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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중독ㆍ비트코인ㆍ열등감…그들이 캐나다를 택한 사연늦가을, 1929의 실패를 논하다 [8] 캐나다 봉사자들
김소리 기자 | 승인 2018.11.29 09:55

자신에게 찾아온 실패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도피하듯 해외봉사를 선택한 청년들이 있다. 그들이 캐나다에 모인 사연을 듣고 보니 모두 실패담이었는데….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아홉 명의 봉사자들이 ‘실패 아니었으면 캐나다에서의 행복도 없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편집자주>

우리가 캐나다로 가야 했던 이유

박소현 "클럽 중독때문에"

#실패

캐나다에 오기 전 ‘클럽 중독자’였던 나는 내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클럽이 내 인생의 전부였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클럽 때문에 학교도 한 번씩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속이 상해서 내 앞에서 우시곤 했는데, 그런 어머니를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정신이 나가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중독’이 가슴으로 이해가 되었다. 내 삶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클럽에서 벗어날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어느새 발걸음이 클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족들도 나를 포기한 듯했다. 결국 집을 나와 친구들을 의지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지냈다. 내 모습이 비참했고 가족들을 떠올리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 후 과정 

방법은 멀리 떠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1년 동안 봉사할 수 있는 해외봉사단을 선택했다. 캐나다에 도착한 지 2주째 되는 어느 날 우리는 위니펙에 있는 할로우와터Hallow Watter라는 원주민 마을에 갔다. 그곳에는 캐나다의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마음에 어두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마약과 게임에 중독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부모가 그런 경우 기형적인 아이가 태어나기도 하고, 부모와 똑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초췌하고 넋을 잃은 표정을 한 원주민 아이들의 모습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내 모습이었고 또 그 순간에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내 곁에 나를 붙잡아주는 봉사단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해지면서 나 또한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한번은 내 또래 원주민 여학생을 만나 클럽 중독에 걸렸던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괴로웠고, 그래서 봉사단으로 오게 된 사연과 혼자서는 어두운 삶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사람들과 진심으로 함께하게 된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여학생과 마음의 손을 꼭 맞잡은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엄마와의 영상통화를 캐나다에서 했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시자마자 눈물을 흘리셨고 나도 울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마 얼굴의 주름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올 한 해가 없었다면, 캐나다에 오지 않았더라면 가족들의 사랑도 모르고, 중독에서 벗어나지도 못 했을 것이다. 봉사단으로서 1년은 나에게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터닝포인트를 맞은 내 삶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며 남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주한 "내 맘대로의 말로末路"

#실패 

나는 그동안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음식을 사 먹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아무 때나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 휴강인 날에는 자동적으로 밤과 낮이 바뀌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삶의 패턴은 무너지고 몸과 마음이 약해져갔다. 악순환이 지속되던 어느 여름날 나는 에어컨을 켜 놓은 상태로 잠이 들었는데, 몸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체온이 떨어지니 심각한 냉방병에 걸리고 말았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손가락은 굽혀지지가 않았다. 열이 40도까지 올라 아무 말도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신음소리만 냈다. 그 일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온 삶의 끝이 병원에 실려 가는 것인가?’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이 몸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 후 과정 

1학년을 마친 뒤 해외봉사단에 지원해 캐나다에 왔다. 빡빡한 일정에 정신없이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쓸 데 없는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봉사활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봉사단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그들의 고민을 듣고 내 경험담을 이야기하고,행사를 도울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이런 일들은 내가 해봤거나 하고 싶었던 일들이 아닌데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스케줄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인지 어느새 몸은 건강해졌고 정신도 맑아진 느낌이었다.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한다. 나는 요즘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며 성장하게 하는지 생각하고 또 경험해보는 기회를 갖고 있다. 내가 내 인생의 키를 잡으면 방향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1년을 해외에서 봉사단으로 지내며 쉴 새 없이 하루를 보내며 고생도 해보고 가장 중요한 인생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갈 수 있어서 좋다. 아름다운 캐나다에서 말이다.

안지민 "비트코인에 올인했다가"

#실패 

나는 지난해 열풍을 일으켰던 ‘비트코인’이라는 것을 구매했었다. 비트코인은 온라인상에서 개인과 개인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가상화폐이
다. 주식과 비슷한 구조이지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보안에 대한 안전성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나는 호기심에 코인을 샀는데 내가 산 코인의 가치가 급격히 올랐다. 그래서 계속 코인을 사고팔고 해서 돈을 모았다. 그때 그만두었으면 되었는데 투자를 많이 하면 짧은 시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 싶어서 내가 가진 돈 전부를 털어 넣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코인의 가치가 하락했고 그때부터 학교에 가서나, 밥을 먹을 때나, 과제를 할 때 온통 코인 생각만 했다. 매일 휴대폰 속 그래프만 확인하는 나 자신을 보니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이 이해가 갔다.

#그 후 과정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의 활동에는 마인드강연, 마인드레크리에이션, 조별활동 등 다양한 인성교육 프로그램들이 있다. 또 마인드북 시리즈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도 있는데 그때 읽었던 책 내용 중에 ‘중독에 빠지는 사람은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정확했다. 내가 코인을 살 때 잘못되거나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코인의 가치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책을 읽다 보니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해야만 하는 성격이다. 또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을 마음에 꽁꽁 숨겨놓고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외국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드물었고 많은 부분 절제해야 했다. 다른 단원들과 함께 활동하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했고, 서툰 언어로 현지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용기도 필요했다. 또 모든 봉사활동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서 몸과 마음이 단련되었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활력이 생겨났고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캐나다 원주민 마을 캠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캠프에 마인드 레크리에이션과 아카데미 수업을 준비해 갔는데,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역할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이 잘 따라줄까?’ 걱정도 했지만 예상 외로 원주민 학생들은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며 행복해 했다. 내게 ‘감사합니다’라고 쓴 카드를 전해주는 학생도 있었는데 감동적이고 고마웠다. 내가 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걸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주애 "전공 열등감에 빠져"

#실패 

나는 대학교에 들어갈 때 누구보다 설레었다. 산업디자인학과라는 전공도 만족스러웠고 소질도 있어서 앞으로 배우면 금세 뛰어난 실력을 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1학년, 2학년을 지내고 보니 쉽지 않았다. 쏟아지는 과제들 중에 내가 해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디자인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디자인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인 것 같았다. 자신감은 사라졌고 실망과 회의가 찾아왔다. 디자인은 더 이상 설레는 이름이 아닌, 끝내고 싶은 악몽이 되었다.

#그 후 과정 

휴학을 결정하고 무얼 할까 고민하던 중에 그냥 놀면 더 힘들 것 같아 해외봉사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뭐라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제일 먼저 내게 주어진 일이 디자인 작업이었다. 현지인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행사를 알리는 홍보물들을 전공이 산업디자인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만들어보라고 했다. ‘디자인을 피해서 왔는데 디자인을 하라니!’ 너무 싫었지만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시작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봉사단 지부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주애야, 네가 디자인을 싫어하는 것도, 잘 못하는 것도 안다. 그런데 너한테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고싶어.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만 하지 말고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봐.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이야.”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고 내 인생에서 디자인을 버릴 수가 없어서 지부장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로서는 만들 수 없는 홍보물과 프로그램 북이 만들어졌고, 그 홍보물을 들고 많은 캐나다 사람들에게다가갈 수 있었다.

#지금은

‘나는 잘 못하고 남들보다 실력이 없으니까 내 수준은 여기까지야’ 하며 내 한계 안에서 지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이야기만 나오면 나 스스로 움츠러들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갖지 않았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캐나다에서 디자인 기술을 배운 건 아니지만 문제를 대하는 내 태도가 달라졌다. 어떤 문제든 ‘안 되겠다’ 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이 일 때문에 내가 자랄 수 있는 거야. 좋은 기회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TW Advice “실패도 성공도 우연이 아니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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