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석 소방관을 처음 만난 건 지난 3월 17일, 서울 서초소방서에서 열린 ‘투머로우 북콘서트’ 때였다. 아카펠라와 연극 공연으로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별안간 “에엥~!” 하고 사이렌이 울렸다. 그러자 객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던 대원 몇 명이 몸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듯 자리를 박차고 행사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영석. 소방관이셨던 아버지의 멋진 모습에 매료되어 소방관의 길을 택한 지 올해로 15년째다. 모두가 잠든 새벽,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할 때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보람에 마음속까지 행복해진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진 홍수정 기자)
이영석. 소방관이셨던 아버지의 멋진 모습에 매료되어 소방관의 길을 택한 지 올해로 15년째다. 모두가 잠든 새벽,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할 때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보람에 마음속까지 행복해진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진 홍수정 기자)

저도 마침 공연팀으로 그 자리에 있었는데, 출동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근무시간만큼은 밥을 먹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사이렌이 울리면 바로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소방차 및 구급차는 1분 내에 출발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1분 안에 차를 못 타면 끝이에요. 늦는 대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불길은 계속 번지고 있을 테니까요. 저도 신참 시절에는 차를 놓쳐서 호되게 혼난 적도 많아요. 지금은 샤워할 때도 절대 5분을 넘기지 않죠.

그야말로 출동시간에 목숨을 거셨네요.

응급상황에는 1분 1초에 생명이 달려 있으니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재산피해야 복구할 수 있지만, 생명은 뭘 주고도 바꿀 수 없잖아요. 심정지환자의 경우 4~6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뇌 손상이 시작됩니다. 흔히 말하는 ‘골든타임’인 거죠. 서울시에서도 ‘2020년까지 화재현장 5분 이내 도착률을 99%까지 끌어올린다’는 골든타임 목표제를 시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1분 내에 출동하더라도 소방차 진로를 가로막거나 불법 주정차된 차들 때문에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할 때면 너무 안타깝고 애가 탑니다.

소방관은 영어로는 fire fighter, 직역하면 ‘불과 싸우는 사람’이란 뜻이다. 화재에는 예고가 없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불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소방관들은 늘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 같은 삶을 산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것은 물론, 화재현장에서 자신을 지키고 시민의 목숨을 구할 각종 장비의 쓰임새와 사용법에도 정통해야 한다.
사진 촬영을 위해 평일 오후 2시, 서울 관악소방서를 찾았다. 마침 대원들은 장비점검이 한창이었다. 한쪽에서는 소방차를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고, 마당 한쪽에서는 고가사다리차를 점검하고 있었다. 구조공작차 안을 들여다보니 고층에서 추락하는 시민을 보호하는 에어매트,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해머드릴과 도끼 등 절단기계, 사람이나 물건을 끌어올리는 인양기(호이스트) 등 스무 개가 넘는 장비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소방관은 한마디로 화재 및 구조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소방관은 한마디로 화재 및 구조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4월인가요, 화재현장에서 온몸이 그을음으로 뒤덮인 채 쪼그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는 어느 소방관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사진, 저도 기억납니다. 화재를 진압하느라 현장에서 장시간 근무하다 보면 종종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곤 합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모양이에요. 그 사진 덕에 저희 소방관들에게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아져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소방관들이 너무 안쓰럽고 측은하게만 비쳐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습니다. 세상에는 저희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힘들게 일하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최선을 다해 현장 활동을 하는 모습이 찍혀도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영화에는 소방관들이 건물 전체를 뒤덮는 큰 불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드는 장면도 많이 나옵니다. 실제 현장은 어떻습니까?

주변에도 ‘진짜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웃음). 영화에서는 거의 폭발하다시피 하는 화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나오지만, 실제로 온몸으로 불을 맞으면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불은 위쪽으로 번지는 성질이 있어서 화재가 나면 천장을 타고 불길이 번집니다. 저희는 그 아래 공간으로 들어가 화재를 진압하는 거죠.

물대포를 쏘는 장면도 자주 나오는데요.

네, 우선 화재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처음 화재가 일어난 발화점發火點을 찾아내는 거예요. 제가 썼던 일기를 좀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화점층 도착. 현관에서는 뭐든지 집어삼킬 듯 시뻘건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산소마스크를 뒤집어쓰는데 자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 얼굴이 불현듯 스친다. 온 신경이 깨어나고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른다. 호흡을 한 번 가다듬는 순간 불꽃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나를 느낀다. 귓전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시야가 사라진다. 이제는 감각이다. 멀리 어둠 속에 느껴지는 불꽃의 중심으로 향할수록 열기는 강해져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한다. 자, 이제 공격할 시간! 불꽃을 향한 관창이 시원한 물줄기를 뱉어낸다. 열을 식히기 위해 내게도 뿌려본다. 끝이다. 불은 꺼지고 연기가 빠지며 집안의 형태가 드러난다.”
하지만 화재 현장이라고 무작정 건물로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공사장의 경우 내부구조 파악이 곤란해 위험하거든요. 그밖에 공항 화재, 탱크로리 화재, 누전 화재 등 상황에 따라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런 매뉴얼이나 원칙을 넘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어요. ‘화재현장 안에 사람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시합니다.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방관의 가장 큰 임무는 단연 인명구조입니다.

구조공작차에는 차량을 견인할 수 있는 장비나 에어매트, 해머드릴과 도끼 등 각종 소방장비가 실려 있다.
구조공작차에는 차량을 견인할 수 있는 장비나 에어매트, 해머드릴과 도끼 등 각종 소방장비가 실려 있다.

지독한 무더위에 너도 나도 시원한 에어컨을 벗삼아 보냈던 지난여름…. 그러나 이영석 소방관과 동료들은 방화복을 입고 화재현장을 뛰어다녔다. 무려 3.8킬로그램이나 하는 방화복 외에도 산소호흡기(11킬로그램), 안전화(3.8킬로그램), 헬멧(1.2킬로그램), 손전등(1킬로그램)에 두건과 장갑까지 착용하면 무게는 20킬로그램을 훌쩍 넘는다. 겨울의 문턱임에도 목 언저리까지 남은 땀띠 자국은 그가 더위와도 치열한 사투를 벌였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큰 사고가 터지면 쉬는 날에도 긴급출동 명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맘 편히 쉬지 못할 때도 많지만 그만둘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서울 소방관들은 작년에 하루 평균 447회 출동해 64명을 구조했습니다. ‘업무량은 많지만 근무여건은 열악해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은데요.

제가 있는 관악소방서에서는 100여 명의 대원이 세 개 조로 나뉘어 낮밤으로 번갈아 근무하는 ‘3조 2교대’ 체제입니다. 저는 하루에 화재로는 일고여덟 번, 응급환자 구조로는 스물여덟 번까지 출동한 적이 있어요. 그나마 서울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소방관이 많은 편이에요. 전국에 소방관이 약 4만 4천 명 정도인데 그중 90%는 각 지자체에 소속된 지방직으로, 소방관 인원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근무여건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생각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피곤해서 힘들기보다 그 피곤 때문에 현장에서 제 역할을 100%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아야 할 시민들이 입는 피해가 가장 크죠. 반갑게도 최근 소방청에서는 작년 하반기 1,500명 충원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총 2만 명의 소방관을 충원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를 계기로 앞으로 국민들께 더 신속하고 철저한 소방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합니다.

언젠가 ‘SBS 스페셜’에서도 ‘슈퍼맨의 비애, 소방관의 SOS’라는 제목으로 소방관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다룬 적이 있는데요. 2015년 한 해 동안 자살한 소방관은 12명으로, 순직한 소방관의 여섯 배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숱한 재해현장을 겪다 보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큰 재난이나 전쟁 등 공포스런 상황을 겪은 뒤 일어나는 정신적 혼란상태)로 고통받는 소방관들이 적지 않아요. PTSD로 인해 악몽,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대인관계 갈등 등에 시달리면서 격무까지 소화하다 보니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물론 조직내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정신전문가교육, 힐링캠프, PTSD 전문치료과정 등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은 긴장한 채로 일할 때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예민해지고 경직됩니다. 그래서 지치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표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주변에 맘 편히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면 금방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투머로우>에 ‘아버지의 사랑’이란 주제로 북콘서트를 제안한 것도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처음에는 좀 쑥스러워도 아버지와 자식이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면 하나가 되듯, 저희 대원들도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면 서로 힘을 얻고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지 어느덧 15년째인 이영석 소방관. 그 역시 신참 시절에는 사고현장에서의 충격적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악몽에 시달린 적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으로 가정과 아이가 생기고 삶이 안정되면서 힘든 소방관 업무와 트라우마를 극복할 힘을 얻었다고 한다. “끔찍한 사고현장에 달려가기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이 내 삶의 터전이자 인생교실”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소방차 안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면, 모두가 잠든 시간에 깨어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일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더 와 닿는 직업이 소방관입니다.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소방차 안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면, 모두가 잠든 시간에 깨어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일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더 와 닿는 직업이 소방관입니다.

사고현장이 인생교실이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찰나에 생사가 엇갈리는 사고를 가까이서 목격하다 보니 ‘산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자살사건으로 출동한 적도 많은데, 한번은 여중생이 자살소동을 일으켜 달려가보니 서울의 어느 고급아파트였어요. 고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겠다”며 소리를 지르는데, 신고를 한 엄마는 넋이 나간 듯 눈에 초점이 없었어요. 그 학생이 소동을 일으킨 게 처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 무렵 저도 승진하겠다는 욕심에 빠져 있었는데, 그 여중생을 보며 ‘승진하면 아내나 아이들에게 더 좋은 집이나 옷을 마련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풍족하게 산다고 반드시 행복한 게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가족이나 동료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버릇이 생겼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소방공무원으로 보낸 지난 14년을 정리해 주신다면요?

제 주업무는 화재진압이지만 구조요원으로도 2년간 근무했고 행정요원으로 3년 정도 내근을 한 적도 있어요. 현장에 나갈 일이 없어 어렵지 않게 생각했는데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하고 나중엔 무기력증이 찾아오더군요(웃음). 몸은 고생스러워도 발로 뛰며 사람들을 구조하는 게 제 적성임을 확실히 알았어요. 다시 화재진압요원이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결혼 전에는 소방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서 ‘이런 사소한 사고에 왜 신고를 하나?’ 하고 불평한 적도 많습니다. 결혼해서 가장이 되고나니 ‘아, 신고한 이분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건 그만큼 보람도 더 커졌지요.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소방차 안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면, 모두가 잠든 시간에 깨어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일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더 와 닿는 직업이 소방관입니다.

이영석 소방관과의 인터뷰를 정리하던 중 고양시 유류저장소 폭발사고 화재 소식이 전해져왔다. 소방관 364명, 소방차 136대가 투입되어 17시간 만에 진화된 이 사고의 원인은 천 원짜리 풍등에 의한 실화失火였다고 한다. 누군가의 부주의 때문에 목숨을 걸고 화염과 싸웠을 소방관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실제로 화재 두 건 중 한 건은 부주의로 일어난다는 소방청의 통계가 있다. 불조심 강조의 달인 11월, 화마火魔와의 싸움을 더 이상 소방관들만의 몫으로만 남겨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철저한 경각심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화재 예방책일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관악소방서를 나서면서 오늘도 시민의 생명을 지킬 싸움을 계속할 이영석 소방관과 동료들이 새삼 멋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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