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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사 김원지 '아이를 안 낳는 이 시대에 내가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이유'
고은비 기자 | 승인 2018.11.13 16:47

첫발을 내딛기란 항상 어렵고 서툴기 마련이다. 초보의사 김원지 씨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허둥댔던 3월이 언제 지나가는가 싶더니 어느덧 인턴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흉부외과’ ‘산부인과’ ‘마취과’ ‘소아과’… 모두 경험해본 그녀의 선택이 궁금하다.

김원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삼성서울병원에서 인턴으로 의사 역할을 차분히 배워가고 있다. 다양한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긴장된 일과 속에서도 환자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지낸다. (사진 안경훈 객원기자)

제대로 식사할 시간도 없이 바쁘시죠?

매달 다른 과에서 일하는 게 무척 힘드실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씩 과가 바뀌다보니 매번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어느 병동에 가도 모르는 게 많아서 간호사들이나 심지어 환자와 보호자들에게까지 핀잔을 듣고 무시를 받을 때도 있었죠(웃음). 하지만 그게 저에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어요. 지칠 때는 제가 처음 의사의 꿈을 꾸던 때를 생각하면 현재 의사로서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인턴을 하면서 만나는 어려움들이 결국 저를 성장시킬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래서인지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하고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의사를 꿈꾸기 시작했나요?

사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의사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원래 제 전공은 생명과학이거든요. 입학해서 첫 학기에 고등학교 때 못 해본 것들을 해보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꿈에 그리던 대학에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봐도 그다지 만족스럽거나 행복하지가 않은거예요. 공허함도 찾아오고요. 특히 목표 없이 지내는 게 불안했어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하지?’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4년 동안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어요. 방황하는 시간들을 보냈죠.
그러다 나도 ‘나도 갭이어gap year의 시기를 가져야 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에는 학업이나 직장을 1년간 중단하고 여행이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기계발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잖아요. 갭이어는 재충전의 시간이자 꿈을 찾는 기회인 거죠. 그래서 저도 ‘새로운 세계로 떠나보자!’ 하는 심정으로 해외봉사단에 지원해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났습니다. 그 결정이 제게 큰 영향을 주었죠. 말라위에서 의사의 꿈을 찾았으니까요.

말라위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해지네요.

제가 봉사활동 하던 그 해 8월, 한국의 의료봉사 NGO가 말라위를 찾아왔어요. 첫날에 가장 놀랐던 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진료를 기다리는 모습이었어요. ‘우리 주변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그리고 안타까웠던 건 에이즈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간단한 외과치료와 약을 처방해주는 것 뿐이라는 점이에요. 그런데도 말라위 사람들은 의사를 만난다는 것 자체로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그때 ‘의사가 되면 이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거예요. 진지하게 의사의 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이 길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하고 느꼈던 순간이 훨씬 많아요.

아프리카에서 품은 꿈은 방황하던 김원지 씨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1년 전, 그녀는 다시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해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케냐 병원의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는데 당시의 경험은 ‘유능한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그녀의 꿈을 부추겼다. 그러기에 인턴생활 중 어려운 일이 생겨도 꿈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얼마남지 않은 인턴기간에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돌아보며 미래를 향해 또 한번의 선택을 해야 할 때를 맞았다.

의사 선생님이시니까 환자에 얽힌 이야기를 여쭤보고 싶어요. 기억에 남는 환자 분이 있는지요?

한번은 대상포진이 가슴부터 등까지 퍼진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어요. 제가 하루에 두 번씩 소독을 해드려야 했는데요. 첫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간병인 세 분 모두가 무척 예민하셔서 제가 1분만 늦어도 화를 많이 내시는 거예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짜증도 났었죠. 다음 날 소독을 하기 위해 할아버지 병실에 들어가려는데 출입문 유리창 너머로 할아버지 모습이 보였어요. 그런데 침대에 누워 시계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신 모습을 보니 순간 ‘소독하는 게 나에게는 여러 업무 중 하나이지만 환자에게는 하루 종일 기다리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부터 할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불평을 하셔도 전혀 싫게 들리지 않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고 설명도 자세히 해드렸죠. 할아버지가 퇴원하시는 날, 할머니가 제게 오셔서 고맙다고 하시며 작은 선물을 주셨어요. 집에 놀러오라고 하며 손을 잡아주시는데 퇴원하시는 게 섭섭할 정도더라고요(웃음). 그 일을 계기로 환자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2017년 케냐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케냐의 어느 병원에서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함께 봉사했던 동료들과 사진을 찍었다.

인턴생활도 이제 곧 끝나가지요?

네. 지금은 전공과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원하는 과에 지원해서 12월에 전공의專攻醫 시험을 치고 나면 성적과 그 외에 면접, 사회봉사활동, 영어점수 등을 고려해서 전공과가 결정되는데요. 저는 산부인과에 지원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출산현상과 맞물려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도 몇 년째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하신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교수님이 저희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무슨 과를 가더라도 다 각자의 고충이 있고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네.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인기있는 과를 가려고 하기보다 자네가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했으면 좋겠네.” 사실 인턴의사들도 보통 사람들과 같은 고민을 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전망 좋고 편한 과로 갈 것인가?’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있었고요. 산부인과 하면 일반적으로 출산을 가장 먼저 떠올리실 텐데요. 산부인과는 산과와 부인과로 나뉘어집니다. 부인과에서는 폐경환자치료, 부인과 감염질환부터 난소암이나 자궁경부암 같은 암질환까지 치료 대상이 됩니다. 치료를 진행함에 있어서 내과적인 항암제 사용과 더불어 외과 수술까지 모두 진행하는데요, 이렇게 내·외과적인 요소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산부인과에서는 더 다양하게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과 병든 이를 살리는 행복이 모두 존재하는 곳이 산부인과입니다.

대학원생 시절에 학기 중에는 농어촌 마을에서 틈틈이 봉사하며 지냈다.

수련의 과정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신가요?

인턴 초반에 업무를 하다가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작은 실수일지 모르지만 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죠. 건강과 생명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변명이나 핑계가 있을 수 없어요. 작은 실수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고요. 그때부터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도 애매하면 몇 번이고 물어서 정확하게 확인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련의가 되면 물론 힘든 일이 더 많아지겠지요. 일이 어떻든 간에 중요한 건 환자를 대하는 저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무슨 일이든 신중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지요. 혹 모르는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묻고 분명하고 정확하게 일하려는 자세를 잊지 않으려 합니다.

지난 6개월간 몸으로 부딪치며 의사로서의 삶을 차근차근 배워나간 김원지 씨.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1년간의 인턴 과정은 지식보다 의사로서의 마음가 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환자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매순간 생명의 고귀함을 잊지 않으려는 그가 앞으로 어떤 의사로 성장할지 기대된다.

고은비 기자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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