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배우가 출연한 것도 아니고,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그런 ‘서치’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조용한 흥행돌풍을 일으킨 까닭은 무엇일까? SNS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가족 간의 사랑과 ‘관계’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영화 ‘서치’의 주인공 ‘데이빗 김’은 아내 파멜라, 딸 마고와 함께 단란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한국계 미국인 가정의 가장이다. 임파선 암이 재발한 파멜라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빠와 딸 사이는 삐걱이기 시작한다. 먼저 떠난 아내이자 엄마인 파멜라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칫 서로에게 고통을 줄까 봐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아빠와 딸….
그러던 어느 날, ‘친구네 집에서 그룹스터디를 하고 오겠다’는 전화를 끝으로 마고가 실종된다.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빠는 딸로부터 걸려온 부재중 전화 세 통을 확인하지만, 아침 일찍 등교한 줄로 알고 문자를 남긴다. 하지만 마고와는 계속 연락이 닿지 않고 불안해진 데이빗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다. 여형사 로즈메리 빅의 지휘 아래 수사가 시작되고, 데이빗은 마고의 노트북과 SNS에 남은 흔적들을 샅샅이 뒤지는 한편, 마고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검색search’을 계속할수록 전혀 뜻밖의 사실들이 속속 밝혀진다. 마고는 매주 받던 피아노 레슨을 이미 6개월 전에 그만두었으며, 그럼에도 레슨비를 꼬박꼬박 받아 모은 뒤 정체불명의 계좌로 송금한 것이다. 누군가 마고의 사진을 도용해 위조 운전면허증을 만든 정황까지 포착된다. 결국 랜디라는 전과자가 ‘내가 마고를 강간한 후 살해했다’는 영상을 남기고 자살하면서 사건은 가출로 인한 성폭력 살인으로 귀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마고의 장례식에 쓸 회고영상을 만들기 위해 온라인 상조업체에 동영상을 업로드 하던 중 데이빗은 뜻밖에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빅 형사가 있음을 밝혀낸다. 빅 형사의 자백으로 절벽 아래에 떨어져 있던 마고는 따뜻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다.

영화 ‘서치’는 제목처럼 한 아버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PC와 휴대폰,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을 뒤져가며 잃어버린 딸을 찾는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딸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모르는 새 조금씩 멀어져 버린 아버지와 딸 사이, 바쁘다는 이유로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있던 아버지의 사랑,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놓지 않은 희망을 되찾고 회복하는 과정이다.


서치 SEARCHING #1
딸의 실종으로 마음을 더듬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안 사랑? 아니면 미움이나 증오? 하지만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보다 ‘무관심’일 성 싶다. 아버지들에게 ‘자녀를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예’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무슨 음식을 좋아합니까?’ ‘몇 학년 몇 반 몇 번입니까?’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입니까?’ 하고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아버지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치’의 데이빗도 마찬가지다. 딸의 실종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딸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발견하게 된다. 사건을 맡은 빅 형사가 수사를 위해 ‘마고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달라’고 하지만 데이빗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의 휴대폰에는 딸의 친구 전화번호 하나조차 저장되어 있지 않다. 급기야 노트북과 SNS를 뒤져 딸이 남긴 흔적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데이빗 앞에 그가 몰랐던 진실들이 하나둘 펼쳐진다. 아빠 앞에서는 밝기만 했던 평소 모습과 달리 ‘유캐스트’에 저장된 영상 속의 마고는 엄마 파멜라의 부재로 인한 큰 상실감, 그럼에도 아빠 앞에서 드러내지 않고 아무 일 없는 듯 지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우울증으로 고통하고 있었다. 그런 마고의 진심은 클로즈업된 얼굴표정을 통해 아빠 데이빗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물론 데이빗은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가장이었다. 아내 파멜라가 암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운동을 하며 독려하고, 딸의 성장과정이나 가족의 일상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파멜라는 세상을 떠났고, 데이빗과 마고는 파멜라의 죽음 앞에서 힘들어하면서도 서로에게 고통을 줄까봐 파멜라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린다. 그러다 보니 부녀 사이에는 마음의 대화가 오가는 대신 ‘레슨비 챙겼니?’ ‘쓰레기통 왜 안 비웠어?’ ‘기말고사는 어땠니?’ 같은 형식적이고 일상적인 대화만을 주고받으며 겉돌기 시작한다.
아빠와 딸은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이지만, 그 사랑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관심이다. 서로를 향한 관심이 점점 옅어져 무관심으로 흘러가는데도 두 사람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했던가. 딸 마고가 행방불명되면서 데이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동안 모르고 지내던 딸의 마음을 알게 된다.


서치 SEARCHING #2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다

현대인들에게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 스마트폰의 기능들 중 가장 자주쓰이는 게 SNS다. SNS는 사이버공간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 없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음만 먹으면 전국, 아니 전 세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신을 알리고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 유명인들 중에는 수백만 명이나 되는 팔로워를 거느린 사람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SNS를 통한 인간관계는 양적으로 많아질 수는 있으나 질적으로 깊어지기는 힘들다.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는 공간에서 자신의 고민이나 마음속 어려움을 드러내기란 부담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자칫 소중한 개인정보나 사생활이 노출될 수도 있고, 대중의 공격대상이 될 위험까지 있다. 반대로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마고에게는 학교나 SNS에서 사귄 친구들이 많았지만, 진솔하게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는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다. ‘피시 앤 칩스fish_n_chips’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웨이트리스 일을 하며 공부를 병행하는 백인 여학생이었다. 과거의 자신처럼 어머니가 암으로 입원해 있다는 그녀에게, 마고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아빠 몰래 피아노 레슨을 그만둔 걸 밝히는가 하면, 엄마 병원비에 쓰라고 돈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피시 앤 칩스의 정체는 마고를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한 친구 로버트(빅 형사의 아들)였다. 산 속에서 로버트와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이를 안 마고는 로버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홧김에 로버트는 마고를 절벽으로 밀어버린다. 이것이 마고 실종사건의 전말이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서치’는 SNS가 악용되는 사례들을 계속 보여준다. 마고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던 친구들이 ‘마고는 내 절친이었다’며 눈물을 쏟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를 늘리는가 하면, 어떤 청년은 ‘마고는 나랑 같이 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그밖에도 인터넷에는 ‘아빠가 딸 마고를 죽였을 스물한 가지 이유’ ‘마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등 자극적인 기사와 방송들이 이어진다. SNS로 연결된 관계의 허와 실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들이다.


서치 SEARCHING #3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빅 형사는 아들 로버트가 매우 심약한 성격인 것을 알기에, 그의 잘못을 덮고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수색하지도 않은 사건현장을 수색이 끝났다고 허위발표를 하고, 알고 지내던 전과자 랜디에게 마약을 먹여 거짓용의자로 내세운다. 그밖에도 온갖 억측과 가짜뉴스가 난무하지만 데이빗은 1퍼센트의 가능성을 찾아내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빅 형사가 마고는 가출한 것이라고 몰아갈 때도 ‘가출한 사람이 뭣 때문에 세 번이나 전화했겠냐?’고 반박하고, 살인용의자가 나타난 뒤에도 ‘그럼 마고를 어느 차에 태워 데려간 거냐?’며 되묻는다.
온라인 상조업체에서 보내온 메일에도 ‘내 딸 안 죽었어’라고 답장을 쓴다. 데이빗의 마음에 딸 마고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희망도 죽지 않았다. 데이빗은 마고의 SNS를 부지런히 뒤진 끝에 마고의 SNS 친구 ‘피시앤 칩스’가 가공인물이라는 것과, 용의자 랜디도 빅 형사와 관련 있는 인물임을 밝혀낸다. 빅 형사는 ‘마고가 살아남았어도 물 없이 닷새를 버틸 수는 없으니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데이빗은 ‘실종 셋째 날에 폭우가 내렸으니 이틀만 버티면 된다’며 사건현장으로 달려간다. 결국 아버지 마음에 살아있던 희망이 딸 마고를 죽음에서 무사히 구출한다. ‘서치’에서 사건의 발단은 아빠에게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 못하던 딸이 SNS 친구에게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는 데서 비롯된다. ‘서치’는 데이빗이 마고에게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다. 돌아가신 엄마도 그럴 거야’라는 문자를 보내며 둘이 나란히 앉은 사진과 함께 마무리된다. 부녀 사이가 스스럼없는 관계로 회복되었음을 암시하는 결말이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 중 절반 이상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 시간도 안 된다고 한다. 서로 표현할 기회가 적어 잊고 지낼 뿐이지 부모와 자녀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서로를 향한 사랑이 숨어 있다. 오늘부터라도 SNS 친구 대신 가족들과 마음의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영화 속 아빠와 딸처럼 굳이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서치’의 흥행비결은?

“러닝타임 전체를 PC,모바일, CCTV 등의 화면으로 구성하고 포털, SNS, 라이브 방송 등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을 활용해 디지털 세대의 문화와 감성을 적극 차용한 참신한 스릴러.” 영화평론가 서정환의 ‘서치’에 대한 평이다. 배우들이 연출된 상황에서 연기하는 기존 영화들과 달리, ‘서치’는 모니터에 뜨는 웹 브라우저나 메시지 등을 바라보는 1인칭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영상매체나 IT 서비스는 중장년층 이상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지 모르나, 20~30대에게는 이미 친숙한 것들이다. 영화 예매 사이트인 맥스무비에 따르면 ‘서치’의 관객들 중 54퍼센트가 20~30대였다. 실제 영화촬영에는 2주정도가 걸렸지만, 십수 년 전에나 쓰이던 이베이, 유튜브, 야후 등의 메인화면을 포토샵으로 일일이 재현하느라 편집에는 2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주연배우들이 한국계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주인공 데이빗 역의 ‘존 조’와 존의 아내 파멜라 역의 ‘사라 손’, 딸 마고 역의 ‘미셸 라’ 등은 모두 한국계 배우다. 이들은 모두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상훈
춘천교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횡성 성북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청소년과 소외계층을 위한 인성 및 마인드교육도 꾸준히 하여 강원리더십센터,원주·춘천교도소 우수강사로 선정 되었으며 <문학광장>신인작가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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