨까?’ ‘나라면 이 요리를 기꺼이 돈을 주고 사 먹을까?’ 하고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한번은 ‘골목식당’ 촬영하는데 어떤 사장님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더라고요. 국수를 파는데, 면을 잘못 삶아 뭉쳐진 것을 손님한테 그대로 내놓은 거예요. 손님이 황당했는지 “사장님, 이런 걸 어떻게 먹어요?”라고 하니까 “그거 옆에 빼놓고 드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손님이 “국물 좀 더 주세요”라고 하니까 “먹지도 않고 국물부터 더 달라고 해요?” 이러질 않나모니터실에서 그걸 보고 제가 하도 답답해서 가게로 달려가 물었어요. “사장님이 만약에 국수 먹으러 갔는데 주인이 이렇게 하면 어떻겠어요?” “기분 나쁘죠.” “그런데 사장님이 지금 그렇게 했잖아요!” “어, 제가 그랬나요?” 사람은 그런 자기 모습을 정말 몰라요. 그것만 알아도 훨씬 더 쉽게 바뀌죠.

 

골목식당에 출연하는 식당 사장들의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당장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도 손색없을 요리실력과 경영수완을 겸비한 이가 있는가 하면, 탕수육을 만들어 파는데도 돼지고기 해동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이도 있다. 대다수가 식당집 사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요리에 대한 지식, 경험, 안목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는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짜낸다.

 

‘골목식당’에 나온 분들 중에는 학원에 등록해 기초부터 배우는 게 나을 정도로 요리에 무지한 분들도 있습니다. 겉멋만 들었지 정작 실력을 갈고닦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분도 있고요. 그런 분에게도 어떻게든 대안을 마련해주려고 고심하는 대표님의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인터넷에는 그런 사람들을 성토하는 글이 수도 없이 올라와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거나 솜씨가 서툴다고 뿌리칠 수 없는 게, 마치 꼭 옛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그래요. 저도 옛날에는 돈은 필요한데 일은 하기 싫으니까 부모님께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손을 벌린 적이 있었거든요. 사장님들에게 컨설팅을 하다 보면 마치 제 옛날 모습 같은 사장님들이 있어요. 저는 요리를 통해 어떻게든 그분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주고 싶어요. 그러다보니 방송에서 편집될 정도로 싫은소리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레시피나 솔루션을 알려주는 건 차라리 쉽지만, 사람이 진짜 바뀌려면 관심이 필요한 법이거든요.

(사진 더본코리아)
(사진 더본코리아)

대표님도 일하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니, 좀처럼 믿기 어렵네요.

식당을 운영한다는 게 절대 쉽지 않아요. 하다 보면 유혹도 찾아오고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아요. 다른 사람 다 놀러 가는 주말이나 휴일에도 아침부터 출근해 장사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남들이 쉴 때 일을 해야 하는데, 저라고 어디 안 놀러 가고 싶겠어요? 밤에도 늦게까지 가게를 지켜야 하고, 손님을 대하다 보면 자존심 상하는 일도 생기고…. 외식업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요리를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즐겨야 합니다.

그런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저도 못 이겨서 망했죠, 하하. 식당에서 번 돈으로 건축자재 수입해서 인테리어사업도 하고, 건설업도 했는데 그게 잘되어서 대박이 터진 거예요. 그런데 IMF 금융위기 터지면서 완전히 망했죠. 내가 잘 아는 사업이나 좋아하는 사업이 아니면 손대서는 안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쭉 외식사업에만 매진하고 있습니다. 실패는 마치 예방주사 같아요. 실패를 겪어봐서인지 다른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은 저 길로 계속 가다가는 실패하겠구나’ 하는 게 보여요.

백 대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주의깊게 본 시청자는 요리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한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어떤 분야의 식당이 나와도 그는 문제점을 정확히 찾아내 해법을 제시한다. 지난 10월 31일 방영된 골목식당에서는 파스타집 청년 사장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고추장 볼로네제 파스타와 흑임자 삼겹살 파스타가 이탈리아인들로부터 혹평을 받자, 즉석에서 고사리와 열무로 퓨전 파스타를 만들어 찬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실력이다.

어떻게 그런 기발한 요리를 즉석에서 생각해냈습니까?

경험치가 많아서 그래요. 제가 지금까지 맛을 연구하고 훈련해 온 경험치는 또래 외식사업가들보다 열 배 이상 많다고 자부합니다. 이탈리아의 고급 레스토랑도 가서 먹어보면 마늘이나 올리브 같은 한두 가지 재료를 살려서 요리한 경우가 많아요. 그게 생각나서 ‘고사리나 열무를 넣으면 이탈리아인들에게 통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만들어본 건데 뜻밖에 적중한 거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구하고 훈련하셨습니까?

요리란 결국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의 조합이에요. 신맛도 식초를 쓰느냐, 레몬을 쓰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요. 단맛 하면 기본적으로 설탕이지만, 꿀을 쓸 수도 있고, 배즙을 넣거나, 고구마를 으깨거나, 양파를 볶아서 단맛을 낼 수도 있어요. 구구단만 알면 곱셈을 할 수 있듯, 그 기본적인 맛을 알고 조합해내면 웬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맛은 손쉽게 낼 수가 있는 거죠.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냥 ‘맛있다’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이 소스 맛은 약간 시큼하면서도 끝맛이 달구나. 어떻게 맛을 낸 걸까?’를 생각하고 실제로 그 맛을 내보는 거예요.

예전에 쌈밥집을 운영하실 때는 쌈야채를 예쁘게 담으려고 꽃꽂이까지 배우셨다고요?

단순히 음식만 맛있다고 좋은 식당이 아니에요. 쌈야채 하나를 내어가도 손님이 받아들었을 때 ‘야, 맛있겠다. 푸짐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죠. 상추, 깻잎, 당근, 배추 같은 쌈야채를 알록달록 소쿠리에 담는 걸 보며 ‘아, 저건 꽃꽂이랑 똑같다’ 싶었어요. 그래서 꽃꽂이를 따로 배웠어요. 식당 곳곳에 그런 배려가 스며들 때 가성비가 뛰어난 식당, 콘셉트가 분명한 식당,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식당이 되는 거죠.

언젠가 간장, 된장, 고추장을 종류별로 다 사다놓고 그 맛을 비교분석했다고 하신 게 기억납니다. 맛이 미묘하게 다 다르지요?

다르긴 뭐가 달라요? 그 맛이 그 맛이지, 하하하.

익살 섞인 그 말에 기자들도 함께 웃었다. 실제로 만나본 백 대표는 더없이 소탈했다. 기자들 앞이라고 뭔가 멋진 말을 꾸며내려고 머리를 짜내지도 않았다. 아내랑 아침을 먹으면서도 “여보, 오늘 저녁은 뭐 해 먹지?” 하고 물을 만큼, 그저 요리에 대한 애정 하나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감기에 걸려 허스키하던 그의 목소리도 요리를 놓고 한 시간 넘게 맘껏 이야기를 풀어놓고 나니 어느새 방송에서 나오던 맑은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단지 요리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는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사업가에 성공했고, 방송에도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그리고 식당 사장들의 창업멘토로 활약하며 성공마인드를 전파하고 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백종원 대표는…

(사진 SBS)
(사진 SBS)

최근 몇년간 한국 사람들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린 이름을 꼽으라면 ‘백종원’이 아닐까 싶다.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전날 밤 그가 출연한 ‘골목식당VOD가 포털사이트 화면을 장식한다. 2018년 1월, 5.6퍼센트의 시청률로 출발한 ‘골목식당’은 현재 8퍼센트대의 시청률을 올리며 동시간대 예능프로그램 2위에 올라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한 건 2015년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서였다. 인터넷 개인방송 포맷을 차용한 이 프로그램은 총 네 팀이 출연해 자신만의 콘텐츠로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 여기서 백종원은, 만만찮은 입담과 감각으로 무장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6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단숨에 화제가 되었다. 그해 카카오택시, 허니버터칩 등과 함께 한국소비자포럼이 선정한 ‘올해의 브랜드 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백종원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혹자는 ‘셰프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어렵고 비싼 요리를, 쉽고 간단한 레시피로 가정에서 맛볼 수 있게 하며 대중과 교감했다’고 말한다. 실력 못지않게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미소와 말투를 성공비결로 꼽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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