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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해외봉사자들 "우리가 캐나다로 가야 했던 이유"늦가을, 1929의 실패를 논하다 [7] 캐나다 봉사자들
김소리 기자 | 승인 2018.11.23 22:30

자신에게 찾아온 실패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도피하듯 해외봉사를 선택한 청년들이 있다. 그들이 캐나다에 모인 사연을 듣고 보니 모두 실패담이었는데….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아홉 명의 봉사자들이 ‘실패 아니었으면 캐나다에서의 행복도 없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편집자주

우리가 캐나다로 가야 했던 이유

류소망 "안전빵, 도전 싫어"

내 생활신조는 ‘실패하면 안 되니까 그냥 평범하게 살자! 절대 도전 같은 건 하지 말자!’였다. 그래서 대학도 편하게 다니려고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했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제발 그렇게 지내지 말고 새롭고 활동적인 일 좀 해봐’라고 하셔서 해외봉사를 왔다. 그런데 지부장님이 항상 한계 밖의 일을 시키셨다.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 무조건 사람들을 만나서 말을 걸어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20년 동안 굳건히 지켜온 내 삶의 한계선들이 무너져갔는데,신기하게도 점점 재미있어졌다.

백주현 '소심함 이후 고립'

당당하고 밝은 성격이 어느 날부턴가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과하게 신경이 쓰이고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노래를 부르겠다’는 꿈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자주 찾아왔다. 캐나다에 와서 마음이 서로 흘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원주민 마을의 소년 ‘제퍼슨’도 대화하기 쉽지 않은 아이였는데 캠프를 하면서 친해졌다. 한국에 가면 제퍼슨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조은미 "착한 아이 콤플렉스"

나는 모범생으로 불렸다. 친구들이 나를 괴롭히고 상처를 주었지만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다가와서 “이게 낙서야, 그림이야? 쓰레기 같은 그림을 그렸잖아!”라고 놀리며 비아냥거렸다. 상처가 병이 되어 나는 말수도 적어졌고 그림 그리는 것도 숨겼다.
대학생이 되어 캐나다에 봉사단원으로 왔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지내다가 원주민 마을에서 캠프를 할 때 아이들에게 페이스페인팅을 해주었다. 못 그렸다고 할까봐 조금은 불안했는데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웨민지 마을에서 온 헤나라는 소녀는 나를 안아주기까지 했다. 캐나다에서 내 마음속 상처를 치료 받았고 그림 그릴 용기를 얻었다. 캐나다 사람들의 마음에 행복의 그림을 많이 그리고 돌아가고 싶다.

신효원 "대학 입학 후 상실감"

학창시절 내 목표는 오로지 대학교 합격이었다. 목표만 생각하고 시간과 마음을 공부에 투자한 결과 일본 최상위권 대학인 게이오기주쿠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엄청난 상실감과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대학에 온 이유에 대해 의구심이 들고 무얼 해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달려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목표와 꿈을 찾기 위해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기적인 삶만을 고집했던 내가 이곳 캐나다에 와서 남을 위해 사는 법을 배우며 새로운 인생 목표를 찾아가고 있다.

정혜진 "업무 스트레스"

메이크업을 전공한 나는 졸업 후 일찍 취직했다. 처음에는 돈을 버는 게 신났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회사에서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자주 생겼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밤마다 술을 마시고 놀러 다녔다. 돈을 버는 것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하고 공허해져서 해외봉사를 지원했다. 캐나다에 와서 잠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봉사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가 그동안 너무 나만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희생하고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보람을 느끼며 매일 성장하고 있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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