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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 빠진 아프리카 청년들송태진의 [ In 아프리카, 아프리카 人 ]
송태진 | 승인 2018.12.24 16:56

혹시 한국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사람을 만난다면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보자. 한국 방송을 접하기 어려웠을 아프리카인이 한국어를 쓴다면 그는 정말 대단한 한류 마니아일 것이 분명하다.

한국인과 구분 불가능한 그들의 한국어 실력

2018년 7월, 나는 제9회 아프리카 대학체전 취재를 위해 에티오피아 메켈레를 방문했다. 아프리카 18개국 52개 대학에서 참가한 국제 스포츠 행사에는 한국의 청소년단체에서 특별히 파견한 한국인 봉사단원 150여 명이 활약하고 있었다. 국제 규모의 행사를 치른 경험이 적은 주최 측에서 한국의 NGO인 국제청소년연합IYF에 자원봉사자 교육을 요청한 것이었다. 에티오피아로 파견된 한국인 봉사단원들은 현지인 대학생 1,000여명을 선발해 6개월 간 교육을 진행했고 그들을 국제 행사에 어울리는 멋진 자원봉사자로 변화 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인 봉사단원들은 국제 규모의 스포츠 축제가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의전, 공연, 의료, 문화교류전시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활동했다. 행사를 주관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의 관계자들은 열정적인 한국인 봉사자들의 활약을 극찬했다.

그런데 한국인 봉사자들을 현지에 파견하기에 앞서 문제가 발생했다. 에티오피아는 고유 언어인 암하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인 봉사단원들이 영어를 쓴다고 해도 현지인들과 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원활한 교류와 팀워크가 필수적인 봉사활동에서 언어 소통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한국 NGO 측은 혹시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어를 통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물색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수십 명의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한국어의문법과 억양, 심지어 책에 나오지 않는 일상표현까지 완벽하게 구사했다. 눈을 감고 목소리만 들으면 에티오피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9천 킬로미터 떨어진 에티오피아에 살고 있는 그들은 어떻게 한국어를 배운 걸까?

비밀은 한류에 있었다. 그들은 한류에 푹 빠져있는 젊은이들이었다. 한류에 매료된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은 K-팝과 한국 영화, 한국 요리 등 한국에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마음을 열고 관심을 쏟고 있었다. 한국어를 공부한 지 9년째라는 게타훈 아다네 씨는 TV에서 본 한국 드라마에 매료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찾아보기 시작했고,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교육 영상을 보면서 한국어를 독학으로 깨우쳤다. 한국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수업을 수강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한류 동아리를 만들어 한국 문화콘텐츠를 공유했다. 게타훈 씨와 비슷하게 한류에 푹 빠진 동아리 멤버들은 그들끼리 에티오피아어 대신 한국어로 유창하게 수다를 떨었다. “헐, 대박!” “아, 진짜요?” “웃기지 마세요.” 한국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표현과 말투까지 구사하는 그들의 한국어엔 이질감이 없었다. 혹시 에티오피아어가 우리말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 쉽게 배울 수 있는 걸까? 아니다. 두 언어는 문자, 발음, 문법 등 모든 면에서 달랐다. 한국어를 안다고 에티오피아에서 취업이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 드라마를 본 것을 계기로 한국에 매료되어 9년째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게타훈 아다네 씨.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해 한국민속촌에 들렀다.

그런데 왜 오랜 시간을 들여 한국어를 공부한걸까. 그들은 단지 한류 콘텐츠를 번역 없이 그대로 이해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는 열정 하나 때문에 어려운 한국어를 터득했다. 블랙핑크의 제니를 가장 좋아한다는 게타훈 씨는 앞으로 한국과 에티오피아가 더 가까워지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내게 고백했다.

한류에 열광하는 아프리카 사람들

내가 일하고 있는 케냐의 TV방송국에서는 드라마와 예능 등 한국 콘텐츠를 자주 방송하고 있다. 케냐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드라마는 ‘주몽’이었다. ‘주몽’ 방송 시간이 되면 전자제품 상가에서는 전시된 TV의 채널을 일제히 우리 방송으로 바꿔놓았었다. 쇼윈도 앞에 ‘주몽’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기도 했고 방송시간에 맞춰 일찍 귀가 하는 이들도 있었다. 드라마의 대사 중 몇몇 단어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주몽’은 대규모 전투신 같은 화려한 액션과 복잡하지 않은 영웅 서사식 스토리 구조가 케냐 사람들의 취향에 잘 맞아 높은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반면 멜로드라마는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애감성이 케냐에는 잘 맞지 않았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프리카의 현지 TV방송국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는 콘텐츠는 9시 뉴스다. 정치가 불안하다보니 국민들이 뉴스에 관심이 많다. 뉴스 전후로 편성되는 황금 시간대에는 외국에서 제작된 콘텐츠가 자리를 잡고, 그 외의 시간대는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들로 채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다양한 국가의 문화콘텐츠를 즐긴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인도와 중남미 등에서 제작된 콘텐츠까지 가리지 않는다. 중국 콘텐츠도 액션영화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인들에게 친숙한 편이다. 특히 재키 찬으로 불리는 슈퍼스타 성룡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최근 중국은 그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아프리카 주요국가에서 위성TV 플랫폼을 운영하며 공격적으로 자국 문화콘텐츠를 보급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날리우드’로 불리는 토종 영화 산업의 성장세가 뜨겁다. 1년에 1,80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시장 규모는 5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미국과 인도에 이은 세계 3위 규모이다. 아프리카인들은 TV와 인터넷으로 취향에 따라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 열풍은 아프리카에서 태동 단계에 있다. 한류 마니아층이 차츰 형성되고 있는 수준이다. 케냐에서 ‘주몽’이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아프리카인들의 취향을 맞춘 적절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현지 젊은이들과 함께 한국 영상물을 모니터링하면 그들은 대부분 ‘환상적’이라는 반응을 내놓는다. 계속 관심을 갖고 찾아보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미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국 대통령이 누군지는 몰라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잘 알고 있다. 특히 방탄소년단과 엑소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K-팝 그룹들은 엄청나게 열정적인 아프리카 소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엑소의 멤버 카이를 만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여성도 있었다. 한류 문화콘텐츠는 아프리카에 우리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뿌리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K-팝으로 한류를 맛본 사람들은 좀 더 깊이 들어가 한국어를 배우기도 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한국에서 취업하는 걸 꿈꾸기도 한다. 한류에 매료된 이들 지한파 아프리카인들은 주변에 한국을 긍정적으로 소개하거나 한국산 브랜드 제품 소비를 선호할 확률이 높다. 한국 문화 산업은 아프리카와 한국 간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이나 무역 확대에 한몫할 수 있다. 만약 마케팅기법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유도하려 한다면 굉장한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고 지속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류에 반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냥 한국이 좋아서 한국 노래를 듣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찾아본다. 세계인들을 춤추게 만드는 우리 문화콘텐츠의 영향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 대학체전에서 봉사자로 참가한 한류 마니아 청년들은 대단한 활약을 했다.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의 한국어를 바로 에티오피아어로 통역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어떤 자원봉사자들보다 먼저 준비했고 끝까지 남아 궂은일까지 함께했다. 그들은 한국인들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를 너무나 즐거워했다. 뜨거운 마음으로 봉사를 한 그들 덕에 한국 자원봉사단은 아프리카 대학체전에서 성공적으로 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 기업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 이들처럼 한국에 마음을 열고 있는 열정적인 인재들을 만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에티오피아 청년들의 한국 사랑은 훌륭한 한류 문화콘텐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혹시 한국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사람을 만나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보자. 한국 방송을 접하기 어려웠을 아프리카인이 한국어를 쓴다면 그는 정말 대단한 한류 마니아일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자신이 한국을 좋아하는 만큼 한국도 자신을 좋아하고 존중해 주길 바란다. 가장 사랑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자. 그들이 어색한 한국어를 하더라도 엄지척 해주며 밝게 웃어주자.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점차 알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아프리카를 좀 더 알아보려고 노력하자. 문화로 끈끈한 유대가 맺어지면 아프리카와 한국은 굉장히 멋지고 재미있는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송태진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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