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할까요?’ 한마디만 물었어도

오래전 미국에 빵집을 운영하는 아가씨가 있었다. 이 빵집에는 어느 남자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들러 오래 되어 딱딱하게 굳은 빵을 사가곤 했다. 그의 옷은 해진 나머지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역력했고, 손은 언제 나 말라붙은 물감투성이였다. ‘틀림없이 가난한 화가 지망생일 거야. 그러니까 새 빵은 엄두도 못 내고 묵은 빵을 사 먹는 게지.’
남자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아가씨는 요즘 말로 ‘서프라이징 이벤트’를 준비했다. 평소처럼 묵은 빵을 사러 온 남자에게 빵을 잘라 신선한 버터를 듬뿍 넣어 건네준 것이다. ‘지금쯤이면 저녁 먹을 때가 됐을 텐데. 늘 퍼석퍼석한 빵만 먹다가 오늘은 맛있는 버터가 든 빵을 보고 얼마나 기뻐할까?’ 한창 즐거운 상상을 하 는데, 별안간 남자가 빵집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이 멍청이! 도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한 거요?” 남자는 건축사로, 공모전에 출품할 설계도를 열심히 그리던 참이었다. 묵은 빵은 지우개 대신 쓰는 것이었는데, 설계도에 생각지도 못한 버터가 묻어 엉망이 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유명한 작가 O. 헨리의 단편 <마녀의 빵>의 줄거리다. 남자를 도우려던 아가씨의 정성은 충분히 짐작되지만, 한편으로는 “묵은 빵만 드시지 말고 제가 버터 바른 빵을 드릴테니 잡숴보실래요?”라고 한번쯤 물어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서 ‘연보상질의 원칙’이 떠오른다. ‘연보상질’이란 직장인이 상사를 보좌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지침 중 하나로, ‘연락하고 보고하고 상의하고 질문하라’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해 소통하라는 것이다. 누구나 소통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소통을 잘하는 건 아니다. 특히 혼자가 아닌, 여럿이 힘을 모아 시너지를 내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에는 소통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디자인 이환 기자
디자인 이환 기자


‘연보상질’은 일상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전에 필자가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간부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부서를 대표하는 자리에 나가라는 지시를 받을 때가 많았다. 마침 우리 부서에는 먼저 입사한 선배 부장도 계신 터라 자칫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담당 임원께 “그 자리에 저를 보내신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여쭤보았다. 그분께서는 “매사에 일을 맡 긴 상사의 의중을 헤아리는 박천웅씨에게 믿음이 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유인즉슨 다른 직원들에게 회의에 참석하라고 하면 자기 입장에서 발언하거나 뜻을 전하고 오지만, 필자는 일을 맡긴 사람의 뜻을 충분히 생각해 그 입장에서 발언하고, 복귀 후에는 회의내용에 대해 빠짐없이 보고하더라는 것이다. 상사를 대신해서 가는 자리인 만큼 ‘회의석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이러저러한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을 사전에 상세히 묻고, 상대의 이야기는 꼼꼼히 기록하고, 마친 뒤에는 상사에게 보고하려고 노력했던 자세 등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이런 경험과 습관은 훗날 필자가 요직에 올라 회사를 위해 더 큰 일을 맡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보상질의 원칙’은 직장생활뿐 아니라 일상생활, 대인관계에도 적용된다. 소위 ‘척하면 척’ 하고 통하는 사이,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사이일지라도 1~2년 정도 연락을 안 하다보면 그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다.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속담처럼, 바쁘더라도 틈틈이 연락이 오가고 얼굴도 봐야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마음으로는 상대를 늘 생각하더라도 그 마음이 표현되거나 전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질문을 하는 것도 그렇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준비된 상태에서 꺼낸 질문은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소통 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먼저 ‘나를 비워라’

우리는 일상에서 혼자 있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가족이나 친구 등 누군가와 함께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보다는 서로 양보하고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며 소통하고 맞춰나갈 수 있어야 한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혹은 연인 관계와 같이 혈연이나 사랑을 통해 연결된 관계에서는 이해와 배려의 폭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과 학생, 상사와 부하직원 등 공적인 관계에서는 이해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인드다. 역지사지의 기본은 ‘내’가 상대방이 되어보는 것이다. 나의 입장이나 기준, 선입견 등을 버리고 철저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혹 나와 갈등을 빚는 상대가 있을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접점이나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연보상질의 원칙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배려’라 할 수 있다. 내게 일을 부탁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에 맞춰 차별화된 결과를 내려고 노력한다면 조직생활뿐 아니라 일상생활, 친구 사이에서도 성공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박천웅
국내 1위의 취업지원 및 채용대행 기업 스탭스(주) 대표이사. 한국장학재단 100인 멘토로 선정되어 대상을 수상했으며, (사)한국진로취업 서비스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대기업 근무 및 기업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들에게 학업과 취업에 대해 실질적인 조언을 하는 멘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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