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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주한 스웨덴 대사 야콥 할그렌 "혁신의 대명사 스웨덴, 그 동력은 오픈마인드다"
김성훈 기자 | 승인 2018.12.10 14:16

8~11세기 유럽을 주름잡았던 바이킹의 후예이기 때문일까. 야콥 할그렌 대사가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언급한 단어는 바로 ‘도전’이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한 바 있다. 22년차 외교관 할그렌 대사의 인생, 그리고 혁신의 대명사 스웨덴의 역사가 바로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었다.

야콥 할그렌Jakob Hallgren. 1995년,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런던정치경제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스웨덴 외교부에 입부해 주보스니아 대사관 이등서기관, 주제네바 대사관 참사관 등을 역임하며 국가간 갈등 중재, 평화 구축, 안보 개혁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약했다. (사진 안경훈 객원기자)

오는 12월이면 야콥 할그렌 대사가 한국에 부임한지 꼭 석 달째가 된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그는 이미 한국에 대한 적응을 완벽하게 마친 듯했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이 위치한 곳은 서울 중구 소월로, 숭례문과는 불과 1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할그렌 대사에게 ‘저 숭례문이 대한민국 국보 1호라는 사실을 아시느냐?’고 묻자, 그는 ‘서울 사대문에 대한 자료는 이미 읽었다. 숭례문뿐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내겐 보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성북동의 대사관저에서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휴일이면 성곽길을 따라 트레킹을 즐기는 게 취미지요.”


최근 몇 년간 한국에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베라는 남자> 등 스웨덴 소설이 번역·출간되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방식을 가리키는 스웨덴어 ‘라곰lagom’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네, 한국의 SNS에서 스웨덴의 음식과 생활방식이 종종 화제가 되듯, 스웨덴에서도 한국의 음식과 문화, 생활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식품점에서도 김치를 살 수 있는가 하면, 대도시에는 한국 식당도 늘고 있지요. 특히 2019년은 스웨덴이 한국과 수교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과 스웨덴은 모두 혁신에 능하다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참 많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주스웨덴 한국 대사관과 협력하여 양국 국민들에게 그런 공통점을 널리 알리는 행사를 많이 개최할 계획입니다. 양국 고위 공직자 간의 회담도 준비하고 있지요.

최근 한국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화두입니다. 그래서 ‘라곰’이 더 화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라곰을 ‘적당하게’ ‘합리적으로’ ‘알맞은’ 등으로 해석하지만, 사실 라곰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라곰을, 하나의 인생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일을 라곰하게 하라’고 한다면, 일을 열심히 하지 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일을 했다면, 휴식을 취함으로써 회복할 시간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물론 휴식도 필요 이상으로 취해선 안 되겠죠. 일을 하든 휴식을 취하든 음식을 먹든, 너무 지나치게 혹은 극단적으로 치우쳐선 곤란합니다.

촛불을 끄지 않고 계속 켜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초가 금방 다 타서 없어지겠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일하다 보면 업무나 분야에 따라서 정해진 시간을 넘어 밤늦게까지 해야할 경우도 있습니다. 날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한다면 창의성, 영감, 상상력이 모두 소진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일한 적이 있는데,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더군요.

일, 일,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근시안적인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여유를 두고 깊이 사고하며 일하면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삶 속에서 라곰을 추구합니다. 잠도 충분히 자고, 퇴근한 후에는 영감을 얻고 재충전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하지요.

190센티미터 가까운 장신에 꼿꼿한 자세의 할그렌 대사는 언뜻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상대에 대한 배려와 외교관이란 직업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사진 안경훈 객원기자)

할그렌 대사의 이력에서는 크게 두 가지가 눈길을 끈다. 첫째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부소장, 외무부 안보정책국 인도지원정책 및 분쟁이슈과 과장, 스웨덴 총사령부 자문관, 주보스니아 이등서기관으로 근무하며 평화 구축, 분쟁 해결, 국방 및 안보, 위기 관리 등의 분야에서 활동해왔다는 사실이다. 둘째, 스웨덴 외에도 영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영어와 불어에 유창하다는 점이다. 안보전문가가 본 지금의 한반도는 과연 어떤 상황일까?

남북한 간에 평화 정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뢰입니다. 폭력이나 전쟁을 통해서는 절대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분단된 지 60년 넘게 지난 두 나라 사이에 평화가 정착되려면 해결할 과제도 많고 그 과정도 복잡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의 부족입니다. 며칠 전에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북한이 비밀기지에서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잖아요? 북한의 의중이 무엇인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는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 두 나라 사이에는 분명한 합의나 공유 할 만한 비전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그 선결과제는 비핵화입니다. 북한은 핵확산 방지조약에 다시 가입하고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에도 가입해야 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의 기술적인 협상과 토의도 뒷받침되어야 신뢰가 구축될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를 둘러보는 할그렌 대사. 스웨덴은 체코, 폴란드, 스위스와 함께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일원으로 6.25전쟁 이후 휴전상황을 감시하고 있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신데, 특별한 공부 노하우가 있습니까?

제 동료들 중에는 정말 기가 막히게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외교관도 많습니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8세 이전에 배우는 겁니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외국어를 습득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저는 성인이 된 뒤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운 경우인데요. 외국어를 배우려면 강한 동기가 필요합니다. 그 언어를 쓰는 친구를 사귀거나 해외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중의 하나는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틀린 부분을 외국인이 바로잡아주면, 귀기울여 듣고 반복연습해서 고치면 됩니다. 그렇게 하나씩 고치다 보면 실력도 늘고 재미도 붙지요. 또 한 가지, 같이 공부하거나 공부를 도와줄 파트너가 꼭 있어야 합니다. 혼자서는 동기부여도 되지 않고 공부하라고 강요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간 <투머로우>에서 인터뷰한 대사들께서는 대개 어려서부터 외교관이 될 꿈을 품었다고 하십니다. 대사님은 어떻습니까?

처음 외교관에 대해서 듣고 ‘아, 이것 참 재미있는 직업이구나. 나도 외교관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게 스물두 살 때입니다. 어쩌면 굉장히 늦은 시기였지요. 스물세 살 때 대학에 입학해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생활 중에는 파리정치대에서 1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프랑스어로 하는 수업을 들은 건 아니지만,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를 습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요. 졸업 뒤에는 런던정경대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귀국해 도청道廳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스물아홉 살에 외교부에 들어갔습니다. 1997년의 일이지요. 대사가 되기까지 꼭 21년이 걸렸네요(웃음).

인구는 약 1천만 명, 국토는 약 44만 5천 평방킬로미터인 스웨덴은 유럽 내에서 ‘작지만 강한 나라’ ‘혁신의 아이콘’ 등으로 불린다. 다이너마이트, 종이 우유팩, 휴대폰, 블루투스 등은 모두 스웨덴에서 최초로 개발한 기술들이다. 싸고 튼튼한 ‘이케아’ 가구는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켰으며, ‘볼보’ 차는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고, ‘에릭슨’은 한때 휴대폰 시장을 주도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휴대폰 회사다. 지금도 혁신적인 제품들을 계속 선보이는 비결이 궁금해졌다.

스웨덴에는 세계 일류 기업이 많습니다. 지퍼나 진공청소기도 스웨덴에서 개발했지요. 바이킹의 후예답게 어려움 앞에서 몸을 사리지 않기 때문에 혁신적인 제품도 많은 걸까요?

하하하, 그러게요. 스웨덴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기술에 강점을 보이는 데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민족입니다. 스웨덴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잘 압니다. 소통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데 익숙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생활에 적용시켜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능합니다. 그게 바로 연구개발인 거죠.

스웨덴에서 최초로 휴대폰이 탄생한 데도 사연이 있습니다. 스웨덴 북부에는 산이 많아서 순록을 많이 키웁니다. 댐도 있고요. ‘산지에서 어딜 가나 쉽게 연락을 주고받을 방법이 없을까?’를 연구하던 스웨덴 기술자들이 2차 대전 때 쓰던 워키토키를 발전시켜 만든 게 휴대폰입니다. 1980년대에 스웨덴 북부에 세계 최초의 모바일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지요. 그리고 실수나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실패하면 어떻습니까? 실패에서 뭔가를 배우고 새로 시작하면 되잖아요.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이걸 다른 분야에 사용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열린 사고방식이 스웨덴 혁신의 근본 동력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세살만 되면 교실에 앉혀놓고 모국어 쓰기와 수학을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스웨덴 아이들은 일곱 살이 되기 전에는 숲에서 뛰어놀며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계곡에서 카약을 즐기며 협동정신을 배우고 마음을 강하게 단련합니다. 혁신을 하려면 지식도 필요하지만 진취적인 자세가 가장 중요하죠.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을 보면 ‘혁신’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오늘 존재하는 직업에 10년 뒤에는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10년 전에는 없던 직업이 새로 생겨나기도 합니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요? 늘 변화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고, 세상에 맞서 변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할그렌 대사의 책상은 전동장치로 높낮이를 조절해 서서도 앉아서도 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서서 일하면 집중력도 높아지고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진 안경훈 객원기자)

외교관으로 일하는 동안 잊지 못할 근무지로 그는 보스니아를 꼽았다. 1992년부터 3년간 큰 내전을 겪은 보스니아는 그가 부임했을 때는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나 있었다. 분위기는 평온했지만, 전쟁의 상처는 곳곳에 남았으며 물과 전기가 끊어지기 일쑤였다. 좁은 골목길 안에 있는, 어둡고 습기 많고 가구도 오래된 아파트에서 그는 1년 여를 근무했다. “육체적인 어려움이라 금방 적응하게 되더군요. 고생한 만큼 전쟁으로 훼파된 나라를 재건하는 데 기여한다 생각하니 가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도전적인 과제나 문제가 닥칠 때면 피하지 않고 과감히 덤벼든 스웨덴 사람들. 지금은 역사 기록이나 박물관의 유물들을 통해서나 짐작할 수 있는 바이킹의 삶도 꼭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 국민성이 오늘날 혁신의 아이콘 스웨덴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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