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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선물 이야기SPECIAL THEME 선물 ③
김소리 고은비 기자 | 승인 2018.12.27 21:42

“혹시 선물에 얽힌 추억이 있으세요?” 물으면 “글쎄요…” 라고 답하지만 이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하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감동 선물사연, 12월에는 자주 떠올려보자.

서른세 개의 선물
정철(정철 카피 대표)

한 번도 아내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선물을 샀습니다. 서른세 번째 생일에 서른세 개의 선물.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고 기발한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값비싼 선물로 서른셋을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머리핀을 샀고 머리띠도 샀고 와인도 샀습니다. 책도 한 권 골랐고 예쁜 팬도 하나 골랐습니다. 꽃도 한 송이, 음악도 한 곡…. 이렇게 서른두 개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서 른세 번째 선물은 나(새로운 선물처럼 보이려고 깔끔하게 이발 을 했습니다). 그리고 생일 카드를 펼쳤습니다. 선물 서른세 개의 의미를 꼼꼼히 적었습니다. 서른세 번 사랑한다고 썼습니다. 지갑도 많이 얇아졌고 다리도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면 피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행복이 밀려 왔습니다.

①특별한 선물이벤트를 하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 대소사를 못 챙길 때가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철이 든 건지, 어떤 위기감이 찾아온 건지 아내의 생일을 그냥 넘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서른세 번째 생일이어서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

②아내의 반응은?
한마디로 ‘꺼이꺼이’였다. 아내는 감동을 넘어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선물의 효과는 10년 이상 지속됐다. 아내는 그 이듬해 생일에 “여보, 작년에 그 선물 진짜 멋있었는데”라는 말을 했다.

③서른세 가지 선물 중 가장 좋아한 선물은?
서른세 가지 선물의 의미를 적은 생일카드를 가장 좋아했다. 아직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정 담긴 레오타드
강민아(부산대 4학년)

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무용을 늦게 시작한 편이다. 내 친구 중에 어렸을 때 발레를 하다가 부모님의 반대로 그만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무용을 하고 싶다는 말을 처음 했다. 친구는 여러 가지 이야기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기본자세부터 호흡의 중요성과 끈기 있는 마인드 까지! 그리고 자신이 입던 ‘레오타드’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내 몸에는 조금 작았지만 나는 그 레오타드가 너무 좋아서 자주 입었다. 지금은 색이 많이 바랬고 라벨에 적힌 글자도 희끗희끗해졌지만 나는 그 레오타드를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선물해준 레오타드는 평범한 레오타드가 아니라 친구의 응원과 애정이 담긴 레오타드이기 때문이다.


장롱 선물
강경숙(구례고 교사)

주변에는 ‘장롱 면허’를 가진 사람이 제법 있다. 가까이는 올케 언니가 그렇고 친구 중에도 더러 있다. 장롱 면허! 운전면허는 있는데도 운전을 안 하거나 하기가 겁이 나서 실제 사용하지 않는 면허증 정도로 이해된다. 어렵사리 얻은 면허증을 썩히는 아이러니에 대해 누군가가 이름을 잘도 붙인 것 같다.
내 면허증은 세상 밖에 나와 다행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장롱이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장롱 속에는 면허증 대신 코트 하나가 잠자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물 건너 온 옷, 그것도 상당히 고가의 옷이 장롱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162년 전통의 럭셔리 ‘버버리 트렌치 코트’ 가 그 주인공이다.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 2003년 당시에 동료 교사 한 사람이 버버리를 입고 출근했는데 참 멋져 보이고 부러웠었다. 이를 눈치 챈 남편은 그걸 암기(?)하고 영국 출장길에 한 달 봉급에 해당하는 큰돈을 투자하여 선물하였다. 그때의 그 감격과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코트는 가보 1호로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미국 유학길에도 버버리를 사수하기 위해 분실 위험이 높은 수하물로 부치지 않고 기내에 모셨었다. 이후에도 코트는 애지중지 잘 모셔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코트가 세상 구경을 못한 다는 데 있다. 금수저 출신이 아니어서인지 취향 탓인지 비싼 옷을 입기 보다는 잘 모셔두고, 보고, 감상하는 데 더 익숙한 듯하다. 15년 세월 동안 코트를 착용했던 기억은 손에 꼽힌다. 가끔은 입으려고 시도해보지만 그때마다 옷에 흠이 가거나 더럽혀질까봐 괜히 신경이 쓰인다. 그럼에도 장롱에서 꺼내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도 또 한 차례 시도가 있었다. 거울 앞에서 잘 차려 입고 벨트를 매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아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게 무슨 일인가. 거울 속의 옷은 이미 내 옷이 아니었다. 그간의 세월이 옷을 늘였는지 내 몸을 줄였는지 팔 부위는 헐거워지고 어깨는 내려앉으며, 허리 부분은 천이 겹치고 벨트는 너무 길며, 코트 밑단은 길어져 치렁치렁하기까지 했다. 옷이 아닌 커다란 고급 포대로 감싸여진 듯한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다. 그간 나는 꽃다운 청춘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었던 것이다.
오늘 같이 낙엽 지는 멋진 만추에 멋지게 빼입고 나갔으면 참 좋으련만…. 단지 모셔두고 애지중지만 한 결과가 씁쓸하다. 이쯤 되면 이 코트도 ‘장롱선물’이라는 딱지를 붙여야 하지 않을까?
남편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감동의 프라다 티셔츠
백주옥(다나인터내셔날 이사)

1990년대, 프랑스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기 위해 일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한 달에 한 번씩 프랑스에 출장을 가서 현지 디자이너들과 스타일과 소재, 색상 등을 의논하고 국내 상황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그러다 한번은 출장 중에 내 생일을 맞았다. 현지 디자인실에서 동양의 먼 나라에서 온 디자이너의 생일을 알게 됐고, 나를 위해 깜짝 파티를 열어주었는데 선물이 놀라웠다. 잡지에서나 보았던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친필 사인이 적힌 티셔츠!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선물을 받고 한동안 감격에 젖어 있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하면서 겪은 모든 어려움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만큼 좋았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프라다의 사인이 적힌 티셔츠 선물은 내가 오늘까지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별 것 아닌 티셔츠 한 장에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어느 디자이너의 마음을 프라다 그녀는 알까?


여전히 유효한 동료의 책 선물
허남숙(작가)

얼마 전 생일을 맞아 가족들에게 선물을 강탈했다. 선물을 마음으로 하지 말고 물질로 하라고 누누이 강조해온 탓에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가족 간에 선물은 자주 할 수 있고 서로의 취향을 알기 때문에 참 즐겁다. 그에 비해 친구나 이웃에게 선물할 때는 고민스러운 점들이 많다. 내가 고른 선물을 좋아할지 생각해야 하고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마음을 전해야 하니 선물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보다 기쁨이 훨씬 크기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을 고른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그 선물이 실물로 남아 있을 경우 위력은 더 강력한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도 가끔 꺼내보는 선물은 함께 일했던 동료가 준 유희열의 <익숙한 그 집 앞>이라는 삽화집이다. 이 책에는 책을 담는 커버가 따로 있고 그 커버 속에 유희열이 직접 그린 그림엽서가 몇 장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동료가 써준 편지 한 통이 있다. 반듯한 글씨로 써내려간 편지를 읽고 있으면 내 눈은 저절로 반달눈이 되고 마음 온도는 2도 정도 올라가는 듯하다. 선물과 함께 전해져 오는 동료의 진심, 그리고 그 시절 함께했던 우리들의 모습…. 오늘은 나에게 귀한 선물을 준 옛 동료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찾아온 마라톤
김우곤(서울시립대 4학년)

2013년 12월의 어느 밤을 기억한다. 나는 대학입학시험을 끝낸 뒤 극심한 공허함과 무기력감을 느꼈고 앞으로 무얼 하면 좋을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만은 없어서 무엇이든 해보자는 생각에 그날 밤, 집 근처 축구장을 찾아 무작정 열 바퀴를 달렸다. 4킬로미터가 조금 안 되는 거리였는데 내가 뛰어본 중에 가장 긴 거리였다. 달리기를 마쳤을 때 숨을 고를 수가 없었고 다리가 몹시 후들거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너무나 행복했다. 나를 괴롭히던 공허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날 이후 달리기를 시작해 시간이 날 때마다 뛰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달리기가 점점 더 좋아졌고, 결국 마라톤이 취미가 되었다. 달리기는 나에게 정말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동안 서른 번 넘게 달리기대회에 참가했고, 요즘은 한 달에 200킬로미터 이상 걷거나 달리는데 몸이 많이 튼튼해 졌다. 체중도 30킬로그램이나 줄었다. 또 달리기로 다져진 체력 덕분에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고 오랜 시간 공부를 해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기가 준 무엇보다 큰 선물은 바로 올바른 가치관이다. 달리기를 하기 전, 나는 자주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마라톤대회를 하다 보면 빠르고 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곧 내 페이스를 잃고 만다. 마라톤에서 페이스를 잃는다는 것은 완주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자 보이는 게 또 있었다. 내가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과 나만의 페이스대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이전에 나는 거의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려고 해 왔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귀찮은 과정이고 나를 도울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짧은 거리는 혼자서도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달리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페이스메이커도 있어야 하고 물과 간식을 주는 자원봉사자들과 힘들고 지칠 때 응원 해주는 시민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마라톤을 하 면 할수록 함께하는 것의 가치는 커졌고 그 속에서 나는 협력하는 법, 의사소통하는 법,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2013년 12월의 어느 날 밤, 달리기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가왔고 그 선물은 또 다른 여러 선물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되어 간다. 나는 5년 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오랜 시간 달릴 수 있게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다. 만약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 갈 수 있다면 나에게 변화를 가져다 준 그 축구장으로 돌아가 열 바퀴를 돌며 그때의 경험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김소리 고은비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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