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진료실에는 하루에도 몇 쌍이나 되는 예비 아빠 엄마들이 찾아온다. 생명을 잉태한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그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필자 역시 초음파 검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의 힘찬 심장박동을 들을 생각에 절로 기쁘고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가 만나 새 생명을 이루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말처럼 간단치 않다. 남성이 사정할 때 배출하는 정자의 수는 적게는 수천만, 많게는 4억 마리에 이른다. 그중 25%는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기형이거나 병든 정자로, 나머지 75%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또 여성의 질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균을 막기 위해 산성을 띤다. 강하고 튼튼한 정자만이 질을 통과해 자궁 입구에 도착한다.

이 자궁 입구에서부터 정자의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궁 경부에는 점액전粘液栓이라는, 젤리덩어리처럼 생긴 물질이 있어 엄마의 신체를 세균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한다. 정자는 자신의 머리보다 작은 점액전의 구멍을 통과해야 자궁으로 진입할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자궁의 길이는 약 7.5 센티미터, 가운뎃손가락 길이 정도밖에 안되는 이 거리를 정자가 통과 하기까지는 무려 두 시간 이상이 걸린다. 수억 마리였던 정자는 자궁을 통과해 난관(나팔관) 입구에 도착할 때쯤이면 대다수가 장렬히 전사(!)하고, 500~600마리만이 최종후보로 남아 자신의 ‘영원한 반쪽’이 될 난자를 만날 자격을 갖춘다. 정자의 수명이 사흘이니 그 사이에 난소에서 난자가 배출(배란)되지 않으면 결국 이 최종후보들은 허망하게 사라지고 만다. 그밖에도 정자가 난자를 만나 생명이 되기까지는 숱한 고비를 넘는다. 여성의 몸에서 항정자抗精子 항체가 생겨 정자를 공격하고 진로를 막는가 하면, 난관에 염증·종양이 생기거나 난관이 폐쇄된 경우에도 불임의 원인이 된다. 다행히 이런 원인을 발견해 치료를 받은 엄마들이 임신에 성공해 예쁜 아이를 낳아 퇴원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필자도 절로 행복해진다.

디자인 전진영 기자
디자인 전진영 기자

정자의 크기는 4~5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00만 분의 1미터)로, 정자가 질에서 자궁을 지나 난관까지 헤엄쳐 이동하는 거리는 인체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160킬로미터나 된다. 얼마나 먼 거리인지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네이버지도에서 ‘서울시청→대전시청 자동차 이동거리’를 검색하면 정확히 160.94킬로미터가 나온다. 수억 마리의 정자들 중 난자와 만날 수 있는 행운의 주인공은 단 한 마리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성공률이 더 희박하고 험난한 여정을, 정자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기꺼이 견뎌낸다.

23년간 산부인과 전문의로 근무하면서 생명의 탄생을 숱하게 지켜 봤지만, 그 과정은 몇 번을 봐도 새롭고 경이롭다. 환경오염, 문란한 성문화, 각종 악성 박테리아와 질병의 창궐로 난임이나 불임이 사회적 이슈가 된 요즘, 생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김소은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김포의 김포 서울여성병원 부원장으로 있다. 2008년부터 굿뉴스의료봉사회의 일원으로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에서 매년 꾸준히 의료봉사 활동을 해 왔으며, 인성교육과  청소년  및  다문화가정  멘토링을 펼쳐온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수여하는 용신봉사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